나의 시작, 나의 도전기
2017년 말 무려 23년간이나 몸담았던 회사를 나와야만 했습니다. 젊음, 청춘을 다 바친 그곳. 명퇴였습니다. 아니 권고사직이었죠. 제가 할 수 있는 선택은 2가지였습니다. 버티든가, 나오든가. 네 식구의 가장으로서 갈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결정은 쉬웠습니다. 10년 전부터 계속 이 상황을 그리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그래, 홀가분하게 떠나자. 그리고 시작해보자. 이제 더 이상 돈 때문이 아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소위 내 멋대로 한 번은 살아봐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야 후회도 적지 않겠는가.
그렇게 1인 기업가, 소위 프리랜서가 되었습니다. 제 직업은 ‘라이프 밸런스 컨설턴트(Life Balance Consultant, 이하 ’LBC‘)’입니다. 세상에 없는 유일무이한 직업이죠. 제가 이 LBC란 직업을 통해 하려는 일은 이것입니다. “경제·경영·인문적 삶의 균형을 잡아드립니다.” 과거처럼 부자도, 사회적 성공도 어려워진 시대에서 평범한 사람이 보다 풍요롭고 여유 있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경제·경영·인문의 균형점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신의 삶에 경제·경영·인문의 균형점(BP, Banlancing Point)을 찾아내고 실천하는 것, 그리고 이런 균형 잡힌 삶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바로 제 직업이자 미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제 3년 차. 아직 가야 할 길은 멀어 보입니다. 게다가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개점휴업상태입니다. 하지만 굴하지 않습니다. 내가 선택한 길이고, 평생 할 일이기 때문이죠. 산이 높은 이유는 깊은 계곡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산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오를 예정입니다. 정상까지 못가도 괜찮습니다. 걷는 자체만으로도 내가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14년 전 저는 서른아홉의 아홉수를 겪고 있었습니다. 회사에서는 모두가 선망하는 부서에 근무하고 있었고, 승진도 잘 되고 있었죠. 하지만 가슴 한편에서는 뭔지 모를 불안과 답답함이 계속해서 쌓여 가고 있었습니다. 1년 뒤면 불혹의 나이를 맞게 되는데, 돌아보니 모아 놓은 것도, 특별히 이룬 것도 없더군요. 지금까지 뭐하며 산 거지? 게다가 어디로 가야 하는 거지? 숨이 막혀 왔습니다. 그리고 그 숨 막힘은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란 하나의 질문으로 압축되어 저를 조여 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구본형 선생님의 책을 통해 구본형변화경영연구소의 연구원 제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 바로 이거야. 자기 탐구와 함께 미래의 삶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시간, 게다가 수료 후에는 책 쓰기 과제까지. 연구원이 되어야 했습니다. 2008년 초, 2년에 걸친 도전 끝에 결국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어렵사리 연구원이 되었지만, 연구원 과정은 그야말로 참기 힘든 고통과 인내를 요구했습니다. 두껍고 어렵기만 한 인문사회 철학서적들을 매주 1권씩 독파해야 하고, 읽고 난 뒤에는 정해진 형식에 따라 북리뷰를 작성해야 하며, 더불어 책을 읽는 동안 얻게 된 생각을 A4 1장 분량의 칼럼으로 정리까지. 이 모든 것을 1주일 내 끝내야 했습니다. 게다가 한 달에 한 번은 자신의 삶을 돌아봐야 하는 어려운 주제를 가지고 과제 발표까지 해야 했으니 연구원 과정 1년은 평생 잊을 수 없는 고난과 고통의 과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렇게 1년을 커리큘럼에 따라 공부한 후 2년째부터는 연구원 졸업 과제로써 자신의 책을 출간해야 합니다. 처음 제가 쓰고자 한 책의 컨셉은 ‘소심’이었습니다. 연구원 과정 1년 동안 자기 탐구를 하며 저 자신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는데, 그러면서 만난 것이 소심이었죠. 저는 대표적인 소심남이었습니다. 제 소심한 면이 참 싫었습니다. 극복해내고 싶었죠. 하지만 자기 탐구를 하며, 저의 소심이 어릴 적 상처가 내 마음속 또 하나의 나로 성장해 온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심을 버리고, 대범한 나로 살아가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후 저는 소심의 극복 대신 다른 방법을 찾게 되었습니다. 바로 소심한 그대로 잘 살아가는 방법이었죠. 저는 이 주제로 책을 쓰고 싶었습니다.
열심히 썼습니다. 하지만 제 인내와 능력 미달로 초고를 끝내지 못했고, 결국 출간으로 연결되지 못했습니다. 이후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으로 본격적인 방황이 시작되었습니다. 무엇을 해야 할까? 책은 일단 써야 하는데 한 번은 실패를 했고. 그때 번뜩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사회인 야구 경험을 바탕으로 제 자서전적 이야기를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써보면 어떨까? 그렇게 매일 새벽 조금씩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딱 1년 정도 쓴 것 같네요. 원고가 마무리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출판사에서도 제 책을 내주겠다는 응답은 없었습니다. 낙심할 수밖에 없었죠.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전자북 전문 출판사와 미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이야기가 진전되며, 저의 첫 책 『소심야구』는 마침내 ebook으로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비록 종이책은 아니었지만, 저에겐 무엇보다 소중한 첫 책이었습니다.
매일 새벽 『소심야구』를 쓰며 업무 중에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재무팀에서 일하며 배운 경제 지식과 내용들을 회사 직원들과 나누고 싶었죠. 그때부터 하나씩 칼럼으로 정리해 거의 매일 회사 게시판에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때가 2011년이었죠. 처음엔 별 반응이 없었는데 시간이 흐르며 조금씩 직원들의 호응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거의 1년 동안 200편 가까이를 연재했습니다. 덕분에 저는 회사의 ‘재무통’, ‘경제통’으로 인정받기 시작했습니다. 사내 재무전문가로서 자리매김하게 된 거죠.
그다음 해인 2012년에는 간단한 경제상식이 아닌, 직원들에게 보다 더 도움이 될 수 있는 경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당시 제가 가지고 있던 경제관과 가치관을 결합하는 작업이었죠. 그래서 일주일에 한편씩 <돈의 관점으로 본 인생사>란 제목으로 다시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새로운 글에 대한 반응 또한 좋았습니다. 그렇게 4개월 여를 연재했고, 직원들의 열렬한 호응 속에 글을 마무리할 수 있었죠. 이 연재는 얼마 후 제게 큰 행운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때 쓴 글을 모아 다음 해인 2013년에 『불황을 이기는 월급의 경제학』이란 책으로 출간까지 할 수 있었으니까요. 책을 내고 축하를 참 많이 받았습니다. 더불어 완전한 재무전문가로서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고요.
더불어 2012년에는 연재 외에 한 가지 더 새로운 시도를 했습니다. 1년짜리 경제 공부 프로그램을 만든 것입니다. 경제 도서들로 커리큘럼을 구성하고, 서평을 쓰되 2주에 한 권 분량으로, 그리고 1달에 한 번은 오프 모임을 통해 과제 발표를 하는 형식으로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구상했습니다. 그리고 직원들을 대상으로 모집 공고를 올렸습니다. 마감일날 확인하니 19명의 직원이 지원했더군요. 첫 상견례를 가졌던 그날 저녁의 풍광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아마도 제 인생에 가장 기억에 남는 몇 순간을 꼽으라고 한다면 이 날 저녁을 제외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 날이 바로 제 1인 기업의 이름이기도 한 <에코라이후>의 태동이자 시작이었으니까요.
그렇게 시작된 <에코라이후>가 올해로 벌써 8년째를 맞이했습니다. 지금은 8기가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죠. 첫 시작은 사내 직원들을 대상으로 했지만, 3기부터는 사내가 아닌 외부 사람들까지 합류함으로써 <에코라이후> 모임은 본격적인 경제·경영·인문의 균형 찾기 프로그램이 되었습니다. 추가적으로 2015년부터는 6개월 단위의 ‘좋은 책 읽고 쓰기 습관화 프로그램’인 <에코독서방>을 개설하여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독서에 관심은 있으나 꾸준히 읽기가 어려운 사람들, 좋은 책을 읽고 싶으나 어떤 책이 좋은 책인지 잘 모르는 사람들, 그리고 좋은 사람들과 좋은 만남을 가지길 원하는 사람들이 모여 서로 배우고, 함께 성장해가는 커뮤니티로 발전해 가고 있습니다.
1인 기업가로서의 제 삶은 불안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제 삶은 충만함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가는 이 길이 바로 제가 꿈꾸던 그리고 지난 10년 동안 다듬으며 만들어 온 길이기 때문이죠. 물론 여전히 미래는 불명확하고, 불투명합니다. 그렇다 할지라도 나만의 길을 제대로 가고 있다 확신하기 때문에, 그리고 내 안에 스스로를 꾸준히 전진하도록 만드는 힘이 존재함을 알고 있기 때문에 제 발걸음은 무척이나 가볍습니다.
파커 J. 파커의 수필집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에서 현명한 노인 루스는 자신의 인생에서 길이 열린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말합니다. 대신 뒤쪽의 수많은 길이 닫혔기 때문에 자신은 묵묵히 지금의 길을 걸어올 수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저 또한 그렇습니다. 돌아갈 수 없습니다. 대신 저는 2가지 자유를 택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자유, 그리고 더 중요한 하기 싫은 일을 거부할 수 있는 자유. 솔직히 앞으로 얼마나 더 가야 할지, 그리고 또 다른 변화가 어떻게 찾아올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기쁜 맘으로 한 걸음씩 쉬지 않고 내딛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여정이 곧 내 인생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경제·경영·인문적 삶의 균형을 잡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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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칸양 아지트 : 에코라이후(http://cafe.naver.com/ecolifuu) - - 목마른 어른들의 배움&놀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