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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칸양 Jun 10. 2021

인공수정을 준비하며(전편)

#85, 언젠가 만날 나의 아기에게 쓰는마음편지


우리는 12월에 


만나질 못했구나. 생리를 맞이하며 나는 네가 이번 달에는 찾아오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어. 의사 샘이 지난달에 이야기를 했었지. 생리가 시작되면 3일째에 병원에 오라고 말이야. 


난임 병원에 다니든 어떻든 의식적으로 아이를 기다리는 이들에게 가장 힘이 드는 시기가 배란일부터 생리일까지의 2주간과 아이의 심장이 뛰는 걸 확인하기 까지라고 해. 나도 그랬어. 적극적인 노력을 한 첫 번째 달이었던 2주간이 아주 길게 느껴졌어.  그건 대학 입학시험, 교사 임용시험을 친 후 발표 나기 전까지, 골수검사를 해 놓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느낌과 같았어.  나는 혹시라도 네 발소린가 하여 내 몸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해 민감했어. 버스를 탈 때마다 멀미가 나고, 냄새에 민감해지고, 차고 단 것이 먹고 싶어서 아이스크림과 평소에는 안 먹던 회냉면과 칼국수를 먹어댔거든. 평소와는 다른 모습이었지. 아빠도 내가 굴전과 회냉면을 찾을 때 ‘돌아가신 아버지가 좋아하셨는데’라며 기대를 숨기지 못했지. 그도 많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말이야. 게다가 12월 들어서는 내가 체력이 떨어져 골골대니까 그가 도맡아 놓고 아침밥상을 차렸지. 나는 그에게 선물이 될 소식을 전하기를 바랐어. 게다가 태몽일지도 모르는 꿈’을 적으면서는 어찌나 설레던지 말이야. 설레발이 되고 말았구나. 


하지만 말이야 나는 그런 믿음이 있어. 여러 동이의 김칫국과 설레발들이 거름처럼 쌓이고 썩어서 네가 자랄 비옥한 토양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믿는단다. 잡초들이 잘 썩으면 얼마나 좋은 유기질 퇴비가 되겠니? 생활체육이 활성화되는 것처럼 이런저런 논의와 실험들이 초원처럼 무성한 게 좋아. 너를 만나는 시간이 아직 안 되었나 봐.  



너를 만나러 가는 동안 


일주일에 한 통씩 편지를 써서 남기기로 나는 결심했어. 우리가 만나는데 얼마큼 시간이 걸릴지 모르겠지만 태교편지이므로 네가 태어나는 순간까지 이어지는 항해일지가 되겠지. 네가 내게로 잉태되기 전부터 너를 안기 전부터 시작한 거지. 나는 말이 없는 사람이고, 소통에도 서툰 사람이지만 글로 편지를 쓰는 건 말로 하는 것보다는 어렵지 않은 것 같아.


병원에 갔어. 우연히 아빠의 후배 부부를 만나 인사를 나누었지. 우리와 같은 선생님께 진료를 보고 있었어. 동지애나 전우애 같은 게 느껴졌어. 생리 3일째에 왔다는데도 진료실 앞 간호사는 진료 보기 전에 일단 소변검사를 하고 오라고 했어. 왜 임신테스트기를 하냐니까 혹시나 해서 그렇대. 한 줄이 나왔지. 이번에는 후배 부인분의 조언으로 가장 가까운 화장실을 알았지. 어디서든 동무가 있으면 좋은 것 같아. 나는 ‘화학적 유산’이란 게 있다는 걸 읽었지. 수정은 되었지만 착상하지 못하는 거래. 그런 걸 검사하나 혼자 생각했어.


진료실에 아빠와 같이 들어갔어. 그는 내 오른편에 앉았어. 그가 오른쪽에 앉아 있으니 편안했어. 우리는 길을 갈 때도 내가 그의 왼쪽에 서서 오른팔로 팔짱을 끼거나 손을 잡곤 해. 선생님이 약을 처방해 주었어. 클로미펜은 생리 3일째부터 5일간 먹는 알약이야. 그리고 엑토스는 14일 내내 먹는 거야. 그걸 매일 일정한 시간에 먹으라고 했어. 이번 달은 주사약이 처방되었어. 이것도 배란을 증장하는 용도야. 주사실에 가서 주사를 맞고 집에서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교육을 받고 영 못하겠으면 주사 맞으러 병원으로 오라고 했어. 


주사실에 들어가니까 연분홍색 옷을 입고 미소가 밝은 분이 있어. 두 개씩 묶인 여섯 개의 상자를 꺼냈어. 주사는 세 번 맞는 거야. 사람들이 ‘배 주사’라고 부르던 건가 봐. 하얀 가루를 식염수에 녹여서 주사기에 넣어서 배꼽 아래 삼각형 꼭짓점 지점에 직각으로 찔러 넣으라고 했어. 양쪽을 번갈아 가면서 말이야. 혈관주사가 아니라 근육주사니까 직접 맞으라고 하는 거겠지? 나는 혼자 할 수 있을 것 같았어.


크리스마스날에 한 번 그리고 이틀 뒤에 한 번 주사를 하라고 했어. 주사기에 소독솜, 약품 상자까지 주사약 보따리가 제법 컸어. ‘크리스마스 선물이네요’ 농담을 하며 웃었어. 집에서 스스로 주사 놓는다니까 나는 마약중독자가 퍼뜩 떠올랐어. 마약중독으로 죽은 미국 여자 가수 휘트니 휴스턴과 남자 가수 마이클 잭슨을 떠올렸지. 40살도 넘게 나이 차이가 나는 너는 잘 모르겠지만 엄마 아빠 자랄 때는 두 사람 모두 대단한 스타들이었지. 휘트니 휴스턴의 보디가드 영화가 있어. 나는 아빠에게 우리 그 스타들의 코스프레를 하면서 과배란 유도 배 주사를 놓자고 제안했어. 나름 조크였는데 재미있었기를^^   



의사 선생님은 


배란이 일어나는 2주의 중간쯤에 한 번 병원에 와서 배란 상태를 보자고 했어. 그리고 약을 더 쓸지를 판단할 거래. 그날 와서 인공수정 시술일을 잡을 거랬어. 인공수정은 배란유도제 주사약과 알약을 통해서 양쪽 난소에서 배란이 여러 개가 되도록 유도(이걸 과배란 유도라고 해)하는 거래. 당일날 남편이 병원을 방문해서 정자를 채취한 뒤 약품처리를 해서 운동성이 떨어지거나 기형인 것은 걸러내고 건강한 정자만 선발한다는구나. 수정이 쉽도록 나팔관 입구까지 넣어주는 시술이야. 싸인해 오라는 동의서에는 여러 가지 부작용이 서술되어  있었어. 과배란 유도의 휴유중은 난소가 과민해질 수 있는 것이며, 자연 임신율(10%)보다 조금 임신 성공률이 높아지고(10%~30%), 자궁외 임신과 자궁 내 임신이 동시에 나타날 수 있고, 기형아율은 일반 임신과 같고, 다태아율은 높아진다는구나. 생각보다는 시간이 적게 걸리고 간단한 거라는구나. 인터넷 검색으로 인공수정 시술 후에는 프로게스테론이 주 내용인 질정을 처방받고 뛰면 안 된다는 걸 읽은 기억이 났어.


뛰면 안 된다니 나는 은근히 걱정이 되었어. 왜냐면 인공수정은 1월, 2월 2회 예정인데 다음 달 시술 예정일에 방학이 끝나서 출근을 해야 하니 말이야. 요즘 우리 반에는 교실을 이탈해서 주차장과 정문으로 뛰는 학생이 있어. 사춘기 호르몬의 영향이려니 해. 그 학생이 내달리는 뒷모습을 보면서도 달려가 잡지 말아야 하는 상황인 거지. 가만히 누워 있어야 할 수도 있고 말이야. 어쩌면 1월 말에 개학을 해도 나는 병가를 쓰고 2월 내내 못 나갈 수도 있겠구나. 그러면 12월 남은 동안 뒷정리를 싹 해야겠구나. 이런 현실적인 계획표들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했구나. 그래도 중요한 업무와 정리는 다 끝이 났으니까, 실무원 선생님도 계시니까 내가 이런 사정으로 병가를 열흘간 내서 기간제 교사가 오더라도 제일 괜찮은 시기가 바로 이 시기지. 아이들도 불안하지 않을 거야. 2월은 정말로 흐지부지 지나가거든. 엄마는 내일 출근해서 남은 이틀 동안 뒷정리를 싹 다 할 작정을 했어. 더 가지 않아도 되도록 뒷정리를 마치 사람이 죽는 것처럼 깨끗이 해야겠구나 싶었지. 네가 언제 우리를 찾아와도 편안하도록 잘 서포트를 할게.  걱정 말거라. 얘야. 네가 오고자 한다면 언제든 와도 좋단다.



아빠는 야근 출근을 하고,


나는 한의원에 갔어. 엄마가 다니는 한의원은 인연이 오래된 집이야. 내가 스물한 살 때부터 한의사 선생님을 알고 지냈어. 한방 주치의 선생님인 거지. 지난여름에 여기서 우리는 약을 한 재씩 먹었지. 아빠는 오늘 엄마와 병원에서 만나기 전에 벌써 진맥 받고 약을 지었어. 우리는 나이가 많아서 말이야. 아무래도 더 정성을 들여야 할 것 같아. 마흔이 넘으면 그냥 지내기에도 진기가 떨어지는데 자식을 기대한다면 분갈이도 하고, 퇴비도 넣고 그래야 할 것 같아.


근데 한의원에서 걱정을 많이 들었어. 4월에 결혼 직후에 왔을 때는 몸이 좋았는데 지금은 맥이 너무 약해져 있고, 호흡이 짧고 심장도 약해져 있다고 했어. 어디 어디 어디라고 말했는데 안 좋아진 데가 너무 많고, 한의학 용어라 알아듣지를 못하겠더구나. 몸이 너무 약해서 수정이 되더라도 착상이 어려울 정도라는 말만이 꼿꼿이 선명히 들렸어. 아이가 착상하기 어려운 몸의 상태란 말을 듣고 충격을 많이 받았어. 이번 달에 인공수정 시도를 하는데 그럼 어떡하나 가슴이 벌렁거렸지. 한의사 선생님은 무엇에 그렇게 신경을 쓰느냐고 물었어. 혹시 부부 사이의 일로 그렇다면 몸이 이렇게 지쳐있으면 화내기도 쉬우니, 화날 때 내게 되더라도 금방 먼저 다가가 화해하라고 하셨어.  


나는 내 몸이 이렇게나 나빠진 원인에 대해 돌이켜 살펴보았어. 부부 사이에서는 큰 소리 날 일이 없어. 네 아빠가 나한테 맞춰주시거든. 주된 스트레스를 직장에서 받고 있는 것 같아. 일단 3시간의 왕복 출퇴근을 해야 하는 게 힘이 들어, 그리고 아침 8:30에 아이를 받아야 하는데 차가 밀리면 시내버스 안에서 동동거리느라 지각하면서 마음고생이 많지. 아주 간을 빠작빠작 볶고 튀기는 것 같아.  이탈행동과 공격행동이 많은 아이들을 볼 때 몸과 마음이 힘들어. 그 나 잡아봐라 놀이를 하느라고 뛰고 나는 그 아이가 정문으로 나가서 다칠까 봐 찾아 헤매고 말이야. 어쩐 일인지 다른 아이들을 모두 괴롭히고 꼬집는 아이를 볼 때 무력감을 느껴. 그 아이한테 나도 맞고 꼬집히니까 말이야. 그 아이를 제제한다고 몸싸움을 해야 하는 것도 나를 기진하게 해. 이러려고 특수교사가 된 게 아닌데 싶어서 말이야. 올해 맡은 업무는 나와 맞지를 않다. 특히 일을 다 끝내 지를 못하는 것 자체가 좌절스러워. 게다가 새벽에 일어나 글 쓰고 책 읽는 일까지 하려니 정해진 시간과 체력에서 버거웠겠지.  


이 이야기를 너에게 해야 할까? 아니면 내가 기도드리는 님들께만 이야기를 할까 잠시 망설였단다. 아이는 어른들 사이의 일을 다 알 필요도 없고, 어른이 아이를 잡고 그 모든 걸 의논한다는 것도 우습고 말이야. 나는 네가 너무 일찍 세상의 짐을 지지 않아도 되길 바라고 있단다. 네 아빠와 엄마가 서로 부모 됨의 역할을 잘하고, 또 우리가 사이좋은 부부가 되어서 너는 우리 울타리 안에서 세상 근심 없이 안온히 쉬면서 자라게 했으면 좋겠어. 나는 네가 자라는 동안 어린 너를 잡고 아이가 듣지 않아도 될 이야기를 하지는 않을 거란다. 나는 아빠와 주된 이야기를 할 거란다. 엄마 주변에는 부부 사이가 좋지 못한 경우 엄마의 딸, 아버지의 딸로, 또는 엄마의 아들로 부모의 상담자 역할을 해야 했던 지인들이 있단다. 한결같이 그들은 어려움을 겪고 있지. 엄마는 절대로 너를 그렇게 만들지 않을 거란다. 나는 아빠와 화목하게 사는 게 결혼의 제1 소원이란다.


이 편지를 네가 읽는 건 어른이 되어서 일이지. 나는 지금 너의 영혼을 향해 편지를 쓰는 거고 말이야. 아직 잉태되지 않은 아이,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와 영혼의 대화가 가능하다고 했지. 그러니까 너는 이런 나의 마음을 성인으로 알아들을 수 있는 나이에 이 글을 읽고 있을 거고, 그리고 나 역시 그럴 나이에 너에게 편지를 보여주겠구나.


(후편에 계속)




                                                                              2013년 12월 31일


                                                               -- 권윤정(콩두, 변화경영연구소 8기 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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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칸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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