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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쉉 Jun 23. 2020

동해 표류기 2

카페 취식자의 생활상 1



 이곳에 처음 오기 전부터 정말 많은 걱정을 했었다. 죽지 않으려면 먹어야 하니 식사의 문제, 빨래나 샤워 같은 위생의 문제, 카페 바닥에 요를 피고 자야 할지도 모르는 수면의 문제 등...


세계는 4차 산업혁명에 이르렀고, 시국에 따라 자의 반 타의 반 언택트의 시대를 논하고 있었으나 나의 문제는 1차원적인 생명유지의 논의에 머물러 있으니 이야말로 21세기 부시맨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물론 모텔 달방에서 한적하게 글이나 쓰며 배달음식을 시켜 먹고, 코인 빨래방에서 건조기까지 돌린 뽀송뽀송한 빨래를 손에 쥔다면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모든 문제는 하나로 귀결된다. 이슈의 네임텍에는 모두 ‘돈’이 적혀있다. 구구절절 늘여 써봤지만 결국 나를 부시맨의 위기에 처하게 만든 문제들은 순진한 겉포장을 까뒤집으면 그 뒤에 모조리 돈문제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것이다.


통장 잔고에는 한계가 있다. 각종 생활비와 대출이자가 밑 깨진 독에 담긴 물처럼 줄줄 빠져나간다. 이 한적한 카페에서 매출 신장을 바라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러나 나는 이미 내려와 있는 것이다. 이대로 다 접고 다시 아무 직장에나 들어가 돈을 벌어버린다면 되지 않겠는가?


말은 쉽다.


허나 그렇게 중학생 때 친구의 아버지를 따라 벽돌을 나르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 쉬운 해답을 통해 얻은 건 20대에도 기가 막히게 비가 오는 날을 맞추는 퇴행성 관절염과 항우울제뿐이었다. 이제 더는 미루지 말고 나를 아껴야 한다. 이다음은 정말 상상하기 싫으니까.


그래도 뭐, 죽으라는 법은 없다고 하나둘씩 해결방안이 나왔다. 이곳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신 이모의 가게인지라 기도용 골방이 있었다. 거기서 요를 깔고 지내게 되었다. 혼자 쓰기에는 차고 넘치는 곳이다. 하루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모기 열 마리만 잡으면 푹 잘 수 있다.


-은 작가의 거처로 대체되었다


또 이모가 집에서 남는 밥솥을 주셨다. 쌀을 씻어 밥을 짓고 손님이 없는 시간을 골라 하루 두 끼의 식사를 한다. 달걀과 채소를 곁들여 식사를 해결한다. 파프리카나 양상추, 알배기 배추와 같은 채소를 돌아가며 먹는다. 가끔 이모가 김치를 가져다주신다. 메뉴 선택의 자유는 일절 없다 치더라도 영양소 불균형 없이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빨래는 이모가 주기적으로 거둬가신다. 흰 빨래와 검정 빨래를 나누고, 수건을 따로 빠시는 집인지라 남은 옷을 철저하게 관리할 필요가 생겼다. 다섯 벌의 속옷과 양말, 셔츠 두 벌과 다량의 티셔츠를 준비했다. 바지는 슬랙스와 청바지를 하루씩 돌아가며 입어 옷이 쉴 시간을 준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샤워다. 도대체 어떻게 씻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처음에는 근처 헬스장이나 사우나를 주기적으로 이용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나 묵호항 인근 반경 5km 이내에는 헬스장이 없었고 사우나는 일찍 닫는다. 애초에 이 동네 버스 막차는 8시 40분이다. 7시가 넘어가면서부터 인근 가게 셔터가 내려가는 걸 두 눈으로 목도한다. 카페 마감시간인 10시 이후 씻을 곳은 존재하지 않는다.

첫날밤부터 통곡의 벽이 다가오는 느낌을 받았다.


그때 바가지와 말통이 눈에 들어왔다. 이거다. 그래. 저거라면 씻을 수 있다.


큰 세숫대야 하나와 깨끗이 씻은 아이스크림 말통 하나, 그리고 손잡이가 부러진 플라스틱 비이커로 나는 간신히 현대인의 반열에 한 자리 낄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자신 있게 아침마다 포마드를 머리에 바를 수 있다.


찬물로 씻는 샤워는 해도 해도 도저히 적응이 되지 않는다. 첫 물을 끼얹으면 암실에서 누가 등이라도 밀친 것처럼 화들짝 놀라게 된다. 얼어붙은 피부에 묻은 비눗물은 좀체 씻겨 내려가질 않는다. 치열한 마음으로 벅벅 문지른다. 그래도 샤워가 끝날 즈음에는 이내 정신이 번쩍 들고 머리가 맑아진다.


가게의 영업활동을 제외한 대략적인 생활상은 이렇게 구성되어 있다. 적어놓고 보니 참 애쓴다는 감상이 들기도 하지만 나는 이 생활을 즐기고 있다. 하루하루 재미있다.


든든히 식사를 마치고 난 뒤 진하게 내린 커피를 마실 때 행복하다.

마감 정산을 마친 뒤 어머니께 전화해 하루 안부를 물을 때 어머니의 목소리가 따뜻하고 사랑스럽다.

샤워를 마치고 온몸의 감각이 날카롭게 날이 들었을 때 마주하는 강원도의 선선한 바람은 향긋하다.

가벼운 명상을 하고 잠자리에 누워 자기 전에 들려오는 제빙기의 물소리와 커피머신의 가동음은 조화롭다.


영혼에 살이 찐다.


대략적으로 나는 이렇게 산다. 카페 취식자의 생활상 2에서는 영업활동 간 무엇을 하고 잠들기 전까지 어떤 시간을 보내는지 간단하게 적어보려 한다.


모두 평안하시길-


나는 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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