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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칸양 Jul 21. 2020

나의 무료한 하루가 누군가에겐 루비콘강이 될 수 있음을

응급실 닥터 남궁인의 <만약은 없다> & <지독한 하루>를 읽고




이 책은 공대생들에게 인문학, 특히 시의 감수성을 불러 일으키는 정채찬 교수의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을 읽던 중 소개된 글을 보고 마음이 끌려 손에 접하게 된 책이다.


일상이 무료하신 사람이나 다른 사람들은 다 잘 살고 있는 것 같은데 왜 나만 유독 힘들까 하는 분들이라면 꼭 한번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이다. 아마도 나처럼 이 책을 넘기는 첫장부터 정신이 바짝 들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무료하고 평범한 일상에 감사의 마음을 더하게 될 것이다. 별 탈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것이 이토록 감사한 일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이 책의 저자인 남궁인은 응급실 닥터이다. 그는 일년 내내 응급실에서 지낸다. 이 곳이 그의 사무실이자 직장이기 때문이다. 그의 삶은 입을 다물기 어려울 정도로 처절하다. 그의 지독한, 하지만 어쩌면 그에게는 일상과도 같을 하루를 살펴 보자. 최대한 요약을 했지만 그래도 길다. 심호흡 한번 하고 쭉 읽어 보시라.



힘겨운 날의 예감이 있다. 근무를 시작하자마자 간암 말기 환자가 들이 닥쳤다. 그는 조만간 죽을 것이 분명했고, 그 과정에서 엄청난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지만, 미안하게도 내겐 손이 많이 가지 않는 환자였다. 돌아서자 의식이 떨어진 할아버지가 도착했다. 급하게 찍은 엑스레이에서는 오른쪽 폐가 거의 사라져 있었다. 어젯밤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급속도로 진행해서 급성 호흡부전까지 유발하는 악독한 폐렴이었다. 의식이 돌아오지 않아 나는 급히 삽관을 결정했다. 본인의 힘으로는 산소 교환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으므로 기계로 압력을 가해서 고농도의 산소를 투여하며 폐렴을 치료해가는 방법이었다. 나는 보호자를 불러 간단히 말했다.


“악성폐렴입니다. 죽을 뻔했습니다. 하지만 일단 한고비는 넘겼습니다. 아버님이 이 위기에서 돌아오실지는 아버님만 알고 계십니다. 지켜보도록 합시다.”


설명을 서둘러야 했다. 벌써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열 명을 넘어가고 있었다.


나는 급히 진료실로 들어와 한 젊은 여성의 목에 걸린 가시를 뽑았다. 그때 인턴이 심전도 사진 한 장을 들고 왔다. 지금 당장 심장이 썩어가고 있는 사람의 심전도였다. 방금 전 간암 환자의 것으로 심근경색이었다. 나는 가시를 뽑던 집게를 던지고 달렸다. 환자는 이제 노랗던 얼굴이 창백하게 떠 있고, 의식이 가물거렸다. 환자는 즉시 심전도실로 옮겨졌다.


“갑자기 너무 아픕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었다. 그가 조만간 간암으로 죽는 것과 급성 심근경색으로 죽는 것은 죽음의 종류에 있어서 차이가 있을까. 하지만 그것은 분명하고도 엄연하게 다르다. 그에게 심장에서부터 느껴지는 날카롭고 찢어지는 듯한 통증을 조금이라도 더 느끼게 한 것, 또 그를 방치해서 사망 확률을 더 높은 것은 분명히 내 책임이다. 그가 간암으로 죽으면 나는 비난받거나 문책받지 않지만, 심근경색으로 죽는다면 비난받아 마땅하다.


나는 정신을 다잡고 남은 환자들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어느 정도 정리될 무렵 카트가 하나 들어왔다. 의식저하로 발견된 90세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나이만큼이나 지독한 몰골이었다. 온몸이 뼈만 남은채 가죽이 늘어져 있었다. 묻는 말에도 횡설수설하고, 손과 발을 심하게 부들부들 떨었다. 심지어 같이 온 아들이나 손자도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모든 검사를 했음에도 의학적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나는 보호자를 불러 치명적인 질환이 발견되지 않았으니, 당장 위급한 상황은 없을 거라고 알렸다. 의식이 떨어진 할머니는 이제 응급실 구석에서 조용히 요동치고 있었다.


잠시 후 또다른 할머니가 들어왔다. 오자마자 기운이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그래프를 보자 심장이 마지못해 간신히 뛰고 있는 것처럼 느렸다. 급히 병력을 확인해보니 예전부터 온갖 종류의 심장병을 가지고 있었다. 먼저 서맥(심장박동 횟수가 정상 이하인 경우)에 쓰는 아트로핀을 급하게 한계치까지 투여했다. 그러고 나서 밤시간에 몰려든 환자를 보기 위해 중환자실에서 돌아섰다.


밤시간 응급실 침대에는 장염 환자와 위염 환자, 뇌졸중 환자가 잔뜩 누워 있었다. 나는 그들 사이에서 뛰어 다니느라 한동안 겨를이 없었고, 그 와중에 심장병을 심하게 앓는 할머니가 또 왔다. 하지만 심장 대신 밤눈이 어둡고 몸이 둔한 탓에 후진하는 스타렉스 승용차에 정면으로 깔리는 사고를 당했다. 그 묵직한 뒷바퀴는 할머니의 골반과 복부를 뭉개고서야 멈추었다. 할머니는 자극에 대한 반응도 하고 대답도 가능했다. 하지만 아프다는 의사 표현조차 제대로 하지 못할 만큼 미약했다. 할머니의 몸에는 급정거했을 때 도로에나 남을 법한 타이어 자국이 왼쪽 골반부터 배꼭 근처까지 나 있었다. 나는 그 자국이 지나간 부위를 파악하기 위해 손으로 직접 눌러 보았다. 당연히 골반뼈는 으스러지고, 안쪽 장기도 으깨져 터져 나갔는지 배가 불러오고 있었다.


외과, 정형외과, 비뇨기과는 각각 응급수술이 필요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고령의 심장병 환자의 출혈을 멈추겠다고 배를 열면 일시적으로 출혈이 늘어나고 순환부전이 악화되어 급사할 가능성이 있었다. 결국 중환자실에 자리가 날 때까지 그녀는 처음 누운 그 자리에서 목숨을 견뎌야 했다. 의식이 떨어진다면, 그건 곧 죽어간다는 신호였다.


응급실은 밤에 몰려든 환자들과 아직 지켜봐야 하는 중환자들로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그 틈새로 한 할아버지가 왔다. 주증상은 호흡부전이었다. 어제부터 설사를 시작하며 기운이 점점 떨어졌고, 오늘은 호흡까지 약해졌다는 보호자의 말이 있었다. 체온과 혈압이 현격하게 떨어져 있었다. 이것만으로도 패혈증 범주에 들어갔고 사망확률이 높았다. 혈액검사 결과 그의 진단명은 ‘위장관성패혈증으로 인한 다발성장기부전’이었다. 나는 환자에게 응급투석관을 넣고 신장내과를 호출했다. 곧 중형 냉장고만한 투석기가 사정없이 돌아갔다. 환자의 마르고 부서져가는 몸은 기계의 부산함에도 아랑곳없이 의식을 잃고 곧게 누워 있었다.


그때 별안간 난동을 부리는 아주머니 한 분이 등장했다. 눈을 까뒤집고 손발을 여기저기 비틀며 사방을 후려쳤다. 혈압이 높고 왼쪽 동공이 비정상적으로 반응했다. 뇌출혈 같았다. 그녀를 중환자 구역에 눕히고 손발을 제압했다. 그녀는 통증을 가하자 격하게 반응을 보이고, 가만히 있을 때는 욕설이나 이해하지 못할 말을 내뱉었다. CT 검사를 하자 예상은 정확했다. 구불구불한 뇌를 찍은 흑백사진 안에서 뇌출혈이 하얗고 커다랗게 자리잡고 있었고, 출혈이 뇌와 뇌수를 반대쪽 두개골로 힘껏 밀어붙이고 있었다. 당장 두피를 열고 두개골을 떼어내 압력을 줄이는 수술을 하지 않으면 그녀는 무조건 죽게 된다. 하지만 수술을 하더라도 그녀는 중환자실에서 움푹 꺼진 머리통과 말라가는 눈동자로 회복되길 기다려야만 한다. 그리고 회복되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여생을 그렇게 보내야 한다.


상황이 조금 정리되고 밤이 깊어가자 응급실은 취객과 투닥거리다 다친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이윽고 평범하지만, 조금 시끄러운 취객이 한 명 들어왔다. 아저씨는 술에 너무 취해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 얘기를 종합하자면 구토를 하다가 피가 약간 섞여 나왔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아프다며 응급실이 떠나가도록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CT를 찍어도 별 이상은 나오지 않았다. 그의 난동에 나는 마취제를 써서 환자를 재워버렸다. 응급실은 금세 평화를 되찾았다.


이제 새벽 시간만 견디면 되었다. 오늘은 유난히 바쁜 하루였지만, 그럭저럭 새벽만 조용하면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만삭의 여인처럼 배가 빵빵하게 부른 중년의 남자가 들이닥쳤다. 차트에는 어떠한 조치도 불가능한 간경화 말기라고 적혀 있었다. 검사를 하자 평소보다 알부민 수치가 떨어진 것은 물론 신장 수치가 두 배나 올라가 있음을 확인했다. 그는 배에 찬 복수만 빼주면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안된다고 하자 그가 말한다.


“의사 양반, 오늘 나는 당신을 처음 봐요. 그러니 당신은 나를 몰라요. 나는 이 병으로 4년간 투병했고, 이미 전 재산을 다 써버려 남은게 하나도 없어요. 이젠 치료할 의지도 없고, 돈도 없고, 인생을 포기한지 오래요. 하지만 배가 이렇게 부르면 움직일 수가 없어서 병원에 오는 거요. 움직일 수가 없으니 못살겠소. 이것만 빼주면 지금까지처럼 내 맘대로 살 거요.”


간암 말기에 간신증후군까지 겹친 그의 기대 수명은 한 달 정도 된다. 입원 치료를 하면 한 달쯤 있다가 죽고, 집에 있으면 그전에 고칼륨혈증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죽는다. 나는 일단 주사기를 들고 와서 그의 배에 꽂았다. 뜨겁고 노란 복수가 대야에 고이기 시작했다. 복수가 많이 빠져 나가자 병색은 여전히 내일이라도 죽을 것 같았지만 몸동작은 한결 가벼워 보였다. 그는 자의퇴원서에 사인한 후 느리지만 가뿐한 발걸음으로 응급실 자동문을 향해 나아갔다. 머지않아 내가 혹은 다른 누군가가 그의 사망진단서를 쓰게 될 것이었다.


간신히 새벽을 넘기고 나자 해가 어렴풋이 떠올랐다. 남은 환자를 정리할 시간이었다. 브리핑 준비를 하던 중 마취제를 써 재운 취객의 생체 징후가 이상함을 발견했다. 열이 나고 혈압이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혹시나 해서 그의 CT를 다시 확인해보았다. 복부의 장기는 여전히 온전했다. 그렇다면 혹시... 나는 CT의 세팅을 바꾸어 복부 CT 위쪽의 흉부를 관찰했다. 아주 조금밖에 나오지 않은 식도 하방 부위가 조금 이상해 보였다. 겁이 덜컥 났다. CT를 자세히 확대하자, 식도가 파열되어 음식물로 보이는 액체가 식도에서 흉강으로 흘러나와 염증을 만드는 것이 아주 작게 보였다.


“아... 제길, 젠장, 부르하버증후군(Boerhaave syndreome)이다.”


부르하버증후군은 심하게 구토하다가, 식도가 그 압력을 견디지 못해 터지는 병이다. 워낙 드물어, 대학병원 응급실에서도 1년에 두세명 정도 볼 뿐이었다. 터진 식도 근처로 음식물이 쏟아져 흉강 안이 빠른 속도로 괴사하기 때문에 응급수술이 필요하다. 수술 부위가 워낙 깊기 때문에 갈비뼈 한두 개를 척추 옆에서 자르고 수술을 시작해야 한다. 수술이 늦으면 금방 패혈증이나 쇼크가 동반되고, 사망 확률이 비약적으로 증가한다. 수술하지 않으면 거의 100퍼센트 사망한다. 수술 후 재활과정도 끔찍하다.


취객 환자가 수술방으로 빨려들어갔다. 비난과 책망은 나의 몫이었다. 명백한 실수라 피할 수가 없었다. 하루에 찾아오는 200명 가까운 사람 중에서 어떤 사람이 가면을 쓰고 갑자기 내게 불행이나 죽음을 내보일지 감당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퇴근할 수 있었지만, 한동안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나는 응급실 스테이션에 엎드려 울 기력조차 없었다.


어쨌든 하루를 끝내야만 했다. 그래야 내일을 맞을 테니까. 나는 기운을 짜내 간신히 응급실 밖으로 나왔다. 오전의 바람은 매섭고 몸이 유난히 차가웠다. 수고했다고 위로해줄 사람도 없었다. 돌아갈 구멍조차 없는 느낌이었다. 사람들이 나에게 손가락질 하는 것만 같았다. 그때 문득 간밤에는 아무도 죽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되레 신기한 일이었다. 아무도 죽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곧 죽을 거라고 선언했고, 실제로 그렇게 될 것이다. 나는 내 목숨이 간신히 살아 있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간신히, 하지만 온몸에 기운이 없어, 곧 죽을 운명인 것만 같았다. 아, 차라리 그 일이 미리 다가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나는 어둠만 복 있는 동전의 뒷면처럼, 영원히 사라져버리고 싶었다.


                                                                  -- <지독한 하루> 중에서 --


 

이 책을 읽는 동안, 그리고 읽고 나서도 마음이 편치 못하다. 그만큼 심장을 쥐어 짜는 듯한 이야기들이 연속된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아프고, 병들며 또한 사고로 인해 죽음에 다가선다. 응급실은 죽음과 삶의 경계이자 문턱인 셈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어 보는 것이 좋은 이유는, 죽음을 외면한 채 살아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응급실에서 마주치는 죽음은 대개 갑작스러움을 동반한다. 의사가 환자를 살리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그 짧은 찰나에 죽음과 삶의 경계는 사라지기도 한다. 그 순간이 몇 분일수도, 혹은 몇 시간, 며칠일 수도 있다. 짧기 때문에 우리는 죽음을 준비할 시간적 여유를 가지지 못한다. 치열한 삶을 살았다면 최소한 그 삶에 대한 정리가 필요하지 않을까. 태어나면서 마지막 순간까지의 삶을 찬찬히 돌이켜 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은 그 준비를 위한, 마음가짐과 동기에 대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어차피 맞이할 죽음이라면, 자신은 어떤 죽음을 맞이할 것인지, 어떻게 자신의 마지막을 준비할 것인지 미리미리 생각해보고 정리해 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꼭 그렇지 않더라도 자신의 일상에, 숨쉬고 살아 있음에 감사하고 싶다면 이 책을 찬찬히 읽어 보기 바란다. 2권 모두 읽어도 좋은데, 가능하면 첫 책인 <만약은 없다>부터 읽기를 권한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하지만 저자의 생각을 쫓아가는데 있어 조금 더 나아 보인다.





차칸양

"경제·경영·인문적 삶의 균형을 잡아드립니다"

- 재무 컨설팅, 강의 및 칼럼 기고 문의 : bang1999@daum.net

- 에코라이후(http://cafe.naver.com/ecolifuu) - - 목마른 어른들의 배움&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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