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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칸양 Dec 27. 2021

신데렐라, 메타포를 입다

같은 영화 다른 시선(2) - 영화 <일 포스티노>


☞ 부끄러움의 경제학- 영화 <동주>(1편)




“하늘이 운다.” 

“그래 그거야, 그게 바로 메타포(은유)야.”


                                                        - 영화 <일 포스티노> 중에서 -





가난한 자 VS 부유한 자


영화 <일 포스티노>의 진짜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칠레의 저항시인 ‘파블로 네루다’일까요, 아니면 가난한 어촌 마을의 노총각 ‘마리오’일까요? 아니면 두 사람 모두일까요? 제가 이 질문을 하는 이유는, 누구를 주인공으로 선택하느냐에 따라 관점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메타포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따스하게 눈길로 보여주고 있는 이 영화는 경제적 관점으로 보게 되면 ‘가난한 자’ VS ‘부유한 자’ 혹은 ‘성공한 사람’ VS ‘성공하지 못한 사람’의 이분법적 구도로 나누어지게 됩니다. 즉 전 세계적으로 유명할 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많은 시인 ‘파블로 네루다’와 그의 삶을 부러워함과 동시에 약간의 시기와 질투까지도 살짝 내비치고 있는 ‘마리오’의 이야기는 사실 자본주의 사회에서라면 함께 어울리기 힘든 그런 모습을 담고 있다 하겠습니다.


자, 이런 이분법적 구도는 스토리를 어떻게 끌고 가게 되는지 한번 알아볼까요?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구전동요 중에 <신데렐라>(작사, 작곡 미상)란 노래가 있는데요, 아마 멜로디뿐 아니라 가사도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신데렐라는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요 

계모와 언니들에게 놀림을 받았더래요

샤바 샤바 아이샤바 얼마나 울었을까

샤바 샤바 아이샤바 천구백팔십 년대


신데렐라는 어려서 부모님을 모두 잃고 계모 슬하에서 살 수밖에 없었데요. 게다가 계모와 언니들은 얼마나 못되었던지 신데렐라를 식모처럼 부려먹었죠. 당연히 신데렐라는 사는 게 힘들었고, 자신의 허름한 방이나 부엌에 숨어 많이도 울었을 겁니다. 그렇겠지요? 아마 울면서 이렇게 신세 한탄을 했을 수도 있겠네요. ‘에구, 내 팔자야...’


그런데 이 노래 가사 중 상당히 흥미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맨 뒷부분에 있는 ‘천구백팔십 년대’인데요, 많고 많은 시기 중에 왜 하필 천구백팔십 년대(1980년대)였을까요? 작사자 미상의 노래이긴 하지만, 이 가사를 지은 그 누군가는 아마도 힘들었던 1980년대를 온몸으로 겪어온 사람이 아닐까 생각이 드네요. 천구백팔십 년대 대한민국은 군부독재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정치적 민주화 투쟁과 더불어 중공업 산업 육성 등의 경제개발이 한창이었던 시기입니다. 게다가 1988년의 서울 올림픽은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을 한 단계 더 높이는 계기가 되었죠. 국가는 크게 성장을 했지만, 사실 이 시기를 살아야 했던 국민들의 생활은 산업 일꾼으로서 국가 성장에 희생되고 있었다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만큼 힘든 시기였기 때문에, 많은 국민들은 계모와 언니들에게 구박을 받던 신데렐라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이 울 수밖에 없었겠지요.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이러한 설움과 괴로움은 시간이 지나며 어느 정도의 경제적 풍요로 보상받게 됩니다. 마치 신데렐라가 왕자님을 만나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게 되듯, 대한민국 국민들 또한 가난으로부터 벗어나 비로소 여유 있는 삶을 즐길 수 있게 되죠.


힘겨운 가난을 극복하고 한 단계 높은 사회에 편입하여 성공 스토리를 써간다는 내용의 ‘신데렐라 스토리’는 여러 드라마나 영화에 약방의 감초처럼 많이 쓰인 소재인데요, 대개는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죠. 하지만 워낙 비슷한 유형의 이야기들이 많이 다뤄지다 보니 이제는 다소 식상한 면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드라마나 영화가 계속해서 히트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현실에서는 일어나기는 힘든, 특히 내 주변 혹은 나의 이야기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상상 속에서라도 일어나길 바라는 사람들의 욕망을 대변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메타포의 정장을 입은 마리오



가난한 주인공 마리오의 본래 직업은 어부입니다. 하지만 별 돈벌이가 안되다 보니 백수처럼 시간을 보내고 있었죠. 그러던 중 칠레의 저항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이탈리아의 작은 어촌 마을로 망명을 오게 되고, 더불어 매일 엄청난 양의 우편물을 도착하자 이를 전담 처리하기 위한 우편배달부를 서둘러 고용하게 됩니다. 이렇게 마리오는 백수 같던 어부에서 번듯한 직업의 우편배달부로 변신하죠. 하지만 정규직이 아닌 단기 계약직으로, 네루다가 망명 생활을 끝내고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게 되면 마리오는 다시 백수로의 귀환이 예정된 상태라 할 수 있을 겁니다.


네루다를 처음 본 마리오는 그의 여유 있는 삶을 부러워합니다. 자신과 너무나도 다른 그의 일상을 약간은 대놓고 동경하죠. 그리고 주의 깊게 관찰하기 시작합니다. 대체 무엇 때문에 그가 그렇게 유명한 건지, 또 어떻게 성공했는지 말이죠. 이러한 관찰자의 시각은 마리오의 뛰어난 장점이라 할 수 있는데, 그가 만약 시기와 질투의 화신으로만 그쳤다면 시간이 흘러도 그는 여전히 가난한 마리오에 그치고 말았을 겁니다. 하지만 그를 닮고 싶다는 강한 욕망(그처럼 성공하고 싶고, 또 돈도 벌고 싶다는)이 네루다로부터 시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메타포(은유)’를 배우도록 강제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리오는 이것이 자신을 현재의 가난함과 찌질함에서 벗어나게 해 줄 것이란 사실을 직관적으로 알아차리죠. 그렇게 마리오는 메타포의 세계에 빠져들게 됩니다.



마리오는 네루다로부터 배운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아쉽게도 그 기술을 통해 돈을 벌지는 못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훔치는 데는 성공합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마을 주점에서 일하는 아름다운 처녀 베아트리체의 마음을 도둑질하죠. 돈도 재물도 선물도 아닌, 오로지 세 치 혀로만 말이죠. 이 대목에서 마리오는 카사노바와 동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사실 메타포란 필살기가 아니었다면, 마리오가 베아트리체를 신부로 맞아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을 겁니다. 영화에서 보듯, 지긋한 가난함은 물론이고, 외모 또한 바짝 말린 멸치처럼 별 보잘것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사랑에 빠진 베아트리체의 눈에는 마리오가 이 세상 그 어떤 누구보다 더 감미롭고 매력적인 남자로 보였을 겁니다. 메타포의 정장이 마리오를 눈부시게 빛내주었기 때문이었죠.



마리오의 위대한 선물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가장 감동의 도가니로 빠져들게 만드는 장면은 바로 마리오의 선물이 아닐까 생각 드네요. 망명이 풀려 자신의 고향인 칠레로 돌아간 네루다를 위해 마리오는 정성스러운 선물을 준비하기로 마음먹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여전히 가난하네요. 그렇다면 무엇을 준비할까? 네루다로부터 소중한 메타포의 세계를 배운 마리오는 여기에도 메타포를 활용, 이 세상 어떤 물건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가장 아름다운 선물을 준비하게 됩니다.


하나작은 파도

큰 파도

절벽의 바람소리

나뭇가지에 부는 바람

다섯아버지의 서글픈 그물

여섯신부님이 치시는 교회 종소리

일곱밤하늘에 반짝이는 별

여덟임신한 아내 베아트리체의 배에서 들리는 아들 파블리토의 심장소리



그렇습니다. 마리오는 네루다와 함께 한 잊을 수 없는 순간들을 준비한 겁니다. 메타포 수업을 하며 거닐었던 해변가에서 듣던 작은 파도, 큰 파도 소리, 절벽을 휘몰아쳐 올라가던 힘찬 바람소리와 나뭇가지를 살랑살랑 흔들어대던 소녀 같은 바람 소리 그리고 생계를 위해 그물을 다듬어야만 하는 아버지의 그물 소리와 저녁을 알리던 교회의 종소리는 또 얼마나 아련한 아름다움인가요. 또한 맑디 맑은 밤하늘 캔버스에 총총이 박혀 빛나던 별들의 노랫소리는 어디에서도 잊지 못할 감동의 순간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이것만으로도 감동적인데, 마리오는 여기에 덧붙여 한 가지를 더 추가합니다. 네루다의 도움으로 마을 처녀 베아트리체와 결혼한 후 얻게 된 마리오 2세 파블리토의 심장소리는 그야말로 화룡점정 그 자체라 할 수 있습니다. 생명이 있기에 우리는 자신의 인생을 제대로 보고, 느끼며 살아갈 수 있고, 또한 비록 자신은 생명이 다함에 따라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될지라도 2세라는 또 다른 생명을 이을 수 있기에 우리의 인생은 비로소 의미 있는 삶이었다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영화 <일 포스티노>는 메타포를 통해 바라본 세상을 일깨워 줌과 동시에 우리의 인생을 다시 한번 돌아보도록 만들어 줍니다. 비록 부자가 되지 못할지라도 메타포가 우리의 삶을 얼마나 풍요롭고 여유롭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지를 알려주고 있으며, 더불어 돈보다 더 소중하고 위대한 것이 우리 주위에 얼마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좋은 영화라 하겠습니다.



☞ 경제학적 행복의 진짜 의미- 영화 <꾸뻬씨의 행복여행>(3편)



※ 이 글은 2022년에 출간될 책 <같은 영화 다른 시선(가제)>의 초고입니다.




차칸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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