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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칸양 Dec 15. 2015

후배 양과장의 퇴사를 응원하며

( 표지 이미지 출처 : http://yongphotos.com/1118 )




지난 11월말, 회사 부서장급의 인사발령 공고가 떴습니다. 이미 귀뜸으로 알고는 있었지만, 그 안에 제 이름도 있었죠. 현 부서인 구매팀을 떠나 자금팀으로 이동해야만 합니다. 자금팀이야 근 10년을 근무한 경력이 있기 때문에 큰 걱정은 안됩니다만, 그래도 다시 새로운 마음과 각오로 시작해야 하겠습니다.


퇴사하고 싶다...


인사발표가 난 잠시 후, 팀원이자 후배인 양과장이 제게 오더니 잠시 시간을 내달라고 합니다. 조용한 장소로 가자, 조심스럽게 말을 꺼냅니다. “퇴사하고 싶다”고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죠. 전혀 어떤 낌새도 눈치채지 못했거든요. 그 이유를 묻자, 올 하반기부터 계속 염두에 두고 있었다 하네요. 회사에서 자신의 위치와 앞으로의 미래를 고려해 보았을 때, ‘얼마나 갈 수 있을까’란 생각과 함께 ‘그렇다면 지금부터라도 무언가 준비를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란 고민을 했다고 합니다. 퇴사는 재고해 보자며 말렸지만, 그리고 이왕 준비할거 1년 정도 더 다니면서 천천히 준비하는게 어떻겠냐고 조언도 해 보았지만, 이미 그의 결심은 확고했습니다.



이빨 빠진 호랑이, 인생을 돌아보게 되다


사실 양과장의 몸은 완벽하지 못합니다. 작년 4월쯤, 집에서 자던 중 새벽에 갑자기 그의 심장이 멈추었습니다. 아마도 아내의 빠른 발견과 응급조치가 없었더라면, 그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겁니다. 그 후로도 두, 세 번 그의 심장은 멈추었고, 아내는 그때마다 남편을 구해냈습니다. 병원에서는 조심스럽게 약간의 부정맥 증세(심장의 전기 자극에 문제가 생겨 심장 박동이 비정상적 혹은 불규칙하게 되는 증상)가 있는 것으로 진단했습니다만, 확실치는 않다고 했습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휴직을 했고, 계속해서 검진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왼쪽 가슴 안쪽에 심장 제세동기(부정맥을 보이는 심장에 고압전류를 극히 단시간 통하게 함으로써 정상적인 맥박으로 회복시키는 기기)를 삽입했습니다.


양과장은 6개월만에 회사에 복직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되었습니다. 즐겨하던 담배도, 그 좋아하던 술도 거의 마실 수 없게 되었습니다. 과거의 그는 독종(?)이었습니다. 경쟁이라면 죽어도 지기 싫어하고, 조직 내에서도 출세를 목표로 쉼없이 달리던 소위 조직형 인간의 대표주자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그리고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몸 상황은 그의 인생관을 과거와는 다르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비로소 회사 이후의 삶에 대해, 자신의 전체 인생에 대해 그리고 죽음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봄, 점심 식사 후 따스한 햇살을 맞으며 종종 그와 산책을 다녔습니다. 피어나는 봄꽃들을 보며 봄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리고 지금 숨 쉬며 살아가는 바로 이 순간 또한 얼마나 소중한 시간들인지, 삶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을 나누었죠. 그가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제대로 봄꽃을 가까이서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고요. 게다가 이렇게 만지며 향기를 맡아보기는 어릴 때 이후 처음인 것 같다고요. 우리들은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너무 소중한 것들을 놓치고 사는 것 같습니다. 양과장이 그랬죠. 저도 얼마전까지 그랬었고요. 이렇게 나누었던 얘기들이 그의 죽음에 대한 경험과 더불어 인생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나 봅니다.


덤으로 사는 인생,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아.


퇴사를 고민하던 그는 아내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아내가 이렇게 말했다고 하네요.


“당신이 살아가는 지금의 삶은 덤으로 얻은 시간들이야. 어차피 당신은 그때 죽은 목숨이나 다름 없거든. 덤으로 다시 살아가는 인생인데, 과거처럼 매여 살 필요는 없지 않을까. 그러니 지금부터의 시간은 당신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아. 너무 돈 걱정은 하지마. 필요한 돈은 어떻게든 벌 수 있을테니까.”


저는 양과장을 통해 그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럼에도 순간 코끝이 찡해지더군요. 덤으로 사는 인생, 예전처럼 얽매여 살 필요는 없다,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아라, 돈은 우선순위가 아니다...


지난주 부서 송별회를 하며, 양과장과 마지막 식사를 했습니다. 그의 표정은 무척 밝았습니다. 화요일이니까 바로 오늘부터네요. 한번도 해외여행을 가보지 못했다는 초등학교 두 딸을 데리고 대만으로 가족여행을 간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여행에 대한 기대로 많이 들떠 있다고 하는데, 제가 보기엔 그의 얼굴이 더 들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식사를 마친 후 헤어짐의 악수를 위해 손을 내미는 양과장. 저는 손대신 그를 꼭 안아주었습니다. 그의 어색한, 하지만 밝은 웃음이 참 좋았습니다.




그와 헤어지고 난 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양과장 아내의 말처럼 우리 또한 지금의 삶을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 생각하면 어떨까? 원래의 삶이 세상에 대한 법, 관습, 규정, 규칙 등에 매여 어쩔 수 없이, 피치 못하게 그렇게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삶이었다고 한다면, ‘덤으로 사는 삶’은 거기서 탈피하여 진짜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한 시간으로 만들고, 채워갈 수 있다면 어떨까 하는 그런 생각. 쉽진 않겠지만, 내년부터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그런 생각을 하며 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덧붙임


이지성씨의 책 <행복한 달인>에 보면, 유일한 박사가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오늘의 글과도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어 덧붙여봅니다.


“자네는 삶이 뭐라고 생각하나? 난 말일세, 삶은 선물이자 소풍이라고 생각한다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지구에 소풍 온 별들이라고 생각하지. 핵물리학자들이 발견한 사실에 의하면, 놀랍게도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성분 중 95퍼센트 이상이 별의 구성 물질과 동일하다네. 그러니 우리는 인간의 모습을 한 별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 난 과학자들이 발견한 사실을 놓고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네. 어쩌면 지구에 인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인간의 경험을 하고 있는 별들은 존재할 지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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