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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성식 Mar 04. 2024

05. 나의 결혼식장 수난기

후쿠오카 (이민) 다이어리


  오는 11월에 결혼‘식’을 하게 됐다. 굳이 ‘식’을 강조하는 이유는 우리 부부가 혼인신고를 올린지 벌써 5년 차이기 때문이다. 나와 아내는 2019년 일본으로 넘어와 동거를 시작했는데, 정착한 지 불과 몇 달 만에 코로나가 창궐했다. 한일 간의 왕래가 어려워지며 인천-후쿠오카 비행기 편은 열 배 값이 됐고, 그나마도 주에 한 편씩만 운행됐으며, 유학이나 출장 목적이 아닌 관광객은 출입국이 제한됐다. 결혼식 연기는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그렇다고 아쉽거나 서운하진 않았다. 나는 오히려 은근한 기대를 품기도 했는데, 별로 하고 싶지 않았던 예식을 생략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성격상 남들 앞에 나서는 걸 좋아하지 않고, 시끌벅적하게 초대할 이도 별로 없다. 결혼식에 대한 로망도 없어서 솔직히… 귀찮았다.


  결혼식에 대한 한일 간의 인식차도 크다. 결혼식이 곧 결혼으로 인식되는 한국과는 달리, 일본에선 혼인 신고의 여부가 결혼의 기준이며, 혼례는 원하는 사람들만 여는 선택사항이다. 최근엔 결혼식에 대한 선호가 낮아지고 있는데, 이는 경제적 이유뿐만 아니라 미혼 커플들의 동거가 보편적이라서 그렇기도 하다. 함께한 시간이 길었던 만큼 시작점이 행사가 아닌 삶에 있는 것이다. 부부로서 검증됐다 보니 식을 올리는 것도 새삼스럽다. 장인 장모님도 “하면 추억이 되고 좋지.” 정도의 입장이셨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다르다. “그런데 언제 정식으로 식을 올려?”라는 질문을 들을 때마다 ‘우리는 정식으로 부부가 아니었던 적이 없었는데.’라며 약간 서운했다. 그래도 일단 예식장에 방문했다. 나도 부모가 바라는 자식의 도리를 염두에 둬야 했고, 일본식 결혼에 대한 관심도 있었기 때문이다. 상담을 받으며 이곳의 결혼식도 한국 못지않게 요상하다는 걸 알게 됐다. 조금 세게 말하자면, 돈으로 자괴감을 사는 기분이었다.


  소소한 점부터 꼽자면, 일본엔 결혼식만 전문으로 하는 교회가 있다. 교구에 속한 시설은 아니지만 성 루터의 교회, 마틴의 성당 같은 이름이 붙어 있으며, 외관도 유럽 어느 도시에 있는 유적처럼 생겼다. 내부는 스테인드글라스와 성모상 따위로 장식돼 있고, 중앙 출입구엔 고대 신전이 연상되는 코린트식 지주대가 서있다. 교회나 성당처럼 꾸민 예식장은 한국에서도 흔하지만 이곳은 채플 하나 정도가 아닌 건물 전체를 모방한 규모다. 얼마나 돈을 투자했을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주례는 성직자 비슷한 옷을 입은 백인들이 맡는데, 이들도 목사나 신부가 아닌 웨딩홀에서 고용한 배우들이다. 주로 일본에 사는 외국인들이 겸업한다는데 인원이 적다 보니 이들에게 주는 인건비도 만만찮다. 이외에도 (가짜) 성가대의 축가와 (가짜) 예배가 진행되는 등, 대체로 서양식 결혼식을 재연한 느낌이다. 일본의 기독교 신자 비중은 전 인구의 1% 미만이라는데, 이를 감안하면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모든 업체가 이렇진 않고, 한국에서처럼 주례 없는 결혼이나 전통 혼례를 여는 업체도 있다. 하지만 난감한 점은 이외에도 많다. 100명에서 200명이 기준인 한국식 예식과는 달리, 일본의 식장은 40명에서 60명 규모이며 그렇다고 스몰 웨딩과 같은 개념도 아니다. 60명을 기준으로 잡은 견적이 3천만 원 내외였는데, 이는 비슷한 급의 국내 웨딩보다 비싼 가격이다.


  과도한 비용은 하객들에게 전가된다. 후쿠오카의 축의금 평균이 3만 3천 엔이라는데, 이를 원화로 환산하면 30만 원이 넘는다. 그나마도 이곳은 지방 도시라서 저렴한 편이며, 도쿄를 비롯한 수도권에선 인당 50만 원 정도란다. 결혼식 세 번만 참석하면 웬만한 직장인의 월급이 녹아버리는 셈이다. 현지인이라면 몰라도 한국에서 일본까지 오는 하객들에게 인당 30만 원을 요구할 순 없다.


  진짜 문제는 태도였다. 하객들에게 색다른 경험을 주고 싶었던 우린 바다나 호수에 인접한 시설을 찾아다녔는데, 개중에서도 해변에 세워진 식장이 눈에 들어왔다. 미국 서부의 부촌이 연상되는 외관으로, 창밖으로 수변이 내려다보이는 통창 구조였다. 내부엔 드레스 숍과 카페, 촬영 스튜디오와 함께 회원 전용 라운지까지 설치돼 있다. 바다를 감상하기 가장 좋은 자리를 독점하는 위치였다. 이곳에서 식을 올리는 것이 가입 조건이란다.


  전형적인 회원제 마케팅이지만, 솔직히 나 역시도 현혹될 뻔했다. 나만의 독점적인 풍경을 소유하는 것이 아주 합리적인 투자처럼 느껴졌다. 수평선이 펼쳐진 웨딩홀과 공장식 예식에선 기대하기 힘든 프랑스식 코스 요리, 널찍한 독채를 만끽하는 결혼식을 상상했다. ‘바다야 아무 곳에서나 볼 수 있잖아?’라며 시큰둥한 척 했지만, 내심 사회적으로 성공한 것 같은 착각에 빠져 있었다. 허파에 바람이 들어간 것이다.


  하지만 견적서는 현실이었다. 물론 이곳이 비싸다는 건 알고 있었고 절반은 호기심에 찾은 것이었지만, 막상 숫자를 확인하고 나니 서글퍼졌다. 나의 경제력으론 꿈도 못 꿀 돈이었다. 우리의 눈치를 보던 직원이 견적에서 80만 엔을 깎아줬다. 오늘 중에 계약하면 이만큼의 할인 폭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밑도 끝도 없는 할인에 오히려 불신이 생겼다. 나는 ‘항공편이 너무 비싸다’ ‘출입국 정책도 미심쩍다.’등의 이유로 거절했지만, 직원은 두 분이서 상의해보라며 회장을 나가버렸다. 어안이 벙벙했다. 의사 전달이 잘못됐나?



  차갑게 식은 차를 털어 마셨다. 어느덧 창밖의 풍경도 어두워지고 있었다. 결혼식이고 뭐고 이젠 그만 귀가하고 싶었다. 다음엔 좀 더 확실히 거절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는데, 얼마 뒤 직원이 돌아와 충분히 고민했느냐고 질문했다. 나는 변수가 많아 결정하기 어렵다며, 앞으로 상황을 봐서 연락 주겠다고 대꾸했다. 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거듭 할인을 강조하며 일단은 계약부터 하고 나중에 일정을 조정하자고 했다. ‘그럼 나중에 할인해 주면 안 되나?’ 싶었지만 그녀는 내가 거절하기도 전에 “조금 더 생각해 보셔도 돼요.”라며 회장을 벗어났다. 그제야 깨달았다. 나 지금 강매당하고 있구나.


  그렇게 세 차례를 반복했고, 우리도 화가 나서 직원을 붙잡았다. 기존에 받은 견적도 가격 설정이 이상했기 때문이다. 비눗방울 기계 비용이 70만 원, 빔 프로젝터 대여료가 50만 원, 백 미터도 안 되는 길을 전동카트로 이동하는 돈이 60만 원 등등, 대놓고 바가지요금인 데다, 대부분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옵션이었다. 묶음 할인 세트라 부분 선택도 불가능했다.


  “다른 건 그렇다 쳐요… 카트는 대체 뭐죠?”  


  직원이 태블릿을 재생했다. DVD로 제작되는 실황 영상이었다. 화면은 해변을 달리는 전동카트를 조감하더니 뒷좌석에 탑승한 신혼 커플(모델)을 주목했다. 둘은 재연 프로그램의 단역 배우처럼 웃고 있었다. 로비에 도착한 둘은 연인처럼 포즈를 잡더니, 초면인 티를 지울 새도 없이 결혼식장으로 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웨딩 벨이 울리고… 나는 자괴감에 빠졌다. 결혼을 쇼로 아는 거야 뭐야?


  그럼에도 직원은 행사의 품격이라느니, 연출의 일체화라느니, 헤리티지라느니, 자신들끼리만 공유하는 정답에 취해 있었다. 우린 멋대로 떠드는 직원을 무시했다. 나와 아내는 이미 부부로서 인정받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 무의미한 사치로 우리들의 진실성을 증명할 필요가 없다. 프로의 결과물이 멋있어 보일 순 있으나, 결혼식의 원형이나 이상 같은 것은 아니며 그들이 개발해낸 상품일 뿐이다. DVD 영상의 꼭두각시 같은 꼴은 되고 싶지 않다.


  식장을 벗어난 뒤, 우리는 예식의 필요성을 곱씹었다. 의무와 책임, 사회적 의미를 덮어놓고 보면 결론은 행복한 순간을 기념하기 위함이었다. 뒤돌아보면 우리의 행복은 거창한 성취나 행운에 있지 않았다. 별것 아닌 일상, 작은 농담과 장난이 남긴 웃음과, 외롭지 않은 일상이 주는 안정감에 있었다. 하객들의 바람도 우리의 진솔한 현재가 아닐까.


  체면과 수준, 외관보단 평범한 추억과 사연, 일상이 담긴 장소를 찾기로 했다. 우리가 자주 가는 미술관과, 혼인 신고서를 작성했던 카페, 여름휴가를 보냈던 해변과 그곳에서의 바비큐 파티를 고려했다. 어느 곳 하나 이야깃거리가 없는 곳이 없었고, 덕분에 나도 의욕이 생겼다. 그중 자주 가던 나카스 강변의 식장을 골랐다. 평소엔 파인 다이닝으로, 주말엔 예식과 파티 용도로 운영되는 곳이었다. 좌석이 넉넉했을 뿐만 아니라 방문했던 날의 결혼 풍경도 마음에 들었다. 아주 아늑하고 편안한 분위기였다.


  기본적인 견적은 있었지만, 할인을 미끼로 강매하거나 옵션을 강제하지도 않았고, 불필요한 점도 자유롭게 수정할 수 있었다. 덕분에 좋은 요리를 대접하면서도 하객들의 축의금 부담을 줄일 수 있었다. “정말 원하는 것들만 채워 넣은 결혼‘이 목표라고 하던 직원은 내가 일전에 당한 일을 털어놓자 눈살을 찌푸렸다. 워낙에 흔한 일이란다.


  “웨딩홀은 집요할 수밖에 없죠. 결혼이 아니면 매출이 없는데, 예식을 원하는 인구는 날이 갈수록 줄잖아요. 고가 정책이 유일한 전략이에요. 저희는 식사 매출 이외엔 욕심 낼 필요가 없죠. 대관이 없으면 영업을 하면 되니까요.”


  그러면서 말하길, 이곳도 이전엔 웨딩홀이었단다. 코로나 이전엔 채플과 공연장도 설치돼 있었는데 사업이 어려워 식당 및 대관시설로 전환했다는 거다. 덕분에 폐업하는 대신 기존의 업력을 온존했다는데, 어쩐지 결혼식 준비에 빠삭한 이유가 있었다.


  세상엔 참 어설픈 것들이 많다. 허세와 과시가 낳은 불쾌한 문화, 정답을 자칭하는 오만은 오히려 절박함일 수도 있다. 나와 아내는 직업 특성상 주변을 의식할 필요가 적은 편이지만, 사회인이신 분들의 처지는 다를 것 같다. 그들이 만든 허상과도 같은 규칙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을 거라고 본다. 최근엔 5성급 호텔 숙박과 명품 선물을 동원한 프러포즈가 유행이라는데, 본인의 갈망이라면 몰라도 타인을 모방하기 위함이라면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결국엔 모두가 모두를 힘들게 할 테니까.


  내 주변에도 결혼 앞에서 좌절한 분들이 많다. 그들에겐 큰 욕심이 없다. 좋은 사람과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지만 현실의 벽은 냉혹하다. 양육비와 거주 비용도 문제지만 자괴감을 주는 결혼식부터가 장벽이다. 어째서 본말이 전도된 걸까? 두 사람의 진심만으로도 행복한 결혼이 가능해졌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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