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칸양 Dec 10. 2020

설레임 가득, 춘천가는 길(4)

당신이 잘 살고 있다면 그걸로 만족이다


☞ 설레임 가득, 춘천가는 길(3)



대학로 소극장 공연 에피소드


야경의 산토리니를 뒤로 한 채 이제는 강촌을 향해 길을 재촉합니다. 에코독서방 안동점분들을 만나러 갑니다. 얼마 만의 만남인가요. 아, 작년 가을에 네 분은 뵌 적이 있네요. 에코 강연모임에 참여차 직접 안동에서 서울까지 올라왔었지요. 1박 2일의 일정으로 말이죠. 한 분의 아이디어로 전날 저녁 대학로에 가서 공연도 한편 봤는데 여기에 재밌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었습니다.


사실 지방에서는 소극장 공연을 보기가 어렵죠. 공연도 공연이지만 소극장 자체가 거의 없으니까요. 그러다보니 한 분이 대학로 공연을 보고 싶다했고, 일사천리로 예약까지 해 놓았던 거죠. 저는 가이드 겸 깍두기(?)로 참여했는데, 근처에서 간단히 저녁을 먹은 후 설레는 맘을 안고 함께 공연장으로 향합니다. 도착해 예약한 표를 받으려하자 직원이 난감한 표정을 짓습니다.


왜 그럴까, 그 이유를 들어보니 어이쿠 그만, 예약한 날짜가 이미 지나가 버린 겁니다. 예약할 때 날짜를 잘못 지정했나 봅니다. 어쩔 수 있나요. 읍소전략을 써야지. 합세하여 직원분에게 사정을 알리기 시작합니다. 실수가 있었다. 이 분들은 이 공연을 보기 위해 오늘 안동에서 여기까지 오신 분들이다. 예약 오류가 있었지만, 그래도 자리에 여유가 있으면 꼭 관람할 수 있도록 해줬으면 좋겠다, 등등. 사정을 들은 직원이 알겠다 하더니 또 다른 직원분과 잠깐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리고 표를 끊어 줍니다. 다행입니다. 아무래도 평일이다보니 자리에 여유가 있었나 봅니다. 그래도 넓은 배려를 해준 직원에게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합니다. 분명 복 받으실 겁니다~^^


공연은 무척이나 흥겨웠습니다. 몇 년만에 소극장 공연을 봤는데,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연극 배우들의 열연은 항상 인상적이네요. 뭐랄까요. 혼신의 힘을 다한다고 할까요. 1시간 반 정도의 공연이 끝나고 배우들의 마지막 인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포토타임. 안동 여성분들은 어느새 배우들에 섞여 사진을 찍기 위해 자세를 잡고 있네요. 그리고 저와 또 다른 남자 한 분을 빨리 오라 손짓해 부르고 있습니다. 이런 사진을 거의 찍지 않는 저와 남자분은 상당히 쑥스런 순간입니다. 하지만 이런 때 아니면 언제 사진을 찍을까요. 못 이기는 척 가서 자리를 잡습니다. 그렇게 찰칵. 또 하나의 작은 추억으로 남는 순간입니다.



허물없음. 언제나 반가운...


채 20분 달렸나. 어느새 강촌, 그리고 만나기로 한 펜션에 도착합니다. 주인분 왈, 안동팀도 좀 전에 도착했다 하네요. 노크를 하고 들어가니 모든 분들이 반겨줍니다. 안동팀의 큰 언니 청라누님, 명상과 철학의 내공이 깊은 토마후나형님, 언제나 분위기 메이커인 반야누나, 오랜 만에 만나는 친구 리치팜 그리고 새 멤버인 부엉이님까지. 독서방 운영자인 콩콩과 편안함 누나는 늦게 출발한 까닭에 지금 오고 있는 중이라 하네요. 이들의 얼굴과 표정을 보며 이런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허물없음. 언제나 반가운. 보면 기쁘고, 못 봐도 넉넉한. 오랜 친구와 같은.’


그 동안의 안부와 더불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눕니다. 거침없다고나 할까요. 주제도, 화제도 그리고 내용도 정신없이 차원을 건너뛰고 있지만 모두의 집중과 몰입, 그리고 화기애애함이 담겨 있습니다. 이렇게 편안하고 즐거울 수가. 이런 식이라면 금방 밤을 새우고 새벽이 밝아 올 것만 같네요. 누군가가 저녁을 먹으러 가자고 제안합니다. 역시나 춘천에 왔으니 닭갈비를 먹어야겠죠? 식당을 찾아 강촌 거리를 걷는데 너무 사람이 없습니다. 대학생들로 항상 북적였던 이 곳 강촌이 역시나 코로나로 인해 된서리를 맞은 듯 합니다. 적막함까지 느껴지는 거리, 어서 젊음의 열기로 다시 가득해 지기를.


리치팜의 안내로 들어간 식당. 꽤나 넓습니다. 하지만 손님은 저희와 다른 한 팀이 전부. 한적해서 좋긴 하지만 그래도 너무 쓸쓸하게 느껴집니다. 식당도 활기가 있어야 하는데 말이죠. 총 7명이니 일단 닭갈비 7인분을 주문합니다. 오, 나오는 양이 꽤나 푸짐해 보이네요. 물론 볶다보면 줄어들겠지만 그래도 상당한 양입니다. 볶는 중 올라오는 냄새와 연기가 식욕을 자극합니다. 드디어 한 젓갈. 아, 닭갈비. 역시나 맛있네요. 특히나 춘천에 와서 직접 먹는, 게다가 좋은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며 즐기고 있으니 어찌 맛없을 수가 있을까요. 이 와중에도 수다는 끊어지지 않습니다. 행복한 저녁입니다.



큰 선물이었던 춘천여행


이후 강촌의 밤거리를 걷습니다. 그 유명한 출렁다리도 건너 보고요. 강변 한쪽에 70년대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네요. 우리 부모 혹은 큰 형님 세대뻘의 사람들이 강촌과 출렁다리를 배경으로 포즈를 잡고 있습니다. 당시의 그 순간들. 얼마나 좋았을까요. 좋은 사람들과 놀러와서 즐기는 순간순간들. 사진에 미처 담기지 못한 즐거움과 기쁨, 그리고 행복이 뒷배경에 깔려 있는 듯 합니다. 사진을 보며 한가지 기원을 합니다.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아가시길.


펜션에 도착하니 때맞춰 콩콩과 편안함 누나가 도착합니다. 반가움을 나눕니다. 콩콩을 보는 순간, 그 전보다 훨씬 더 성숙해지고 성장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모임을 이끌고 자신의 삶을 만들어 가는 과정들을 계속해 지켜볼 수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그녀의 성장은 진행중입니다. 아마도 지금의 회사를 나와 본인만의 일을 시작할 때쯤 되면 그녀는 숨겨두었던 날개를 펴고 훨훨 날아다니기 시작할 겁니다. 어디까지 날아갈 지는 저도 잘 모르겠네요.


모든 멤버들이 모인 채 수다는 다시 시작됩니다. 제게는 숙제가 하나 떨어졌네요. 안동팀 멤버들 모두가 사주신 제 책에 사인을 해야 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적어가며, 그리고 가장 하고 싶은 말을 생각하며 한자 한자 감사함을 담아 눌러 씁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생각보다 책에 사인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모르는 사람이면 일반적인 내용을 적을 수 있으므로 그나마 쉬운 편이지만, 아는 분이라면 절대 허투루 적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책의 사인입니다. 모두의 수다로 방은 왁자지껄 어수선하지만 저 혼자 한쪽에서 진지모드네요. 휴, 이제야 숙제를 끝냈습니다.




참 좋습니다. 만나고 싶었던 사람들과 함께 같은 공간에서 즐거운 시간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 말이죠. 만나지 못하면 그리워하는 대로, 또 만나면 함께 즐길 수 있다는 것으로 우리의 관계는 연결되어 있습니다. 팽팽하진 않지만, 밀도 깊은 느슨함이라 할까요? 모두의 함박 웃음이 찰칵찰칵 가슴 속 카메라에 선명하게 담깁니다. 다소의 색이 바랠지라도 평생 잊혀지지 않을 순간들입니다.


다음날 일정이 있는 관계로 자리에서 일어서야 할 시간입니다. 그래도 새벽 2시입니다. 다음날까지 함께 하지 못함에 대한 깊은 사과를 합니다. 저도, 모두가 아쉽습니다. 하지만 우린 또 만날 것이고, 계속해 서로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접할 것입니다. 잘 살고 있으니 앞으로도 잘 살 것이고, 그것으로 우리는 만족할 수 있습니다. 돌아오는 새벽길, 약간의 안개가 마음을 더 촉촉하게 만들어 주네요. 이번 춘천여행은 제게 큰 선물이었네요. 행복을 꽉꽉 눌러 담은. 이래서 삶이 살아볼 만 한 것 같습니다.


(표지 이미지 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img_pg.aspx?CNTN_CD=IE001897270&tag=%EA%B0%95%EC%B4%8C%EC%97%AD&gb=tag)




차칸양

"경제·경영·인문적 삶의 균형을 잡아드립니다"

- 재무 컨설팅, 강의 및 칼럼 기고 문의 : bang1999@daum.net

- 에코라이후(http://cafe.naver.com/ecolifuu) - - 목마른 어른들의 배움&놀이터


매거진의 이전글 한국 주식시장, 대체 어디까지 오를까?(2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