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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칸양 Dec 09. 2015

소심은 또 다른 소심을 낳는다

#7 소심의 원천을 찾아

(표지 이미지 출처 : http://www.econovill.com/news/articleView.html?idxno=245004)



당신의 기억 속에 떠오르는 첫 장면은?

                                                                                                                                   

자, 이제부터는 나의 아스라한 기억들을 더듬어 보자. 첫 번째로 떠오르는 장면은 언제 때의 기억인가. 3살? 5살? 뚜렷한 기억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굳이 시간의 순서대로 여행을 떠날 필요는 없다. 가장 먼저 선명한 이미지로 떠오르는 장면부터 기술해보자. 비교적 기억이 쉬운 초등학교 때여도 좋다. 중요한 것은 잊어버리고 살았던 나의 모습을 찾는 것이고, 그것이 현재의 나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그 가상의 고리를 만들어 보는 것이다.


뚜렷한 영화의 한 장면과도 같은 각인되어진 이미지 하나가 자신에게 다가오는가? 그렇다면 그 이미지는 어떠한가. 따스한 봄날 초록 내음처럼 상큼하고 밝은 이미지인가? 아니면 짙은 안개 속의 어둡고 침침한 회색빛 이미지인가? 돋보기를 들이대듯 그 장면을 좀 더 세부적으로 들여다 보자. 아마도 그 장면은 하나가 아닐 것이다. 영화의 필름이 빠른 속도로 돌아가듯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여러 장면들이 반복적으로 뒤엉키듯 돌아가고 있을 것이다. 밝고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는 나의 모습과 더불어 의기소침하게 구석에 찌그러져 울고 있는 나의 모습이 오버랩될 것이다.


내게는 그 어떤 선택권도 없었다...


나의 경우, 과거여행을 통해 가장 먼저 떠오른 이미지는 초등학교 3학년 때의 겨울이었다. 이미 차가울 데로 차가워진 방, 햇빛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아 어둠 속에 갇혀져 있던 방, 빨간 3단 담요 위에 앉아서 울고 있는 나의 모습이었다. 아무도 없이 혼자서 하루를 보내야만 했던 외톨이의 모습이었다. 나는 외로웠다. 그리고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나는 혼자였다.


바로 1년 전만 하더라도 꽤나 평범했지만, 그래도 즐겁고 행복한 시간들을 보냈었다. 부모의 따스한 손길 속에 아무런 구김살없이 잘 자랄 수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집안에 닥친 사업의 실패는 가족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고 말았다. 평안하던 집에는 소위 빚쟁이라는 사람들이 찾아와 소동을 피우기 시작했고, 부모님은 그들과 싸우거나 혹은 피하거나 하며 조용할 수 조차 없게 되었다. 그 소용돌이 속에 어렸던 나 또한 분위기에 휩쓸릴 수 밖에 없게 되었다. 내게는 그 어떤 선택권도 없었다.


어릴 적 부모와 가정환경의 영향은 절대적이다. 가치관이 아직 정립되어 있지 않으며 스스로의 힘으로 삶을 개척해 나갈 수 있는 조그마한 힘도 없는 어린시절, 그때 자신에게 끼쳐지는 파장들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절대 잊혀질 수 없는 충격으로 다가온다. 소심은 그러한 척박하고 힘든 환경 속에서 자리잡는다. 그 충격은 일련의 사건들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거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조금씩 잊혀질 수 있겠지만, 무의식의 공간으로 스며들어가 자신의 성격 위에 덧씌워지게 된다. 성인이 된 지금 자신이 소심하다고 여겨진다면 그러한 영향이 나를 만들었을 것이다.


당신은 어떠한가. 당신 또한 지금의 당신에게 큰 영향을 끼쳤을 만한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그 이미지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떨리고 아픈가. 그 일이 없었다면 자신의 인생이 바뀔 수 있었을까.



소심의 원천이 당신의 소심을 만들었다


가장 먼저 떠오른 이미지가 선명하게 되새겨졌다면 그것이 당신에게 아로새겨진 소심의 원천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이 알게 모르게 무의식에 작용하여 당신의 인생에 영향을 미쳤음에 틀림없다. 그 사건 이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와보자. 그때부터 나의 모습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하지 않았는가. 부모가 떠날 것만같은 두려움, 이 세상에 나만 홀로 남겨질 것만 같은 불안감, 이로 인한 생각과 행동의 무의식적인 변화들. 그때부터 말수가 적어지고, 행동의 제약은 물론 사람들을 상대하는 것이 무서워지지 않았는가.


객관적으로 생각해보면 이러한 사건은 성인으로 비유하자면 절대 잊지 못할 가혹한 형벌과도 같은 것이다. 이것이 우리에게 더욱 내면 깊숙이 무의식적으로 작용하는 이유는 아무런 잘못도, 아무런 이유도 모른 채 겪을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어린 시기에는 당연히 혼자서 이러한 문제를 생각할 능력도 풀어낼 능력도 없다. 이것은 마치 화선지에 먹물 하나를 떨어뜨리는 것과도 같다. 먹물은 화선지에 스며들어 조금씩 조금씩 넓어진다. 그리고 어느 순간 보면 꽤나 넓은 영역을 차지하게 되고, 지울 수 없는 선명한 상처로 남는 것이다.


좋지 못한 일들은 유리창에 먼지를 닦듯 단번에 깨끗하게 마무리 되는 일이 거의 없다. 상처는 크든 작든 또 다른 상처를 낳는다. 소심 또한 또 다른 소심을 낳는다. 이때부터 우리의 가슴에는 이 세상 어느 누구에게도 털어놓기 힘든 불만이 쌓이기 시작한다. 불만은 다시 풀기 어려운 응어리로 남게 된다. 우리가 고작 할 수 있는 일은 참고 또 참는 것 뿐이다. 가슴 속에 깊이 묻어 두는 것뿐이다. 이때부터 우리의 어깨는, 마음은 천근 만근 무거워지기 시작한다. 


소심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겹겹이 두터워지고 강화된다. 선천적 기질에 덧붙여져 기질 자체를 옴짝달짝 못하도록 붙들어 매는 특징이 있으며, 그것이 본래의 성격인 것처럼 오해하도록 만든다. 또한 소심은 쉽게 떼어내기도 어려울뿐더러 어린시절 깊숙한 상처나 충격에 의해 만들어진 경우 그것은 거의 평생을 쫓아 다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가 소심을 쉽게 극복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심리학 특히 그중에서도 정신분석학에 의하면 세상 사람들은 누구나 크고 작은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고 한다. 하지만 유년기의 작은 사건과 사고들을 어떻게 대처했느냐에 따라 그 상처는 아련한 기억 또는 추억이 될 수 있으며, 쉽게 잊혀질 수 있다. 그러나 적절히 대응치 못하거나 회피하고 묻어둔 채 넘어갈 경우 그 문제는 언제든 다시 되살아나 스스로를 괴롭히는 요소로써 작용하게 된다. 오히려 굴려진 눈덩이 마냥 그 작은 부분이 점점 커지게 되어 성인이 된 현재까지도 삶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상처에 대한 심리치료뿐 아니라 소심의 극복 또한 결국은 자신의 내면에 문제점과 해결책이 동시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문제가 무엇인지 직시할 줄 알아야만 한다. 과거로의 여행을 통해 소심의 원천을 알았다면, 그리고 그것이 나의 인생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깨달았다면, 이제 조금씩 그 소심의 응어리를 풀어가는 작업을 시작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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