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굽 장제 II

고화질 카메라가 갖고 싶다!

by 지방

며칠 전, 웨스턴 돔에서 수지를 만났는데 수지의 기력이 쪽 빠져 보였다. 곧 오디션이 있어서 댄스 연습을 너무 많이 했나 보다. 가뜩이나 네일 샵 사장님이 자릿세를 너무 올려 받아, 할 수 없이 수지는 일하는 시간을 줄여 수입도 적어지는데 곧 다가 올 오디션도 스트레스란다.


“야! 왜 이렇게 얼굴 살이 쪽 빠졌어?”


수지는 대답 대신 나에게 착붙어 애교를 떤다.


“맛있는 거 사줘.”


지금은 수지보다 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는 내가 수입이 나은 편이다.


“그래, 요기 2층에 짬뽕집 가서 매운 낙지 짬뽕 먹자.


“그래. 그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올라 바로 유턴을 하면 짬뽕집이다. 맛 집이라 식사 때도 아닌데 줄이 꽤 길다. 줄의 꼬리를 찾아서 나와 수지가 서고 잠시 후 우리들 뒤로 또래 정도로 보이는 여자 두 명이 꼬리 뒤를 이었다. 수지는 댄스학원에 새로 들어온 재밌는 남자(제훈)에 대해 얘기해 줬다.


“게, 꽤 괜찮게 생겼어. 키도 크고 비율도, 얼굴도, 아이돌 해도 될 정도야. 근데 얘가 춤도 잘 춰. 원래 광주에서 쭉 살고 거기서 댄스학원을 다녔었나 봐. 그래서 이번에 서울에서 준비하고 오디션 보려고 서울로 온 지 얼마 안 됐데.


“야, 그럼 걔랑 잘해봐. 적극적으로. 응.”


“게이야~”


“뭐?”


“게이라고~ 걔 게이야~”


“게이는 남자 아니냐!”


“아이~씨. 너 게이 몰라! 게이는 남자를 좋아한다고.”


“아이~ 씨.”


“되게 착해. 많이 친해졌어.”


둘이 얘기하면서 한발 한발 꼬리에서 식당 앞쪽으로 이동을 한다.


“오디션이 언제야?’


“아직 두세 달 정도 남았어. 정확한 공지는 아직 안 떴어. 아무래도 봄에 활동을 시작하는 가수들이 많으니까 늦어도 2월 정도에는 댄서들을 보강해야 하거든.”


“근데 넌 왜 RG만 고집해. 요즘 여기저기 엔터(엔터테인먼트 회사)들 많더구먼.”


“그냥 왠지 RG가 마음에 들어. 그리고 나 춤 잘 추는 편이야. 한번 해 보고…”


“그럼 알지~. 잘 준비 해”


나와 수지가 얘기를 나누는 동안 뒤에서 같이 줄 서 있는 사람들이 우리를 보는 눈빛이 어색하다. 마치 우리 얘기를 엿듣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녀들의 시선이 자꾸 우리에게 멈춘다. 그래서 나도 수지도 그녀들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우리의 그런 모습을 눈치채고 그녀들이 바로 말을 걸어온다.


“안녕하세요! 미안해요. 언니들이 너무 멋있어서 자꾸 보게 됐어요.”


입고 있는 겉옷 안감으로 하얀 인조털로 따뜻하게 만든 청자켓을 입은 여자가 말은 건넨다.

수지가 영혼 없이.


“아~ 예~”


사실 나와 수지는 외모가 범상치 않은 편이다. 나는 피어싱과 문신이 많이 드러나 있고, 수지는 늘 모자와 펑퍼짐한 스타일로 옷차림이 보이쉬하다. 그래서 각각 혼자 다닐 때도 사람들이 많이 쳐다보지만 같이 다닐 때에는 길거리에서 한 번쯤 쳐다보지 않는 사람이 없다. 방금 말을 건 청 재킷 옆 일행의 여자는 ‘이제 우리가 너희에게 관심이 많다는 것을 털어놓았으니 얼마든지 맘껏 쳐다봐도 되겠다’ 싶은지, 나와 수지를 대놓고 번갈아 가며 훑어본다.


“멋있어요~”


다시 청 재킷이 나서서 들고 있던 휴대폰을 들어 보이며.


“사진 좀~”


나와 수지는 그 여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동시에


“안돼요.” “아니요.”


내가 다시 한번 정중하게.


“미안해요. 우리 둘 다 셀카를 별로 안 좋아해서 둘이서도 사진은 잘 안 찍거든요.”


그때 갑자기 짬뽕집 옆의 옆의 샤부샤부 집 앞 2층 광장에서 복도 내부로 거센 바람이 세게 밀려들어 온다.

수지는 모자가 바람에 들썩여 얼른 모자를 감싸고, 나는 찰랑이는 머리칼 때문에 고개를 돌리고 등으로 바람을 맞았다. 바람은 이내 잦아지고, 청 재킷이


“미안해요. 수정이와 저는 많이 찍는 편이라… 불편하실 줄도 모르고…”


내가 살짝 손바닥이 보기 게 펴 올려 아니라는 제스처로


“아니에요.”


청 재킷이 지갑을 꺼내 명함을 주며.


“저희는 양지마을의 미용 숍에서 헤어하고 있어요. 두 분 한번 오시면 좋겠어요. 싸게 해 드릴게요.”


나는 명함을 받아 들며 다정다감하게.


“멋있다. 헤어하시는구나. 고맙습니다. 한 번 갈게요.”


그 말투에 수지가 의아하다는 듯 입을 벌리고 눈을 크게 떠, 나를 쳐다본다. 나는 뭐 그러고 싶냐고… 미간을 찌푸린다. 미묘한 대화를 간신히 마치고 나는 수지와 서로 안도의 눈빛을 교환하며 뒤로 돌아 식당 유리창 너머 웨이트리스가 분주히 주문을 받는 모습을 보며 대기줄의 '서 있음’의 의무를 다시 시작한다. 그런데 다시 청 재킷 옆의 여자, 수정이라고 했던가? 나의 목덜미의 문신(Cruz Celta (켈트 십자가))에 흥미가 있는지 말을 걸어온다.


“어! 십자가, 너무 멋져요~ 절실한 자매이신가 봐요? 그 용기에 축복드려요.”


나는 이 부분에서 정말 뒤를 돌아보기가 싫었다. 미간은 있는 힘껏 찌푸려져 있고, 나의 표정을 본 수지는 뭔가 긴장의 눈빛으로 변했다. 그래도 나는 대답을 해 줬다. 매우 무뚝뚝했지만…


“아니요. 전 무신론자예요. 이 타투는 저에게 개인적인 의미가 있어서 한 겁니다.”


청 재킷 옆의 여자(수정)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믿음이 있으신 분이 아니면서 성가(예수가 못 박힌 십자가)에 개인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고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성가는 예수 믿음의 표식이며 기독교의 상징이에요. 그런데 믿음이 없는 사람이 몸에 성가를 새겨 욕되게 할 수 있나요!”


나는 그 여자의 말이 끝내자마자


“어이. 내가 타투가 많다고 나의 몸을 아무렇게 하는 사람은 아니야, 너의 예수가 어떻게 했는지 난 알지도 못하고, 알고 싶지도 안아. 그저 나는 나의 의미를 새겨 간직하고 싶은 마음에 결정한 거야. 예수쟁이들의 상징인 것 알았지만 나에겐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너네들이 신으로 여기는 것을 나는 하찮게 여겨, 두려울 게 없거든 나는... 너는 네가 옳다고 나의 몸을 평 하는진 모르겠지만, 내 몸은 내 거야. 너는 예수 앞에 순결한 네 몸과 더러운 네 입이나 생각해.”


나는 몹시 흥분했다.


“그리고 나는 오늘 내 친구에게 정말 꼭 이 집의 짬뽕을 사 주고 싶어. 그러니 닥치고 너희 끼리 먹고 가시던가, 아니면 딴 메뉴를 찾아보시든가. 응.”


나는 수지와 테이블에 앉아 주문을 한다.


“언니, 특 짬뽕에 낙지 한 마리씩 더 넣어주세요.”


나는 웨이트리스에게 주문하고 수지와 서로의 눈웃음으로 눈을 맞추며


“씨발. 나 켈트 십자가 지울 거야!”


수지가 놀란다.


수지와 나는 짬뽕을 배부르게 먹고 후식으로 아이스크림을 사서, 소가 사료를 먹을 때처럼 서로 경쟁하듯 혀를 날름거리며 거리를 걷고 있다.


“아이씨, 매운 거 먹고 바로 차가운 거 먹어서 설사하는 건 아니겠지. 다이어트 오늘 완전 망쳤네!”


“오늘은 기운내고 내일부터 해. 수지야~ 우리 쏘니 보러 가자.”


수지와 함께 빠른 걸음으로 도착한 곳은 카메라 가게, 제법 쌀쌀한 날인데도 활짝 열려있는 매장 문으로 막 들어서려는데, 입구에서 직원이 막는다.


“손님, 매장 내에 음식물 반입은 안됩니다. 죄송하지만 다 드시고 들어오시겠어요!”


수지가 얄밉다는 듯이 직원을 째려보고 뒷걸음질한다. 둘은 매장 옆 아동복 가게 사이에서 여전히 남은 아이스크림을 해치우느라 혀를 날름거린다. 길거리 매대에서 머리띠나 휴대폰 케이스를 구경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냥 그녀들 앞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보면서 연신 혀를 날름거린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아이스크림 콘까지 야무지게 먹고 매장으로 들어선다. 들어서자마자 Sony 코너로 향한다. 카메라를 간절히 갖고 싶은 나는 흥분한다.


“뭐야~ RIII가 또 나왔네, 4240만 화소! 화소 수는 같네. 렌즈 마운트가 더 넓어 RII는 7.5인데 이건 7.62 야~ 그리곤 더 비싸.”


익숙하게 카메라 렌즈를 분리해서 본체 속을 들여다본다. 그런데 조명 코너에서 모르는 남자가 자꾸 나를 쳐다보는 느낌을 받는다. 머리카락은 짧은 빡빡에서 기른 머리지만 지저분해 보이지는 안는다. 마른 체형이고 키가 크진 않다. 회색 긴 티셔츠 위에 검정 반팔 티셔츠를 겹처 입었다. 조명을 고르는 것을 보아 사진 쪽에서 일하는가 보다. 그리고 검은색 티셔츠를 입은 것을 보아 자신이 조명의 빛에 반사되는 것을 막기 위해 회색과 검은색의 옷을 입었다. 그 남자의 눈길을 수지도 눈치를 챘다. 수지가 눈치 채자 마자 나를 끌고 서둘러 나가자고 한다. 수지는 내가 남자들에게 관심받는 것에 매우 민감하게 싫어한다. 그런 수지의 마음을 알고 있기에 나도 마지못해 수지에 이끌려 매장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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