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둥의 갈기
나는 천둥의 털을 빗어주기 위해 내 발바닥보다 더 큰 구둣솔 같이 생긴 솔을 세척하여 물기를 힘차게 턴다. 마구간 문 너머로 고개를 내민 ‘천둥’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정확히 말하자면 코와 눈 사이, 콧등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안으로 들어섰다. 천둥의 고삐를 입구 반대편의 큼직한 무쇠 고리에 묶고 천둥의 널찍한 목 근육을 어루만져준다.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고 나지막이 클래식 음악을 틀어서 다시 작업복 겉 주머니에 넣는다. 그래도 주변은 매우 조용한 편이어서 음악소리는 그대로 들린다. 나는 허리를 숙여 양동이에 담아 온 큼직한 솔을 오른 손바닥을 펴서 단단히 낀다. 그때 천둥이 고개를 돌려 나와 눈을 마주친다. 천둥의 고삐를 고리에 느슨하게 걸었기 때문에 천둥이 고개를 돌릴 수 있었던 것이다. 천둥이 자세를 가지러니 바로 잡고 솔질을 기다린다. 나는 보통 등부터 솔질을 시작한다. 천둥의 왼쪽 뒷다리의 근육이 살짝 떨리자 그 다리를 들어 허공에 두어 번 까딱거리고 다시 자세를 잡는다. 음악 소리는 잔잔하게 계속 흘러나온다. 솔질은 그 음악에 맞춰 연신 바쁘게 움직인다. 내가 한 발짝 옆으로 옮겨 천둥의 갈기를 빗자 청둥이 놀라 고개를 좌우로 져으며 소리를 낸다.
“가만히 있어.”
밖의 승마 교육장에서는 백사장이 친구와 그들의 여자 둘을 데리고 와 승마를 배우게 하는 모양이다. 초보 교육을 맡은 선희 언니의 목소리가 클래식 음악과 소리가 겹친다.
“하나, 둘. 하나, 둘.
이제 속도가 빨라지면 엉덩이가 콩콩콩 안장에 닿아 조금 아픕니다. 계속 이렇게 갈 수 없겠죠~
자~ 무릎을 펴고 서서 엉덩이를 안장에서 뛰웁니다.
그래야 달릴 수 있습니다.”
백사장이 그 말을 장난으로 받아친다.
“우리는 콩콩콩 가야 합니다.”
백사장과 그의 친구가 히죽 데며 웃는다.
백사장. 이름은 백형기이지만 나는 백사장을 줄여 ‘백사’라고 부른다. 백사장은 파주 출판단지에서 출판사를 운영한다. 요즘 파주 경기가 안 좋다던데 백사장은 괜찮은가 보다. 요즘 부쩍 승마장에 자주 들른다. 처자식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부인은 아닌 것 같고, 화장을 진하게 한 여자들을 데려와 승마를 잠깐씩 하고 간다. 항상 승배라는 친구와 각자의 파트너인 것처럼 보이는 여자 둘이다. 그 여자들도 나이가 적어 보이진 않지만 백사와 승배 보단 훨씬 어려 보인다. 여자들은 승마에는 관심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그저 대낮부터 시도 때도 없이 노는 것을 좋아하나 보다.
천둥은 얌전하다. 솔질은 목에서 앞 넙적 다리로 자연스럽게 내려온다. 칸 너머 가까이에서 특유의 고무장화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는 무거운 큰 신발을 신어 걸음을 옮겨 내디딜 때 뒷 굽이 생각보다 빨리 먼저 땅에 닿아 나는 소리이다. 그리고 왼발 허벅지와 오른발 허벅지가 서로 가까이 지날 때 둔탁하게 스치는 소리가 서로 박자가 된다. 승훈이다. 천둥을 빚겨주는 묘한에게 마구간 안으로 얼굴을 빼꼼히 들이밀며
“우리 천둥이 호강하네~. 묘한 씨 수고~.”
하며 내가 인사할 겨를도 없이 고개를 빼고 긴 복도를 다시 박자를 맞추며 한참을 걸어 승마장 쪽으로 빠져나가 멀어진다. 승훈은 이 승마장 주인의 외아들이다. 마땅히 변변한 대학도 못 나오고, 직장도 친구도 여자도 없이 맨날 자신의 방에서 게임만 하는 것을 낙으로 여겼던 그런 젊은이였다. 그 꼴을 보다 못해 부모가 이 승마장을 인수하였고 마구간 일을 거들게 했다. 지금 밖에서 기초교육을 하고 있는 선희 언니에게 관심이 많은데 선희 언니도 승훈이 싫지는 않다. 그가 부자라서…
천둥을 빗어주는 일이 끝나니 밖이 어둑 해지기 시작한다. 나는 천둥의 주변을 정리하며 긴 갈기를 하나 찾아 꽤 익숙하게, 갈기 뿌리 쪽을 반쪽자리 티슈로 접어 말아 머리핀으로 집었다. 나는 말들을 빗겨주는 날이면 떨어져 있는 제일 양호한 갈기를 얌전히 싸가지고 집으로 가져간다. 간혹 꼬리털을 발견하면 횡제 한 듯하다. 하나도 없을 땐 할 수 없이 일부러 말들의 갈기를 하나씩 뽑기도 한다. 아주 가끔…
나는 그것들을 모아두기만 할 뿐 따로 쓰려는 목적은 아니다. 나는 집에는 그것들이 한 움큼 있다.
오늘 나의 마구간 일은 끝이 났다. 나는 옷을 갈아 입고 퇴근 준비를 한다. 복도 한 편의 널브러진 청소도구들을 정리하고 승마장 출구 쪽으로 향한다. 승마교육을 끝맺고 ‘번개’와 함께 들어오는 선희 언니와 인사하고 마구간과 승마장 사이의 내리막 계단으로 퇴근한다. 몇 개 안 되는 계단을 내려오자 계단 위 가까이에 있는 신발이나 장화의 흙을 터는 에어브러시 시설에서 세게 바람 나오는 소리와 함께 백사장이 일행에게 거들먹거리는 소리가 크게 들린다.
“나는 말이야, 말이 많아야 먹고사는 출판 쟁이인데, 여기 와서 말을 타면 말 많은 사람들을 내 밑에 두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 그렇지 않겠어?”
일행의 여자들이 까르르 웃어준다.
퇴근하여 가파른 길을 내려 가려는데, 길 끝엔 ‘포니 승마장' 밖에 없는 이 언덕길을 늦은 시간 익숙한 소형 외제차 한 대가 올라오고 있다. 헤드라이트 불빛을 손바닥으로 가리니 지영 언니의 차임을 알 수 있었다.
“묘한 아!”
“언니. 이 시간에…? 선희 언니가 마지막으로 방금 끝났는데~”
“승훈 씨한테 허락받고.… 번개와 20분만 데이트하기로…”
“응 언니. 그럼 난 내려 갈게.”
“묘한 아, 이번 토요일 2시 시간 괜찮아?”
“응 괜찮아!”
“그럼 밥 먹자!”
“응. 2시. 어디?”
“맛있는 거 사 줄 테니 우리 회사로 와!”
“알았어. 로비에 있을게.”
지영 언니를 안 지는 1년이 넘었다. 승마를 좋아해서 주말마다 강원도로 말을 타러 갔었는데, 이곳을 알게 되면서부터 강원도까지 갈 필요 없이 여기서 말을 타기 시작했다. 나는 지영언니와 이상하게 자주 마주쳤다. 서로 관심이 많았고, 지금은 가족처럼 친한 사이다. 언니는 키도 큰 편이고 얼굴도 매우 미인인 데다가 유명대학의 석사까지 졸업한 엘리트이다. 한 번은 백사가 직접 대다가 유부녀인걸 알게 돼 창피를 당한 적도 있었다. 언니는 꽤 이른 나이에 결혼을 했다. 아이를 좋아하지만 언니의 아이는 없다. 평소에 형부 얘기는 별로 하지 않고 주말에도 나와 시간을 보낼 때가 많은 것으로 보아 성격 차이가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