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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칸양 Dec 14. 2020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생긴 일,
두 할머니 이야기

건강보험료, 참 쉽지 않네요...


지난 12월초 건강보험료 상담을 위해 집 근처에 위치한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찾았습니다. 오전 10시경인데 사람들로 꽤나 북적이더군요. 우편에는 가급적 방문을 자제해 달라고 했지만, 그렇다고 전화 연결도 쉽지 않다보니 차라리 상담을 위해서는 다소 번거롭긴 해도 직접 발품을 파는 것이 더 낫겠더군요. 보다 자세히 물어볼 수도 있고요.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는데 창구가 아닌 제 뒤편에서 건강보험료에 대해 상담하는 내용이 들려 옵니다. 연세가 상당히 많아 보이는 할머니와 그보다는 조금 어려보이는(?) 할아버지를 대상으로 건강보험공단의 중간 관리자급 정도 되시는 분이 설명을 해주시고 계시더군요. 무슨 얘기일까,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한번 살짝 들어봤습니다.


“할머니, 작년까지는 건강보험료로 최저금액인 약 14,000원 정도만 내셨잖아요. 그런데 올해부터는 법이 좀 바뀌었어요. 할머니는 아파트와 같은 재산은 없고 이자소득만 있는데, 보니까 작년에 약 1,900만 원 정도 돼요. 이게 작년까지는 2,000만 원 이하일 경우 소득에서 제외가 되었는데, 올해부터는 1,000만 원 이상부터 소득으로 잡히게 되어 있어요.”


“네...”


“그러니까 할머니는 1,000만 원 초과분인 약 900만 원 정도가 소득으로 잡히게 돼서 올해 12월부터 건강보험료로 매월 9만 원 정도를 내셔야 해요.”


할머니는 이해가 잘 되지 않으시나 봅니다. 그러자 할아버지가 묻습니다.


“법이 그렇게 바뀌었다니 그렇다 치고, 그럼 원래대로 건강보험료를 낼 수 있는 방법은 있어요?"


“없어요. 법 개정이 그렇게 되었기 때문에 저희도 어떻게 해드릴 수가 없어요.”


할머니, 할아버지 모두 난감한 표정입니다. 갑자기 8만 원 가까운 돈을 더 내야한다니 말이죠. 그러자 직원이 다른 이야기를 꺼냅니다.


“그래도 할머니는 상당히 양호한 편이에요. 어제 다른 할머니가 오셔서 상담을 받고 갔는데, 그 할머니는 1시간 반을 그냥 우시다 가셨어요. 그 할머니는 현재 살고 있는 10평짜리 오래된 아파트만 하나 가지고 계신데, 수입이라고는 나라에서 주는 기초연금 월 25만 원과 교회에서 주는 10만 원 정도가 다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다보니 겨울이 되도 가스비가 걱정되어 제대로 난방도 못한 채 지내고 계시고요.”


“.....”


“그 전까지는 피부양자로 등록되어 건강보험료를 내지 않으셨데요. 그런데 갑자기 부양자의 사정으로 피부양자 자격이 상실되면서 건강보험료를 매달 18만 원씩 내게 된거에요. 저한테 와서 원래대로 돌려달라 애원하시는데, 제가 어떻게 해드릴 수 있는게 없다고 하니까 그때부터 우시는 거에요. 저도 많이 답답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점심만 한끼 대접해 드리고 돌려 보냈어요.”


“...”


“그 할머니에 비하면 할머니는 비교할 바도 아니에요. 건강보험료 내시기 싫으면 방법은 한가지 있어요. 은행에 맡겨 이자 받지 마시고, 그 돈을 그냥 꺼내서 쓰세요. 그러면 건강보험료 원래대로 14,000원 정도만 낼 수 있어요. 이자소득이 발생하지 않을 테니까요. 할머니 연세면 원금만 쓰시더라도 충분할 테니까 이제부터는 마음껏 쓰시며 사세요.”


“...”


할머니는 별 다른 말없이 할아버지와 함께 그곳을 떠나셨습니다.




참 어찌보면 요지경 세상이랄 수 있네요. 건강보험료의 정의나 성격을 떠나서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 특히나 소득이나 자산의 형평성까지 고려해 그 비용을 공평하게 배분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듯 합니다. 그렇다고 건강보험료를 미국처럼 민영화시킬 경우 엄청난 비용의 상승이 일어날 테고요.


가슴이 아팠습니다. 소득이 거의 없는 할머니가 매달 18만 원이나 되는 건강보험료는 어떻게 감당해야 할까요? 지금 드는 생각으로는 아파트를 처분해야만 그 비용을 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이후 할머니의 삶은 얼마나 더 고단해질까요...


생각이 많아지는 하루였습니다.




(표지 이미지 출처 : https://ptwiz.com/our-works2019/4_%EA%B5%AD%EB%AF%BC%EA%B1%B4%EA%B0%95%EB%B3%B4%ED%97%98%EA%B3%B5%EB%8B%A8_%EC%8B%9C%EB%AF%BC%EC%B0%B8%EC%97%AC%EA%B3%BC%EC%A0%9Cpt_20190212%EB%94%94%EC%9E%90%EC%9D%B8%EC%88%98%EC%A0%95%EC%99%84-9)




차칸양

"경제·경영·인문적 삶의 균형을 잡아드립니다"

- 재무 컨설팅, 강의 및 칼럼 기고 문의 : bang1999@daum.net

- 에코라이후(http://cafe.naver.com/ecolifuu) - - 목마른 어른들의 배움&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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