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딸아이와 얘기를 하지 않는다.
오늘, TV에서 매주, 한 영화를 보며 영화 내용의 의미 분석을 하는 프로그램을 봤다. 오늘의 영화는 2018년 칸느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일본 영화 “어느 가족”이었다. 그 영화와 별로 연관된 것 같진 않지만 나는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문득 나의 딸과 나의 관계를 생각해 보았다. 내가 자평해 보건대, 내가 아버지로서 딸에게 그다지 나쁜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진 않다. 가부장적이지도 않고, 딸아이에게 푸시하는 것도 없는 것 같고, 딸의 상황을 이해하려 하고… 하지만 자상하지도, 조언을 많이 해 주지도 그리고 딸에게 유머러스하지도 않은 편이다.
나의 아버지가 돌아 가신지 벌써 15년 전의 일이 되었다. “아버지”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머리가 세시어 하얗고 하지만 항상 깨끗하게 머릿결을 유지하신 모습이 떠오른다. 늘 소파에서 TV를 보시고 계셨다. 우리 식구가 주말에 찾아뵈면 소파에서 우리가 집으로 들어서는 모습을 보시고는 정말 해맑은 표정으로 반겨주셨다. 하지만 어떠한 인사말도 안부를 묻는 말씀도 없으셨다. 나의 아버지는 그렇게 말씀이 없으셨다. 사실 나는 아버지와 얘기를 놔눠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래도 아버지와 함께 했던 기억은 내가 중학교 1, 2학년 때 미국의 코믹 서부영화 “내 이름은 튜니티” 시리즈의 영화를 본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나를 대리고 두 번 정도 그 서부영화를 보러 함께 간 것과 낚시를 좋아하셔서 내가 몇 번 따라간 것이 아버지와 같이 한 일이 전부이다.
열 살, 여덟 살 터울이 나는 형들은 아마도 나와 다른 아버지의 모습을 떠 올릴 것 같다. 형들이 아마도 고등학교 시절이었을 것이다. 나는 어려서 잘 몰랐지만 작은 형이 큰형에게 대들어서 둘이 크게 싸운 적이 있었다. 아버지께서는 그 사실에 몹시 화를 내시고 정말 추웠던 한 겨울 엄동설한에 베란다에 두 형들을 팬티바람으로 나오게 하셨다. 그리곤 당신도 옷을 벗고 팬티 바람으로 베란다로 나섰다. 그리곤 동파를 방지하기 위해 이불로 꽁꽁 싸 매 놓은 수도에 호수를 연결하시어 당신의 몸에 찬물을 부으셨다. 그리곤 다음은 두 형들에게 똑같이 하셨다. 그 이후로 형들이 싸우는 걸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두 형들이 중년이 될 때까지 길게 대화를 나눈 적을 본적 또한 없었다.
어렸을 적 우리 집 분위기는 늘 조용했다. 모든 대화는 어머니를 통해서 이루어졌고, 남자들끼리 얘기하는 법은 없었다. 그나마 나와 큰형이 가까운 편이었다. 사실 우리 집에도 딸이 있었다. 바로 내 밑으로 세 살 터울이 나는 여동생이 있었다. 하지만 그 아이도 활달한 성격이 아니었다. 여동생은 사실 아주 어려서 어머니께서 그 아이를 입양해 오신 아이이다. 어머니는 당신밖에 여성이 없는 매우 무뚝뚝한 집안 분위기에 질려 딸을 많이 희망하신 모양이다. 나는 이 나이가 되도록 어머님의 특별한 질문이 기억난다. “너도 동생이 있으면 좋겠니?” 나는 그렇다고 했다. 그리고 얼마 후 여자아이가 내 동생이라고 나타났다. 내 동생의 입양 사실은 그 아이가 성인 될 때 까지도 묵언의 비밀로 유지되었다. 그렇게 온 내 여동생 역시 자신이 입양되어온 아이 이란 것을 알았겠지만, 우리 집에서 그 아이도 다른 어떤 식구도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유산 문제가 불거질 때까지 그것에 대해 얘기한 적은 없었다.
그렇게 나는 가족과 대화하는 방법을 터득하지 못한 채 성장했다. 아마도 나는 진지하고 긴 대화라는 것은 나의 아내를 만나고 인 것 같다. 우리는 꼬박 2년을 매일 만났고 많은 대화를 했다. 결혼을 했고, 아이가 생겼다. 첫 직장을 그만두고 나는 지금 까지 대부분의 일터가 아내와 함께 한 일들이었다. 30년 동안 정말 많은 이야기들을 아내와 해 왔다. 지금 내 나이 중년의 끝자락인 이쯤에서 나의 딸은 성인이 되었고, 성숙해졌고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 아내는 딸과 대화한다
이제 나는 나의 아버지처럼 조용히 있다. 심심할 때면 sns를 쳐다보고, 시간을 죽이려면 TV를 본다. 나에게 개인적인 시간이 주어질 때면 허접한 글을 쓰고, 아내가 음식을 할 때엔 옆에서 재료를 씻고 칼질을 한다. 가끔은 청소기를 돌리고 여름엔 정원일을 한다.
나는 딸아이와 얘기를 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