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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칸양 Feb 06. 2020

프로그래머에게
인문학이 필요한 이유

#65,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한 학문 - 인문학


인문학, 그까이 꺼 몰라도...


인문학 몰라도 프로그램 개발하고 밥 먹는 것에 아무 지장이 없다. 엄밀히 말하면 프로그래머이기 때문에 인문학이 필요한 이유 따위는 없다. 그냥 그 이전에 사람이니까 인문학이 필요한 것이다. 어떤 프로그래머들은 자신이 사람이 아닌 무슨 로봇이라도 되는 양 행동하기도 한다. 컴퓨터와 더불어 일한다고 자신이 철저히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존재라고 생각하지만, 실상 모든 인간이 그렇듯이 개발자들 역시 비효율로 점철된 예측불가의 감정 덩어리에 불과하다. 사람은 디지털화될 수 없다. 첨단 디지털 기기도 내부 하드웨어 구성을 들어가 보면 결국 아날로그다. 디지털 신호가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0과 1이라는 두 가지 전기적 신호(Electrical Signal) 상태를 아날로그적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은 직선이고, 아날로그는 곡선이다. 순수한 자연의 어떠한 모습에서도 우리는 직선을 찾을 수 없다. 다시 말해 직선은 자연스럽지 못하다. 직선은 단절이지만, 곡선은 연결이다. 직선이 발달할수록 사회는 점점 더 각박해진다. 디지털 혁명으로 탄생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가 더 인간적인 사회를 만들었다고 보는가? 메신저로 손주들 사진과 부모님의 용돈을 손쉽게 보낼 수 있지만, 그것이 손편지나 공중전화에서 전하는 그리움보다 더 애잔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공돌이들에게 인문학이 더 필요한 오직 한 가지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그들이 평소에 보통사람들보다 더 직선과 디지털에 시달리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프로그래머들은 강하게 항변할지도 모른다. 디지털화된 세상에서 시달리기는커녕 그 이로움 들을 향유하며 기쁘게 살고 있다고 말이다. 근시안적으로 보면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문명의 이기들은 편리하다. 즐거움을 준다. 하지만 그것들이 없던 옛날보다 지금이 더 행복한 시대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 인류 전체의 부의 크기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지만, 행복의 크기는 그다지 변한 게 없다는 사실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효율과 속도를 미덕으로 여기는 공돌이들에게 랩탑과 스마트폰을 뺏는다면 아마 그들은 살 수 없다고 난리를 칠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문명의 이기들을 주체적으로 사용한다기보다는, 그 이기들에 길들여져 속박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프로그래머에게만 인문학이 꼭 필요한 이유는 없다. 다만 이들에게도 인문학은 필요하다. 그 이유를 대기 위해 기술과 인문학을 통섭하고 융합하여 새로운 창조를 가능하게 한다는 거대 담론까지 갈 필요는 없다. 또한 그 이유가 스티브 잡스가 대학시절 캘리그래피와 다양한 인문학을 접한 것이 IT분야의 선도적 창조를 가능하게 했음을 기억해서도 아니다. 단지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인문학은 필요하다. 상사와의 갈등에 대해 기술은 어떠한 해답도 제시해주지 못한다. 애인의 변심에 대해 스마트폰은 어떠한 분석 결과도 보여주지 못한다. 웅장한 자연과 불멸의 예술작품 앞에서 프로그램의 버그 따위는 사소한 일이다. 빌 게이츠에게도 코드를 이해하는 일보다는 사람을 이해하는 일이 더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이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될 때


물론 인문학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살다 보면 밀려오는 회의와 후회를 감당치 못하는 날들이 올지도 모른다. 삶은 우리에게 어떤 고난과 운명을 선사해줄지 모르기에 전혀 예상치 못했던 좌절의 날들이 미래에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때론 죽도록 힘든 날도 있을 것이다. 아무리 인문학을 공부하고 사람을 이해한다고 해도 그런 날들을 100% 막을 수 없다. 아니 어쩌면 하나도 막을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문학을 공부하고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이유는 그런 힘든 날이 닥쳐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될 때를 위해서다.


"왜 이렇게 사는 거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인가?"


"과연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정녕 나는 누구인가?"


위와 같은 질문들이 똬리를 틀며 자꾸만 자신을 괴롭힐 때 다른 어느 때보다 빠르게 그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을 키우기 위함이다. 절대적인 정답이 아닌 최선의 해답을 찾기 위해서다. 나 자신을 전보다 더 빠르게 구원하여 다시 기운 내서 일상을 살아가도록 고무하는 것이 가능하다. 평소 좌뇌만을 사용할 뿐, 우뇌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프로그래머들은 외부에서 발생한 불가항력적인 상황이 닥치지 않는 이상,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들을 던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런 불가항력적 상황에 마주했을 때 충격이 더 클 수밖에 없다. 닥쳐서 사용하지 않던 우뇌를 돌려보려 애쓰지만 굳어버린 우뇌에서는 아무런 응답이 있을 턱이 없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고난의 삶을 구원하기 위해서라는 이유가 가슴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면, 우뇌를 자극해서 창조적 개발 역량을 키워야 한다는 공돌이스러운 이유라도 믿어보자. 



마지막으로 인문학은 책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길 위에 있고, 옆자리에서 거북이목을 하고 코딩에 열중하고 있는 동료의 가슴속에서도 있다. 말했듯이, 인문학을 공부하는 이유는 자신의 삶을 구원하고 삶의 촉수를 더욱 예민하게 만들기 위한 통찰력을 키우기 위함이다. 통찰은 영어로 insight, 즉 내부를 보는 힘이다. 무엇보다도 그 내부에 대한 탐구의 시발점은 스스로의 내면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2019년 2월 10일


                                                           -- 이경종(변화경영연구소 12기 연구원) --


* 변화경영연구소의 필진들이 쓰고 있는 마음편지를 메일로 받아보시려면 여기를 클릭해 주세요.




어디 프로그래머뿐일까요? 인문학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학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문학이 곧, 삶에 대한 모든 것을 담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인문학을 외면한다면, 어쩌면 삶을 제대로 모르고 살아가는 것과 같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문학에 대한 근육을 키울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역시나 '독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수많은 책 중에서도 저는 '고전'을 권하고 싶습니다. 왜 고전일까요? 고전은 이미 최소 100년 이상 혹은 수십 년 이상을 사람들의 입과 머릿속에 입지를 구축하며 전해 내려오는 베스트셀러 혹은 스테디셀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잡초보다 더 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할 수 있지요. 아마도 다시 100년의 시간이 흐른다 할지라도 지금의 고전은 계속해서 그 생명을 연장해 갈 것입니다. 결코 잊혀지지 않은 채 말이죠.


제가 최근에 읽은 고전은 노벨문학상 수상자이자 콜롬비아를 대표하는 소설가 가브리엘 마르케스가 쓴 <백년의 고독>입니다. 마술적 사실주의를 기반으로 7대에 걸친 부엔디아 가문의 이야기를 무려 100년에 걸쳐 기술한 문학 소설이죠. 그들의 삶이 무척이나 흥미롭습니다. 또한 그들이 피치 못하게 부딪히고 견디어 나가야 할 고독과의 필연적 만남은 인간의 삶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만듭니다.


<백년의 고독>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우리나라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박경리 작가의 <토지>를 떠올리게 됩니다. 재밌는 것은 <토지>가 최참판 일가를 중심으로 평사리 마을 사람들의 기구하고 운명적인 삶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해 1890년대부터 1945년 대한민국 광복에 이르기까지 약 50년이란 시간을 무려 20권의 지면에 할애한 반면, <백년의 고독>은 100년의 역사를 고작(?) 2권 정도에 정리했다는 겁니다.  대단한 압축의 힘이죠!


하지만 두 고전은 그 맛이 다릅니다. 하나는 고독에 대한 씁쓸하고 아릿한 맛을 느끼게 되지만, 다른 하나는 시대와 인생을 보다 넓게 바라보게 되는 깊은 진국 같은 맛을 알게 된다고 할까요? 사실 우리의 단순한 삶을 통해 이러한 인생의 맛들을 알기란 사실 불가능합니다. 고전을 통한 대리 체험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죠.


인문학, 어렵지만 사실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자신의 생각과 태도에 달렸다고 할 수 있죠. 일단 쉬운 고전부터 찬찬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처음에는 그 맛을 못 느끼지만, 마치 평양냉면처럼 시간이 갈수록, 경험이 쌓여갈수록 그 맛은 점점 자신도 모르게 체화되어 갈 것이며, 종국에는 중독 수준까지 가게 될 것입니다. 물론 선한 중독이겠지요.




차칸양

"경제·경영·인문적 삶의 균형을 잡아드립니다"

- 재무 컨설팅, 강의 및 칼럼 기고 문의 : bang1999@daum.net

- 차칸양 아지트 : 에코라이후(http://cafe.naver.com/ecolifuu) - - 목마른 어른들의 배움&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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