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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쉉 Jul 24. 2019

막국수




 얼마 전에 팔달구 보건소 인근의 막국숫집에 갔다. 건물의 높이가 아주 낮고, 오래된 슬레이트 지붕이 인상적인 허름한 노포였는데 땡볕에도 줄이 길었다.


약간의 고생 끝에 들어가서 가게 내부를 마주하자마자 이곳은 날 자극시키기 시작했다.


계산대 옆 테이블에 가만히 앉아 현찰만을 받으시는 흰머리 할머니, 까만 나무판에 붙어 개방된 두꺼비집(저 차단기를 박물관에서 본 적이 있다), 바닥을 비운 그릇과 한 젓가락만 먹고 내려놓은 국수 그릇들, 쌀쌀맞은 주인아저씨까지.


자리에 앉자마자 진한 면수가 내 앞으로 나왔을 때, 가슴이 두근대기 시작했다. 오늘은 진짜를 먹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막국수를 좋아해 매년 여름에는 꼭 한 번씩 먹는다. 족발에 덤으로 나오는 뜨내기는 취급하지 않는다. 같은 메밀면인 냉면처럼 억세고 사납지 않으면서 무심하게 뚝뚝 끊어지는 맛이 좋다. 슴슴한 육수도 좋다. 잘하는 집에서 내주는 육수는 어설프게 얼음을 띄우지 않는다. 허겁지겁 들이키는 이의 속을 배려할 줄 아는 사려 깊음이 있다. 그 위에 가게마다 들깨나 설탕을 듬뿍 얹는 집도 있고, 김 가루를 새카맣게 올리는 집도 있다. 양념장은 이렇다 할 정답이 없어 저마다 다르고 입맛에 따라 조금 더 얹거나 덜어도 괜찮다.


그렇기 때문에 막국수를 하는 집은 가는 집마다 모두 다르고 같은 집도 가서 먹을 때마다 다르다. 그래서 제대로 막국수를 할 것 같은 가게는 발 닿는 대로 무조건 한 번씩 찾아가는 편이다.


 휴대폰을 챙겨가지 않아 인고의 시간을 보냈다. 마침내 나온 국수 사발에는 면발과 양념장, 오이 채 썬 것만이 소박하게 담겨있었다. 육수는 양은 주전자에 담긴 채 조용히 땀을 흘리고 있었다. 역시 얼음기는 없었다. 웃음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도대체 이런 자부심은 어디에서 오는가.


한 젓가락 뜨자마자 아까의 빈 그릇과 미처 손도 대지 못한 그릇이 생각이 났다. 대번에 납득이 갔다.


막국수에서는 수수함을 넘어서 허름한 향과 맛이 났다. 정갈한 음식을 선호하는 사람들에게는 비위생적이라고 느낄 만큼 투박함의 향연이었다. 반찬으로 나온 하얀 무김치를 그릇에 몇 줌 집어넣고, 한 젓가락과 함께 국물을 들이켰다.


참으로 재미난 맛이다. 내일 다시 먹기는 싫으면서 종종 생각날 그런 맛. 정신없이 먹다가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알 수 없는 그 맛에 흠뻑 빠져 금세 한 그릇을 해치웠다. 양이 제법 많아 속이 가득 찼다.


내가 서 있을 때보다 긴 줄을 자신만만한 얼굴을 하면서 비집고 나왔다. 먼저 먹고 갑니다.


빈틈없이 햇볕으로 들어찬 거리를 걸으며 겸허한 마음으로 부대낌을 기다렸다. 오늘은 얼마나 갈까. 나는 과식하는 습관 때문에 평소에도 소화불량을 달고 산다. 식사가 면일 때 더 그러는 편이고 메밀면은 그중 으뜸이다. 조금만 과식해도 금세 온종일 소화가 되지 않는다. 다른 면에 비해서 입자가 거친 메밀면은 그 정도가 더욱더 심하다.


잘 씹지도 않고 ‘처먹는' 나의 식습관도 크게 한몫하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면을 시원하게 빨아들이는 청량감에 반해 주중에도 몇 끼니를 면으로 때운다. 속이 불편할 걸 알면서도 기어코 밀어 넣는다.

몸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뿐이다.


메밀로 만든 음식은 어딘지 모르게 정이 간다. 매일 붙잡고 지내기는 싫어도 자꾸만 정이 간다.


메밀은 태생이 구황작물인지라 기름진 땅은 벼와 밀에 양보하고 원하든 원하지 않든 거친 땅을 골라 자란다. 척박한 환경에서 끄떡없이 자라며 불편한 환경에 적응하는 속도가 빠르다.  

메밀은 나와 닮았다. 그래서 아무도 모르게 깊이 정이 들었다.


비슷한 처지로 배를 불리는 기분은 내심 복잡할지도 모르겠으나 언제든 찾아가면 편안한 즐거움을 준다. 요즘 부쩍 근심이 많고 불안했던 터라 의도치 않게 발길이 닿지 않았나 싶다. 위로받으려고.


이담에 훌쩍 떠나고 싶어 지면 개화 시기에 맞춰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핀 메밀밭으로 가야겠다. 작고 하얀 꽃잎이 천지에 가득한 들판에 드러누워서 기분 좋게 메밀과 같이 햇볕을 맞고 싶다.


필시 좋은 향도 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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