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신호에서 멈춰라!
우중충한 겨울 날씨다. 시멘트 바닥 위로 자전거 바퀴가 바람을 가르며 굴러간다. 돌아가는 자전거 살 너머로 축대 위 창고 앞 트럭에서 물건을 내리는 외국인들이 보인다. 그 들과 같이 물건을 하역하는 한국사람들은 아직 홑 점퍼를 입고 일하는 반면 외국인 근로자들의 옷차림은 벌써 한겨울의 패딩이다. 또 다른 갈래 좁은 시멘트 길에선 1톤 트럭과 승용차가 서로 맞물려 오가지 못하고 애를 쓴다. 승용차엔 아주머니가 방지턱이 없는 길 옆 도랑으로 빠질까 봐 옴짝달싹도 못하고, 그 모습을 우두커니 지켜보는 트럭 운전사가 있는 데로 짜증을 부린다. 기다리다 지친 트럭 운전사는 창박으로 고개를 내밀고 앞바퀴를 살피며 길을 빠져나오려 전진 후진을 반복한다.
도로 옆의 논들은 푸르름 이라곤 아예 없는 모습들만 보인다. 묘한이 타고 가는 자전거의 속도와 초겨울의 가시 같은 바람이 묘한의 머리카락 흩뜨려 놓는다. 바람에 연신 휘 날리는 머리카락에 묘한의 뒷덜미 문신이 보일 락 말 락 한다. 묘한의 코는 마파람에 빨갛게 얼어버렸고 기관차처럼 입에서 반복적으로 입김이 가느다랗게 나온다. 장갑을 껐지만 손도 시리고, 한 겨울에도 두꺼운 옷을 잘 입지 않는 묘한은 별로 추운 날씨도 아닌데 괴롭다. 까만 똑 단발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연신 묘한의 눈앞을 가린다.
“아~~~ 씨발~”
묘한의 미간은 찌푸려져 있고 거친 욕과 신음 소리를 연거푸 내며 논 사이의 시멘트 길을 달려가고 있다.
사실 오늘은 묘한의 목덜미에 있는 Cruz Celta (켈트 십자가) 문신을 지우려 피부과를 예약한 날이다. Cruz Celta 타투는 작년 이맘때쯤 병을 앓고 계시는 엄마를 위해 한 거였다. 2년 가까이 앓고 있던 엄마의 처절한 투병 생활이 보기 힘들었던 묘한은 절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엄마가 그토록 믿었던 하나님께, 병에 걸린 우리 엄마를 더 선명하게 보이기 위해 타투를 했던 것이다. 그런 나름의 의미가 있었던 타투였기에 묘한은 이런 상황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것에 더 잔뜩 화가 나 있고 짜증이 나 있는 거다. 하늘에서 요란한 소음이 퍼지면서 군용 헬리콥터 세대가 묘한의 머리 위로 낮게 날아간다.
작은 규모의 논들과 함께 이곳저곳의 창고가 제법 있는 삭막한 도시 외곽의 흔한 풍경을 한참을 달려 묘한이 속도를 줄인 곳은 큰길로 만나는 시멘트길 끝 자락의 슈퍼마켓이다. 묘한은 익숙하게 가게 뒤편으로 돌아 마당의 창고 기둥에 타고 온 자전거 자물쇠를 채운다. 옆에서 묘한을 알아보고 정신없이 꼬리를 흔들어대는 복실이에게 평소에 그렇게 귀여워했던 때와 달리 묘한은 복실이와 눈도 마주치지 않는다. 슈퍼 뒷마당에서 슈퍼로 통하는 작은 문으로 들어간다. 묘한은 슈퍼를 익숙하게 관통하며.
“이모. 저 오늘 수지 만나고 늦을지 몰라요! 자전거 없으면 일찍 들어온 거고…”
쌀쌀맞게 계산대 앞에 앉아있는 아주머니께 눈길도 주지 않고 말하며 슈퍼문을 드르륵 열고 큰길로 나간다.
슈퍼문을 열자 버스가 출발하며 내는 시끄러운 엔진 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묘한아~ 왜 그래~ 오늘 겁나 살벌한데!”
“아니에요!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여닫이 문을 닫고 묘한은 가게 앞 버스 정류장 쪽으로 사라진다.
슈퍼 이모는 내가 창고에 이사 올 때부터 나를 이뻐해 주셨던 동네 아줌마다. 나는 대형마트에 갈 일이 없으니 집에서 제일 가까운 이 슈퍼에서 웬만한 건 다 사는 편인데, 이 동네에서 나와 가장 쿵작이 잘 맞는 사람이다. 남편은 목수인데 주로 방송국 세트 짖는 일을 하기 때문에 출장을 많이 다닌다. 무뚝뚝한 고1 아들과 동네에서 유명한 날날이 여중생 딸이 있다. 슈퍼 이모는 늘 가게를 벗어나지 못해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안고 있고, 몹시 외로워한다. 그래서 묘한이 오며 가며 이모와 얘기를 많이 하는 편이다. 묘한이 일하는 ‘포니 승마장’에 오는 이런저런 꼴불견인 사람들 얘기를 해주면 이모는 너무 재밌어한다. 지금은 너무 친한 사이가 되어 자전거도 뒷마당에 스스럼없이 맞기고 외출할 수 있고, 이모는 내가 혼자 사는 것이 딱하다고 가끔 반찬도 챙겨 주신다. 묘한은 그저 이모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을 뿐인데…
나는 떡국도 끓여 먹지 못했던 18살 되던 연초에 ‘설암’으로 엄마가 죽었다. 한 2년 동안 엄마의 아픔에 아빠도 나도 끔찍한 날들을 보냈다. 어차피 대학 진학은 생각지도 안았지만 나의 마지막 학창 시절도 엉망이었다. 우리 살림이 돈은 별로 없지만 엄마의 치료에 한계가 있다는 게 더 괴로웠다. 게다가 희귀병인 엄마병을 기회로 자신들의 연구자료로 쓰려는 대학병원의 인턴, 레지던트들은 다 죽여버리고 싶었다. 엄마의 장래가 끝나고 며칠 후 아빠가 나에게 어렵게 얘기를 했었다.
“묘한아! 이제 엄마가 저세상으로 떠났으니 우리는 살자.”
그리곤 아빠는 창원의 아빠 친구 제광이 아저씨의 선박공장으로 가셨다. 아빠는 창원에 가시면서 나에게 세 식구가 살았던 연립의 전세금을 뽑아서 지금 살고 있는 널찍한 창고를 얻어 주셨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창고는 창고 치고는 작은 사이즈이고, 똑같은 크기의 건물이 나란히 마주 보고 있는 형상인, 한 대지에 두 개의 창고가 있는 것이다. 창고와 창고 사이에 마당처럼 약간의 공간이 있고 창고 안은 혼자 살기에는 무척 넓은 공간이다. 창고 안은 천장이 높아 그리 크지 않은 물건들을 보관하면 윗 공간이 크게 남는다. 그래서 창고에 이층을 만들어 살림을 할 수 있게 개조한 공간에서 내가 살고 있는 것이다.
창고 입구는 짐을 부릴 수 있는 커다란 여닫이 문짝에 또 조그만 미닫이 문이 달려있어 사람만 드나들 수 있게 되어있는데 그 문이 우리 집의 대문이다. 창고에 싸인 물건은 포장이 잘되어 있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고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까지는 널찍하게 길로 비워두었다. 계단을 올라가자마자 추운 겨울의 외풍을 막기 위해 커튼레일에 비닐을 걸어 놓았는데, 매번 비닐커튼을 양쪽으로 벌리느라 조금 귀찮긴 하지만 가운데에 자석을 붙여 틈새가 벌어지지 않게 했다. 커튼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면 꽤 넓은 거실과 맞은편에 침실이 있다.
거실로 향하면 오른쪽 편엔 싱크대와 두꺼운 나무로 만든 엔틱스럽고 튼튼해 보이는 긴 테이블 있고, 그 위엔 가스레인지와 도마, 냄비 그릇 등 부엌살림이 놓여 있다. 그 옆으로 사무실용 작은 냉장고가 있다. 싱크 위에 밖으로 난 환풍기가 달린 창문이 있지만 풍경은 그냥 좀 삭막하다. 그래도 나는 설거지를 하면서 바깥 풍경을 항상 내다보긴 한다. 부엌으로 사용하는 공간 그 반대편엔 싱크대 옆의 테이블과 같은 재질의 두꺼운 나무로 기억자 테이블이 있는데 한쪽은 노트북과 도자기로 된 필통이 있는 책상이고, 한쪽은 식탁으로 사용하고 있다. 식탁 위엔 지름이 약 20센티, 두께가 2센티 정도의 통나무 편으로 냄비 받침대로 사용하는데 좀 운치가 있어 보인다. 우리 집에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좀 특이한 것이 몇 가지 있다.
거실 한가운데 무쇠로 된 조개탄 난로가 있고, 책상 쪽 벽엔 내 키만 한 괘종시계가 있다. 태엽으로 가는 시계 같지만 사실 배터리를 사용하는 시계다. 나는 똑같은 사무실용 미니 냉장고가 세대나 있는데 부엌 쪽에, 책상 쪽에 그리고 침실에 하나가 또 있다. 가끔 잠이 들 때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가 나지막이 나면 묘한은 잠이 더 잘 온다. 그리고 책상 쪽 벽엔 조그마한 화분이 여러 개 있고 그위엔 아래층 창고 내부가 보이는 창문과 그 옆 벽면엔 여러 의미를 갖고 있는 프린트된 문신의 문양들이 테이프로 붙여져 있다. 침실 쪽 벽엔 4단 나무 선반이 있어 잡다한 물건들이 잘 정리되어 있다.
침실엔 침대, 사무용 미니 냉작고 옷장 그리고 옛날 미싱에 거울을 올려놓고 화장대로 사용하는데 그 위에 계단형 장신구 걸이에는 다양한 귀걸이가 많다. 묘한은 오른쪽 귀에 일곱 개의 피어싱과 왼쪽 귀에 열세 개의 피어싱이 있어서 귀걸이와 피어싱 장신구가 많다. 왼쪽 귀 뒤에 아라베스크 무늬 문신 그리고 왼쪽 팔목 안쪽과 팔이 접히는 부분 사이에 얇은 직선의 긴 문신, (나중에 타투를 더 함-수지와 문신하러 가서 새로 세김-오른손 중지와 검지 사이의 속살에 ), 목 뒷덜미 Cruz Celta (켈트 십자가) 문신, 왼손 검지에서 손등 위로 비워 있는 직사각형의 문신. 손등의 직사각형 문신은 칸 만화처럼 볼펜으로 낙서를 하려고 비워 놨다. 그리고 나는 검은 머리의 똑 단발의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다.(나중에 오른쪽 머리를 아주 짧게 밀고 머리 두피에도 문신을 한다.)
슈퍼 앞 버스 정류장에서 묘한은 일산 시내를 가기 위해 56번 버스에 올라탄다. 운전사가 자기가 정한 시점 있는지 버스에 승차하는 묘한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보통은 56번 버스와 150번 버스는 배차간격이 비슷해서 56번 버스를 그냥 보내고 56번 버스보다 다섯 정거장이 빠른 150번 버스를 타는데 오늘은 좀 늦어서 좀 돌아가도 56번 버스를 탔다. 버스는 150 버스보다 덤으로 다섯 정류장을 더 타는 중산마을에서 일일이 사람들을 태웠다. 갑자기 늘어진 시간은 단지 다섯 정거장을 더 들른 것이 아니라 마치 나에게 들어내고 싶은 세월이 지금 여기에 끼워 맞춘 듯하다. 그러면서 뜬금없이 옛날에 아빠와 생멸치를 사러 인천 소래 포구에 갔을 때 해준 이야기가 문뜩 생각이 났다.
— 아빠가 젊었을 때만 해도 수원, 인천을 왕래하는 미니열차가 있었다. 수원에서 인천, 인천에서 수원은 승객이나 실어 나를 마땅한 물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서 정식 기차 노선이 있기도 뭐하고 그렇다고 철도가 없기도 뭐해서 연구 끝에 작은 협궤열차를 운행시키기로 했다. 차량이 매우 작고 레일도 일반 기차와는 달리 많이 좁았다. 하루에 몇 번 운행을 하진 않았지만 가을 수확철에는 작물이 든 자루를 머리에 이어 맨 할머니들이 많이 타셨다. 주로 말린 고추를 힘겹게 끌어안고 기차에 올랐는데, 기차 좌석이 지금의 지하철처럼 옆으로 쭉 앉는 데다가 기차가 좁아 앉아있는 사람들의 사이는 겨우 한 사람이 걸어갈 수 있을 정도였을 뿐이었다. 그 공간에 할머니들은 당신들의 몸 크기보다 큰 자루를 내려놓으셨다. 건설현장의 갓 부은 콘크리트가 채 마르기도 전에 누군가 커다란 돌을 집어던 저 콘크리트가 사방으로 튀는 것처럼 사방으로 젊은 이들은 튕겨 저 나와 자리를 할머니들께 양보하고 일어났다. 그 후로 마땅히 서있을 자리도 없어서 고생스럽게 벽에 기댄 손으로 온몸의 무게를 지탱하며 목적지가 다다를 것을 고대했다. —는 이야기이다.
56번 버스가 그 다섯 정거장을 들러야 했던 마을은 신흥 도시의 끝자락과 시골이 접하고 있는 지점에 있는 새로 지은 커다란 아파트 단지이다. 동네 재래시장에서 하필이면 오늘이 5일장이 서는 날이라 노인들이 많이 탄다. 등산가방을 멘 아저씨들 몇이 올라타고도 버스는 출발하지 못한다. 창밖을 보니 버스의 입구 문을 할머니 한 분이 버스 문 손잡이를 잡고 버스에 오르지도, 버스를 그냥 보내지도 않고 그저 버스 문을 붙잡고 계신다. 자세히 보니 할머니는 버스 문을 부여잡고 뒤에서 느지막이 걸어오는 할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풍을 맞으셨는지 다리를 절어 걸음이 느리다. 버스 기사분은 이미 그 상황을 파악하고 그저 운전대에 앞으로 숙여 기댄 채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버스에 오르시기를 사이드 미러를 보며 기다리고 있다. 마침내 두 노인이 버스에 승차하고 버스가 출발한다.
다음 정거장이 장이 서는 시장에서 가장 가까운 정류장이다. 연세가 있으신 분들은 모두 이번 정류장에서 내리려고 출구에 모여 있다. 천천히 내려도 되겠건만 모두가 버스가 서기도 전에 출구에서 흔들흔들 위태하게 서 있다. 버스가 정류장에 정차하고 대부분의 노인들과 장사치들이 일제히 버스에서 내린다. 몇몇 젊어 보이는 사람들은 빈자리를 찾아서 이제야 하나 둘 자리에 앉는다. 하지만 이내 장보기를 마친 노인들이 검은 봉투들을 한아름씩 들고 버스에 오른다. 빈자리에 앉았던 젊은이들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노인들에게 자리를 양보한다. 버스는 출발하고 그나마 다음 정류장에선 수영 학원을 마치고 수영장의 소독약 냄새를 폴폴 내며 집으로 돌아가는 몇 명의 꼬마 아이들이 타고 그 기나긴 다섯 정류장을 지나쳐 왔다. 그러고도 한참을 지나 나는 일산 롯데백화점에서 다다른다. 백화점 가까이에 광장이 있는데 오늘따라 종교행사 모임이 있는지 교회 사람들이 주변에서 찬송가를 부르고 일부 일행들은 근처에서 지니기는 사람들에게 유인물을 나눠주고 있다. 마침내 앞의 아줌마가 그 사람들에게 붙잡혀서 나는 슬그머니 옆으로 피해 갈 수 있었다.
문신을 지우기 위해 예약한 피부과는 백화점 주차장에서 백화점으로 연결된 별관 3층에 있다. 3층으로 오르는 엘리베이터는 백화점에서 쇼핑할 수 있는 쇼핑카트와 많은 사람을 나르기 위한 엘리베이터는 대형이어서 안전을 위해 엘리베이터 문도 천천히 닫히고, 3층까지 가는데 한세월이 걸린다. 게다가 누군가 2층 버튼을 누르면 눈알을 위로 까 뒤집을 정도로 정말 숨이 가빠진다.
피부과 앞에 드디어 도달한 나는 마침내 피부과 투명 유리문을 열며 나의 진료 전, 순번을 기다릴 네 사람이 소파에 앉아 기다리는 것을 확인하고 데스크로 앞으로 간다. 나는 이름을 대고 예약 확인을 한 뒤 소파 앞에 앉은 한 남자의 앞을 지나 소파 한편에 앉는다. 그때 남자는 좁은 테이블과 소파 사이를 막고 있는 자신의 다리를 치워 비켜주면서 나를 처다 본다. 놀란 얼굴이다. 하지만 나는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는 것에는 달관한 사람이다. 내 차례가 돼서 진료실로 들어갔다. 진료실 내부는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흐르고 순둥이처럼 생긴 간호사가 있고 입구 반대 편의 문에서 파마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젊은 여의사가 나타난다. 누가 피부과 의사 아니랄까 봐 피부가 정말 백옥같이 예쁘다.
“어떻게 오셨나요?”
나는 꾸벅 머리를 숙여 인사하고 고개를 돌려 목덜미의 문신을 보여주었다.
“이거 좀 지우려고요.”
“아~ 예~” “그런데 문신을 레이저로 지우는데 문신이 큰 편이라 그 부분은 머리카락이 나지 않을 수도 있는데 괜찮겠어요?”
아~ 순간 나는 화가 치밀어 올라 얼굴이 터질 것 같다. 옆에 준비되어 있는 작은 거울에 상기되어 있는 내 모습이 비친다. 아~ 씨발 그 미친 예수쟁이년 때문에 내가 내 문신을 지우러 여기까지 왔는데 머리카락이 영원히 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나는 여의사의 얼굴을 쳐다보고 그 옆에 있는 간호사의 얼굴을 쳐다봤다. 너무 화가 나서 약간 현기증이 오는데 간호사 너머 뒤 벽에 걸려있는 십자가를 발견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치밀어 오르는 짜증을 감당하기가 힘들었다.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손등의 프레임 문신을 바라보았다. 어젯밤에 인터넷으로 마음에 드는 의미가 있는 문신을 발견하여 프레임에 조그맣게 그려보았었다. 그 그림은 세 개의 큰 점으로 빨강, 노랑, 초록색의 신호등 문양이다. 그 프레임 안의 문신 문양을 보고 나는 결심했다. 지금은 빨간 불이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제가 이 문신을 머리카락이 안 날 수도 있다는,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지워야 될 만큼 싫어하는 문신은 아니거든요. 한번 더 생각해 보고 그래도 문신을 지울 생각이 있으면 다시 예약할게요. 죄송합니다.”
여의사는 차가운 표정으로
“네. 그러세요. 신중하게 생각해 보세요.”
뭐지 이 말투는 그럼 내가 신중하지 못하게 문신을 해서 또 지우려고 하고 그 생각도 신중하지 못해서 되돌린다는 의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