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칸양 Mar 06. 2020

먹고 사는 문제를 놀이로 만드는 법

#67, 삶이 곧 '놀이'라면! 놀이의 위대함!


바로 사는 법 - 삶을 놀이하며 살기


요한 호이징하의 『호모 루덴스』는 “인간 사회의 중요한 원형적 행위에는 처음부터 전부 놀이가 스며들어 있다”는 주장을 담은 책이다. 이 책의 중요한 관점은 “진정한 의미의 순수한 놀이가 문명의 주된 기초 중의 하나”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저자는 놀이가 “사회 구조 그 자체”이며 “문명 생활의 위대한 원동력들(법과 질서, 상업과 소득, 학문 등)이 놀이의 원시 토양 속에 뿌리 박고” 있음을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을 해박한 지식으로 설득을 시도하였고, 시도는 성공했다.


구본형 선생님의 책을 읽으며 일을 놀이처럼 한다는 생각을 처음 했던 것 같다. 즐거운 개념이었고 이후 나는 일은 곧 놀이다, 라는 생각을 가졌다. 이런 나에게 『호모 루덴스』를 읽는 것은 “삶은 놀이”라고 여겼던 소박한 생각이 그럴듯한 철학으로 고정되는 과정이었다. 게다가 플라톤은 이런 말까지 했다.


"무엇이 바로 사는 방법인가? 삶을 놀이하면서 살아야만 한다. 즉, 어떤 경기를 하거나, 제사를 지내거나, 노래하고 춤추거나 하며 살아야 한다. 그러면, 사람은 신을 달래 수 있고 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으며, 경쟁에 이길 수 있다."



삶을 놀이로 만들기 위해


삶이 놀이라고 하여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놀이가 제대로 진행되려면 공정하고 체계적인 질서가 필요하다. “놀이는 절대적이며 최고의 질서를 요구”하는데 이 질서가 무너지면 놀이도 망치게 된다. 또한 놀이의 몰입에는 진지함이 깃든다. 땅따먹기를 할 때 엄지손가락으로 돌을 튕기기 직전이나 당구 게임을 할 때 수구를 치기 직전의 스트로크 장면을 생각해 보라. 금방 진지함을 발견할 수 있다. 놀이에는 질서가 필요하고 진지함은 기본이다. 질서와 진지함이 있어야 놀이가 주는 기쁨과 흥분, 그리고 몰입의 즐거움은 최고가 된다.


삶이 놀이다. 마땅히 질서를 지키고 진지함을 갖추는 것은 놀자고 마음먹은 자들이 갖춰야 할 준비물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놀겠다는 마음가짐이다. 사실, 진지함은 준비물인 동시에 제대로 노는 자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한 번 신나게 놀아보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이 놀이의 규칙에 맞추어 신나게 놀 때 진지함의 영역으로 뛰어드는 것이다. 삶이 놀이이니 신나게 놀듯이 삶을 살면 된다. 어떻게 하면 놀이를 즐길 수 있을까? 놀이의 기술이 있지는 않을까? 단순한 기술일까? 종합적인 기술일까? 삶의 영역이 다양하고 짧지 않다는 점에서 삶을 놀이처럼 살아가는 기술은 종합 예술이라 할 수 있다.


농구를 잘 하기 위해서는 드리블 기술, 패스하는 기술, 슛하는 기술 등을 연습해야 한다. 농구가 어떤 기술로 이뤄져 있는지를 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삶도 보다 구체적인 영역으로 나눌 수 있지 않을까? 박해조 선생은 구체적으로 의식주 놀이, 만남 놀이 그리고 문제해결 놀이의 3가지로 삶의 놀이를 구분하였는데 이 구분에 따라 3가지의 놀이를 최대로 즐길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 보는 것이 괜찮은 방법으로 생각되었다. 오늘은 그 중에서도 의식주 놀이에 대해 생각해 본다.



의식주 놀이 : 친구아, 놀자!


혼자 살다보니, 늘 신경 쓰이는 것이 뭘 먹을까, 하는 고민이다. 금방 먹고 나서 돌아서면 어느 새 식사 시간이 다가온다. 조금 전만 해도 부르던 배가 이제는 고프다고 꼬르륵 거린다. 이 글을 쓰다가도 허기가 느껴져서 방금 스프를 전자레인지에 넣어두고 조리 시간을 맞춰두고 왔다. 하루 세 번 맞이하는 식사 시간은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정말 중요한 삶의 영역이다. 놀듯이 준비하고 식사할 수 있다면 즐거울 것이다. 마찬가지로 늘 옷을 입고 있고 있으면서도 외출할 때마다 신경을 써야 하는 옷 문제와 매일 잠을 자고 생활해야 하는 주거 문제를 놀면서 해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의식주를 해결해 주는 것은 직업적 일을 통한 최소한의 경제적 능력이다. ‘일이란 나의 목숨을 이어주는 것이며, 사회와 나를 이어주는 다리며, 나와 가족을 이어주는 끈’이다. 그러므로 직업적 일을 놀이로 만드는 것은 삶을 놀이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운 이들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다. 초등학교 6학년이었을 때, 같은 반 친구 준호가 곧잘 우리 집에 놀러오곤 했다. 그 녀석이 우리 집 앞에서 외쳤던 소리는 “희석아 놀자”였다. 그런데 성인이 된 지금의 나는 “같이 놀자”라는 말보다 “같이 일하자”라는 말을 훨씬 더 많이 한다.



일과 놀이. 무슨 차이가 있을까?


준호는 놀러올 때 늘 하고 싶은 것을 미리 마음속에 결정해 두고 오거나 혹은 우리 집에서 하고 싶은 놀이를 함께 찾았다. 하고 싶은 일을 찾느라 시간이 걸릴 적은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하고 싶은 것을 찾았다. 한 번도 둘 다 하기 싫은 어떤 것을 한 적은 없다. 하기 싫은 것을 한다면 그것은 이미 놀이가 아니다. 우리는 늘 하고 싶은 일을 했고 그것은 곧 놀이였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 이것이 바로 놀이의 본질이다. 그렇다면, 직업을 놀이로 삼기 위해서는 그것이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이어야 한다. 자신의 재능과 관련된 일은 재밌다. 자신이 잘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기질적 특성과 연관된 일은 쉽게 할 수 있다. 자신에게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자신의 재능과 기질을 직업과 연결시키는 것이 놀면서 일하기의 절대 원칙이다.


일을 놀이처럼 하기 위한 또 하나의 비결을 지하철에서 발견하게 되었다. 지하철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행상인데 좀 특이한 물건을 꺼냈다. 한두 번 정도 보긴 했지만 가을에 접어들 무렵의 선풍기보나 ‘한국인이 좋아하는 명곡 100선’과 같은 품목만큼 자주 등장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름하여 요술팽이가 그것이다. 팽이가 돌 때 전자불빛을 발하는 것이 유치하면서 신기하기도 하다. 행상 아저씨는 팽이의 힘이 떨어지려 할 때면 두어 차례 매질을 해 댔고, 그 매질에 팽이는 힘을 얻어 회전을 계속하였다. 매질을 쉬고 회전을 하는 동안 아저씨는 지하철 앞뒤를 오가며 홍보 멘트를 날렸다. 만약 장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 쉼의 순간에 팽이를 보며 즐거워할 것이다. 매질 뒤에 신나게 돌아가는 팽이의 회전을 보며 일시적인 한가함을 즐기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일하기의 묘미다. ‘바쁜 일 속에서 한가함을 찾아내 바쁨과 한가함을 반복하는 것이 최선의 놀이’인 셈이다. 박해조 님은 놀자의 ‘놀’과 일하자의 ‘일’이 합해 ’놀+이‘란 말이 되었다고 설명했다. ’놀자와 일하자는 따로 떨어져서 존재할 수 없음‘을 이미 놀이의 개념 속에 삽입해 두었던 것이다. 놀이란 놀고 일하고의 절묘한 조화가 완성되어 최고의 성과를 창출하는 일하기의 또 다른 표현이다.




직업적 일을 놀이로 만들기 위한 비결을 정리하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발견하여 그것에다 쉼과 여유를 불어넣는 것이다. 직업적 일을 놀면서 할 수 있다면 곧 게임에서 승리하게 된다. 게임을 승리로 이끄는 강력한 요인이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즐거움이 커질수록 게임에서의 승률도 높아진다. 의식주를 놀이처럼 즐길 수 있는 비결은 곧 직업적 일을 놀이로 만드는 것이다. 놀면서 일하기를 통하여 의식주를 생존을 위한 경쟁이 아니라 삶의 행복을 위한 놀이로 만들 수 있다. 놀면서 일하기는 일상 속에 자신의 놀이터를 만드는 것이다. 일찍이 구본형 선생님의 말을 실천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루를 즐기지 못하는 것은 생활고나 가난 때문이 아니다. 즐길 수 있는 자신의 세계가 없기 때문이다."

                                                                                                 - 구본형 -



                                                                     2007년  10월 22일


                                                           -- 연지원(변화경영연구소 3기 연구원) --


* 변화경영연구소의 필진들이 쓰고 있는 마음편지를 메일로 받아보시려면 여기를 클릭해 주세요.




탐 설리반(Tom Sullivan)이라고 하는 미국의 시각장애인 사업가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절망과 자괴감에 빠졌던 자신의 인생을 바꾸어 놓은 말은 딱 세 단어였다고 말합니다. 어렸을 때 항상 외톨이로 지내던 그에게 어느 날 옆집 아이가 건넨 말, 그것은 바로 “같이 놀래?(Want to Play?)” 였다고 합니다. 만약 옆집 아이가 그에게 그 말을 건네지 않았다면 그의 인생은 지금과는 많이 달랐을 것이라 고백합니다.


2009년 암으로 안타깝게 우리의 곁을 떠난 장영희 교수, 그녀는 저서 『문학의 숲을 거닐다』에서 모든 인문학의 기본 주제는 “같이 놀래?”일지도 모른다며 조심스럽게 말합니다. 형형색색으로 다르게 생긴 수십억의 사람들이 서로 부대끼고 자리싸움하며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인간적 보편성을 찾아 어떻게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궁극적으로 화합하고 사랑하며 살아가는가를 가르치는 것이야말로 인문학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이라는 겁니다.


결국 '삶은 놀이'라는 기본적인 생각은 인문학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인문학의 행동적 표출이 곧 놀이라는 말과도 같죠. 인문학은 어떻게 하면 사랑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화두로 삼고 있습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삶의 많은 부분을 놀이로 전환시킬 수 있을 때 보다 가능해 질 수 있습니다. 일상의 단조로움을, 직업적 일을, 사람과의 무의미한 관계를 모두 다 놀이로 승화시킬 수 있다면 삶은 지금보다 더 현저히 풍부해 질 것입니다.




차칸양

"경제·경영·인문적 삶의 균형을 잡아드립니다"

- 재무 컨설팅, 강의 및 칼럼 기고 문의 : bang1999@daum.net

- 차칸양 아지트 : 에코라이후(http://cafe.naver.com/ecolifuu) - - 목마른 어른들의 배움&놀이터

매거진의 이전글 실연(失戀)을 지혜롭게 활용하는 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