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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칸양 Apr 19. 2016

26개의 행복, 13개의 아픔

크고 작은 상처들은 인생을 깊어지게 한다


지난 주말에는 경제/경영/인문의 균형찾기 프로그램 에코라이후 4기의 첫 MT가 있었습니다. 강원도 횡성의 공기 좋은 곳에 위치한 한 펜션에서 1박 2일간 진행되었죠. 총 14명의 멤버 중 신혼여행을 떠난 1명을 제외한 13명이 참여했는데요, 특히나 광주에 있는 한 친구는 빗속을 뚫고 무려 6시간 반을 달려 와 모두를 감동케 했습니다.


MT라고는 했지만, 사실 전혀 놀지 못한 시간(오후부터 계속해 비가 내린 것이 오히려 다행이었을 수도...)이었습니다. 숙소에 2시경 도착하여 정리하고, 3시반부터는 곧장 수업을 진행했거든요. 이번 오프과제는 야외에서 진행되는만큼 평소의 경제관련 과제가 아닌 자신의 인생사에 대한 발표시간으로 채워졌습니다.



* 발표과제 : '나'에 대하여 35분동안 이야기하기! 


  - 발표내용 안에는 다음 사항들에 대한 묘사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함.

     *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2가지)

     * 살면서 가장 슬펐던 순간(1가지)

     * 남편(아내)을 어떻게 만나 결혼까지 결심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현재의 결혼생활은 어떠한지.

     * 자신이 생각하는 행복에 대한 정의와 앞으로 행복해지기 위해 필요하다 생각되는 조건은?

  - 발표방법

     * 35분간 온전히 혼자서 이야기해야하며, 그 시간동안은 어느 누구도 개입하지 않을 것임.

     * 시간 체크 함. 35분이란 시간은 반드시 본인이 책임져야 하며 절대 다음으로 넘어가지 않음.

     * 35분이 넘어가더라도 1시간까지는 중간에 끊지 않음. 그러니 맘껏 이야기해도 좋음.

     * 진실해야하며, 스스로에게 솔직할 것.




인생사를 정리하고 나누다


이번 오프과제를 자신의 인생사로 정한 것에는 네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오프 커리큘럼상 6개월 이후부터는 경영과 인문에 대해 그리고 더 나아가 자신의 미래의 삶과 일에 대해 고민하며 플랜까지 세워보게 될텐데, 이때 깊이있고 보탬이 될 수 있는 피드백을 해주기 위해선 현재보다 서로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잘 모르는 상태에서 하는 피드백은 그저 피상적인 조언이나 충고에 그칠 수 있기 때문이죠.


두 번째로는 이런 기회를 통해 찬찬히 자신의 인생사를 돌아보며 정리까지 해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우리는 쉼 없이 달려가고 있습니다. 사회 분위기상 쉰다는 것은 뒤처지는 것의 동의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돌아볼 시간을 가진다는 것은, 그리고 정리해 본다는 것은 다시 힘을 내 씩씩하게 나아가기 위한 비축의 시간이라 볼 수 있습니다.


세 번째로, 자신의 인생사를 청중 앞에서 풀어놓게 되면 응어리진 과거의 시간들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게 됨으로써, 완전한 힐링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무게를 조금은 내려 놓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자신의 입을 통해 나오는 인생사가 더 이상 가슴 속의 형체없는 응어리가 아닌, 언어로 코딩된 객관적 형상으로 변형됨으로써 마치 제3자적 관점으로 조금은 편하게 바라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인생사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인생사를, 위인들의 이야기가 아닌 그저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인생사를 진실된 민낯으로 마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공되지 않은 날것에 대한 이야기는 감정이입을 불러 일으키게 됩니다. 다른 사람의 인생사를 듣다보면 자신이 겪어 온 시간들과 자연스럽게 오버랩 됨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서 삶이 정말 다양하며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고, 동시에 나만 아팠던 것이, 나만 힘든 것이 아니었음을 깊이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더해 이런 시간들을 통해 멤버들간 동료애가 생기는 것은 덤이라 할 수 있겠죠.



26개의 행복, 13개의 아픔


드디어 첫 발표가 시작되었습니다. 모두가 경청을 하는 가운데, 한 사람의 인생사가 펼쳐집니다. 어린시절 출생에서부터 청소년, 대학생 그리고 결혼까지의 이야기들이 영화장면처럼 유유히 흘러갑니다. 그러다 중간중간 삶의 파도가 칩니다. 살아오는 동안 가장 기뻤던 순간 중 하나로 꼽은 첫 아이가 태어난 이야기할 때는 무엇과도 비견할 수 없는 환한 얼굴로, 가장 슬펐던 일로 꼽은 둘째 아이의 유산 이야기를 할 때는 눈물이 글썽글썽 맺힙니다. 그리고 다니던 회사의 구조조정, 퇴사, 입사, 또 다시 맞은 구조조정... 휴, 삶이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건강을 유지하며 희망을 가지고 앞일을 개척해 나갈 것이며 그래서 지금 열심히 공부하는 중이란 말로 한시간이 넘는 발표를 끝냅니다. 박수가 쏟아집니다. 고생에 대한 위로의 박수인지 아니면 힘내라는 격려의 박수인지 모르겠지만, 모두들 힘차게 물개박수를 칩니다.


발표가 이어지는 동안에 다들 외모로 봐서는 평탄하게 살아왔을 것만 같은데, 예상치 못한 이야기들이 마구 쏟아져 나옵니다. 여동생의 허망한 의료사, 아버지의 안타까운 죽음, 운영하던 기업의 부도와 3년 간의 소송, 암 발병, 친형이 사촌형이 된 기막힌 사연, 어머니의 빚에 치어 선택했던 자살시도, 아이의 장애가 있음을 알게 되었을 때의 충격, 첫 회사에서 두 번이나 죽을 뻔 했던 에피소드, 수면제 50알을 먹었음에도 멀쩡히 잠만 자고 일어난 일 등등. 발표를 하는 당사자도, 그 사람의 인생 스토리를 듣는 우리들도 장면에 따라 감정의 파고가 심하게 울렁이곤 합니다.


이야기를 들으며 제 인생이 오버랩되었습니다. 물론 돌이켜보면 저 또한 무척이나 힘들고 괴로웠던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겉으론 강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 했어도, 내면 안의 어린 아이가 목 놓아가며 울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럴 땐 무척이나 억울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아주 잘 행복하게 잘 살아가고 있는데, 왜 나만, 왜 하필이면 나만 이렇게 힘들고 슬픈 것일까?


어머니의 빚 때문에 자살시도까지 했었다고 말한 친구는 자살을 접었던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생을 마감하려는 순간, 창밖으로 사람들의 밝게 웃는 소리가 들렸고, 왜 쟤네들은 저렇게 즐겁게 사는데 왜 나는 여기서 죽어야만 할까?란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고요. 그래서 다시한번 살아보자, 나도 제대로 한번 잘 살아보자 마음을 잡았다고 합니다. 그 이후 그는 밤잠까지 줄여가며 투잡, 쓰리잡을 했고, 마침내 어머니의 빚까지 모두 다 갚아낼 수 있었다고 하네요.



인생의 크고 작은 상처들은 인생을 깊어지게 한다


오후 3시 반에 시작된 발표는 13명 중 11명의 발표가 끝났을 때 새벽 3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나머지 2명의 발표는 잠시 눈을 붙인 후 오전 10시부터 11시 반까지 한 후에야 완전히 마무리될 수 있었습니다. 이틀 간 13명의 인생 스토리를 들으며 두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는 인생에서 가장 기쁜 일로 꼽는 것이 실은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아이를 가졌을 때, 낳았을 때, 결혼했을 때, 바라던 회사에 취업했을 때 등. 어찌보면 인생을 살아가며 당연히 겪게 되는 이런 순간들이 돌이켜보면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음을 알게 된다는 겁니다. 다른 하나는, 나만 아팠던 것이, 그리고 아픈 것이 아니란 사실이었습니다. 모두들 가슴 한구석에 상처를 안고 살아갑니다. 묵묵히 숨기고 드러내지 않은 채 살아가기 때문에 모르는 것뿐이지, 실은 누구나 다 아픔을 안고 살아간다는 사실입니다. 어쩌면 이런 크고 작은 상처들이 있어야만 인생은 깊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우리는 과거의 상처를 딛고 현재를 만들어 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과거를 기반으로 어떻게 하면 현재를 즐겁고 재밌게 살아갈 것인지 그리고 더 나아가 미래는 어떤 식으로 만들어 갈 것인지 계속 토론하고 고민하며 이야기를 나누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현재를 즐기며 기대할만한 구체적 미래를 그려보게 될 것입니다. 13명이 가진 13개의 아픔이 있었듯, 13개의 현재를 살아가는 재미와 즐거움 그리고 13개의 괜찮은 미래를 만들어 가기 위한 실험이 계속될 것입니다.




(표지 이미지 출처 : http://weknowyourdreamz.com/life.html)



차칸양

Mail : bang1999@daum.net

Cafe : http://cafe.naver.com/ecolifuu(경제공부,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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