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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쉉 Jun 17. 2020

동해 표류기 1

파트타임 카페 사장님이 되었다





"이모. 저 할게요."


 짧은 한 마디와 함께 바다를 목전에 둔 카페에서 숙식하며 커피를 팔게 되었다. ‘저 할게요’ 네 글자로 나는 3개월짜리 파트타임 카페 사장님이 된 것이다. 이 정도로 한가한 카페 일 줄은 생각도 못했지만 돈을 벌 생각으로 온 게 아니다. 정말로 휴식이 필요했다.

운 좋게 카페를 운영하시던 이모가 사정상 가게를 잠시 맡을 사람을 찾고 계셨다. 그게 내가 될 줄이야.


강원도에 들어서자 안개가 짙어졌다. 하루키의 고양이 마을에 가는 기분이 들었다.


때때로 휴식이 필요해지면 곧잘 모험(을 빙자한 정보 없이 떠나는 짧은 여행)을 떠났다. 너무 지쳐서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머릿속이 뿌연 안개로 가득 찰 때마다 아무도 나를 모를법한 곳으로 훌쩍 떠나버리는 것이다. 짧게는 하루에서 길어봐야 며칠을 넘기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3개월이다. 그만큼 나는 지쳐버린 것이다.

핑계는 몇 가지 있다. 이유 없는 번아웃은 아니다.


사업에 실패했다. 야심 찬 마음으로 사업에 도전했으나 본격적으로 개업한 지 한 달만에 COVID-19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활로를 찾아보려 했으나 쉽지 않았다. 안 그래도 제살 깎아먹는 심정으로 회사를 키워가고 있었는데 마침내 깎아낼 살이 다 떨어진 것이다. 담담히 잠정 휴업을 선언했다.


깊이 교제하던 연인과 이별을 맞이했다. 그녀를 뜨겁게 사랑했다. 이별의 말을 전해받았을 때, 정말이지 토씨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녀의 진심이 느껴져 겸허하게 받아들였다. 걱정한 것처럼 심장을 후벼 파는 고통이 찾아오지는 않았다. 그러나 일상이 점차 불가능해지고 고이 묻어둔 알코올 중독이 스멀스멀 올라와 나를 좀먹기 시작하자 그제야 알아챘다. 나는 조용히 발끝부터 썩어가고 있었다.


우울증이 찾아왔다. 세상만사가 다 귀찮아지기 시작하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지속되었다. 때때로 자살충동이 올라왔다. 자존감이 땅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내가 하염없이 하찮은 존재같이 느껴졌다. 짐작 갈만한 사건들이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눈치는 챘다. 우울증 자가진단 테스트를 하고 나서 결과를 확인함과 함께 그날로 술을 끊었다. 다음날부터 정신과에 다니기 시작했다. 중증 우울증이었다.


이토록 반년만에 완벽하게 산산이 부서지는 경험은 난생처음이다. 어디론가 피신해야 했다. 굴에 들어가 상처를 핥으며 내일을 기약할 필요가 있다 느꼈다. 그렇게 노트북과 수십 권의 책을 집어 들고 강원도 동해시에 내려왔다.


도착한 첫날 두 눈을 가득 채운 바다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충분히 시간을 갖고 나를 되찾자. 되도록이면 이자까지 팍팍 붙여서 성장한 내 자신을 돌려받겠다 다짐했다. 바다가 철썩철썩 대답했다. 대답을 듣느라 두 시간 넘게 엉덩이를 떼지 못했다.


그렇게 파트타임 카페 사장님이 되었다.


모텔과 성인용품점 사이에 아기자기한 카페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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