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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칸양 Dec 21. 2021

부끄러움의 경제학

같은 영화 다른 시선(1) - 영화 <동주>


 “부끄럽지 않게 사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이겠나. 윤시인. 부끄러움을 아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야. 부끄러운 걸 모르는 놈들이 더 부끄러운 거지.”


                                                                    - 영화 <동주> 중에서 -





부끄러움의 경제학


부끄러움이란 단어가 있습니다. 이는 감정의 하나로써 공적, 사적인 자리에서 타인으로부터 망신을 당하거나 열등감을 느끼게 될 때 생기는 감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혹은 잘못된 일로 인해 양심에 가책을 느끼거나 숫기가 부족함으로 인해 타인 앞에서 자신의 생각대로 말이나 행동을 하지 못할 경우를 뜻하기도 하죠.


부끄러움은 심리학적 용어라 할 수 있습니다. 내면의 상태에 따라 발현될 수도 있고, 극복될 수도 있기 때문이죠. 중요한 것은 현재 나의 상태라 할 수 있어요. 자신에 대해 만족하고 자신감이 흘러넘칠 때 부끄러움은 사라지게 되고, 오히려 타인 앞에서 당당하게 내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거죠.


이러한 부끄러움을 경제적 관점으로 해석해 볼까요? 언제 우리는 경제적으로 부끄러움을 느끼게 될까요? 깊이 생각하지 않더라도 돈이 없어 꼭 필요한 생활필수품 등을 살 수 없거나, 내야 할 공납금, 학비 등을 낼 수 없거나, 혹은 공적인 자리에 맞는 옷차림이나 치장을 하지 못할 경우 우리는 부끄러움을 느끼게 될 겁니다. 속칭 쪽팔린 거죠.


경제적 관점으로 볼 때 돈이 없음을 뜻하는 가난, 빈곤은 부끄러움의 대상이라 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왜 우리는 가난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낄까요? 여기에는 필히 타인과의 비교, 즉 돈의 많고 적음에 따라 상대적 비교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린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죠. 즉 자본이 종교처럼 우상시되는 시대다 보니, 암묵적으로 자본에 의한 계급화가 이루어지고 있고, 가난한 사람은 계급 중 가장 하위 단계에 속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는 교육에 의한 사회화 때문이라 할 수 있어요. 어렸을 때부터 무의식적 계급론에 익숙해지다 보니 단지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갈 뿐이란 겁니다.


여러 해 전 어느 대학교 근처에서 리어카에 채소를 싣고 다니면서 장사를 하던 사람이 혼자의 힘으로 대학을 수석 졸업했다는 기사가 뉴스화 된 적이 있어요. 돈 벌랴, 공부하랴 힘들었겠죠? 그럼에도 그가 뉴스에 등장한 이유는 역시나 수석 졸업까지 차지했기 때문이었죠. 그를 인터뷰한 기자는 가난 때문에 부끄럽지 않았는지 물었고, 그는 이렇게 답했다고 하네요.


"저에게 가난은 부끄러움의 대상이 아닌, 단지 생활하는데 불편할 따름이었죠.“


맞아요, 가난은 단지 내 주머니에 돈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로 인해 생활의 불편함만 있을 뿐 부끄러움의 대상이 될 수 없어요.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플루타르코스가 지은 <영웅전>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가난은 가난 자체가 불명예가 아니라 그 원인이 더 큰 문제일 수 있으며, 자신의 나태나 고집, 어리석음의 결과로 생겨난 가난이라면 이것이 바로 진심 부끄러워할 것이라고 말이죠.



동주의 경제적 부끄러움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유복한 할아버지와 교사 아버지 밑에서 유복하게 컸습니다. 가지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전부 다는 아니었겠지만 경제적 능력을 갖춘 그의 부모는 열성을 다해 뒷바라지해주었죠. 감수성이 풍부했던 그는 문학, 그중에서도 시를 쓰고 싶었습니다. 시는 그의 감성을 채워줄 오아시스와도 같았기 때문이었죠. 그래서 그는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고자 결심합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그 결정이 마뜩하지 않았습니다. 문학을 전공하면 글쟁이의 길을 가게 될 텐데, 기껏해야 신문 기자가 된 아들의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의사를 권유합니다. 명예도 돈도 벌 수 있는 대표적인 직업이었죠. 그러면서 설득하길, 시는 의사가 돼도 쓸 수 있는 것 아니냐며 강권합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결국 대학에 진학하여 문학을 전공하게 됩니다. 부유한 집안 덕에 당연히 등록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죠. 그렇게 일본 유학까지 떠나게 됩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집안이 몰락하기 시작합니다. 아버지가 일자리를 잃게 되면서 그의 경제적 상황은 순식간에 바뀌게 됩니다. 졸지에 가난한 유학생이 되고 말죠.



윤동주의 삶에서 정치적, 시대적 배경을 빼면 위와 같은 이야기가 됩니다. 그저 유복했던 집안이 몰락하여 가난한 유학생 신세가 되는 거죠. 부자는 망해도 3년은 간다고 했나요? 하지만 윤동주는 그러지 못했을 겁니다. 당장 현실에서 경제적 문제가 대두되었을 것이고, 그로 인해 곤궁해질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하지만 그는 그럼에도 당당했다고 합니다. 없는 형편임에도 돈을 빌려달라는 친구들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고, 그로 인해 그의 외투와 시계는 매번 전당포를 들락거렸다고 하네요.



또한 그의 역작이 담긴 첫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또한 경제적 곤궁함으로 생전 출간되지 못했는데 여기에는 물론 당시 한글과 한국어 모두 엄격히 금지된 시대에 한글을 사용해 한국어로 쓴 시를 출판한다는 것은 시인 자신의 목숨을 건다는 것 때문이기도 했지만 가난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했다네요. 왜냐하면 자비로라도 출간하고 싶었던 윤동주는 그 시집을 아버지께 보여드렸지만, 그럴 수 없는 형편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는데, 당시 출간비용은 300원(지금 가치로 약 300만 원) 정도였다 합니다. 만약 그의 집안이 계속 유복했더라면 그는 살아생전에 유명한 시인이 되었을 것이고, 그로 인해 그의 삶은 바뀔 수 있지 않았을까요?



영화 <동주>에서 비치는 윤동주의 이미지는 상당히 깔끔하고 세련된 느낌입니다. 물론 스스로를 자책하고 부끄러워함과 동시에 자신의 정신적 성장을 위해 자신을 채찍질하는 모습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그는 자신의 가난을 드러내려 하지 않았죠. 항상 타인을 만날 때 옷을 다리고 깨끗이 세탁함으로써 정결함을 유지했는데, 이를 위해 그가 손수 재봉틀을 다루고 옷을 수선하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그가 가난으로 인해 생겨날 수 있는 부끄러움을 이겨내기 위한 하나의 필수요건 아니었을까 싶네요.


마지막으로 영화 <동주>를 경제적 관점으로 바라보게 되면, 다른 시가 한편 떠오르게 되는데, 바로 신경림 시인의 <가난한 사랑노래>입니다. 이 시는 가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하는 연인들의 안타까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죠. 하지만 그럼에도 역설적으로 경제적 형편상 그럴 뿐 마음은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아주 뜨겁게 노래하고 있는 시라 하겠습니다.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 신경림, <가난한 사랑노래> 중 일부 --          



☞ 신데렐라 메타포를 입다- 영화 <일 포스티노>(2편)



※ 이 글은 2022년에 출간될 책 <같은 영화 다른 시선(가제)>의 초고입니다.




차칸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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