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보고 싶다.
승마장에서 언덕길을 걸어 내려오면 내가 항상 자전거를 맞기는 슈퍼마켓이다. 내가 일하는 마구간은 내가 살고 있는 집에서 가까운 편이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아빠가 창원으로 내려가시고, 얼마 있지 않아서 나는 동네 슈퍼 이모랑 친해졌다. 내가 마구간에서 일할 수 있게 된 것은 슈퍼 이모랑 친해 지기 전 이야기다. 일산으로 나가려면 큰길 버스 정류장까지 나와야 한다. 그 정류장 앞에는 좀 규모가 작은 슈퍼가 있었는데, 무심코 그 슈퍼 앞 게시판에서 “포니 승마장”에서 구인광고를 보게 되었다. “포니 승마장”은 슈퍼마켓에서 고개를 들면 보이는 곳에 있다. 남서쪽 언덕 위로 바라보면 커다란 촌스런 운 간판이 멀리 보이는데 바로 그곳이다. 오며 가며 그 간판을 보고, 이런데 승마장이 있구나 했었다. 게시판의 승마장 구인광고를 보고, 그 승마장이 내 직장이 된다면 가까이 있으니 나에겐 안성맞춤이겠다 싶었다.
사실 나는 문신과 피어싱이 많은 외모 때문에 취업의 문이 넓은 편은 아니었다. 나는 포니 승마장 구인광고 연락처에 연락하기 전 이미 두 번이나 승마장 앞으로 올라가 동향을 살폈다. 두 번째 올라갔을 때 마침 먼발치에서 조마삭을 잡고 말을 훈련시키는 선희 언니의 모습을 보았다. 나 같은 또래의 여자도 이곳에서 일한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날 용기를 갖게 되어 바로 연락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곤 세 번째로 올라가 면접을 봤다. 두 명의 남자가 나를 면접 봤는데 한 명은 40대 중반으로 누가 봐도 왕년에 기수처럼 생겼다. 머리는 길러 뒤로 묶었고 왜소한 체구에 키도 나와 비슷한 것 같다. 또 한 남자는 20대 후반 정도나 될까? 젊은 남자였는데 깨끗하고 단정한 옷차림으로 봐서 이곳 마구간에서 일하는 사람 같지는 않았다. 나중에 알았지만 40대 남자는 원래 승마장의 운영자였고 승마장을 젊은 남자 승훈에게 승계하면서 직원을 보충해 주고 떠나는 거였다. 그 면접이 있었던 후로도 승훈이 승마장에 나타난 것은 한참 후이지만, 그때는 나를 보고 승훈은 호기심에 찬 얼굴이었다. 피어싱과 문신이 그에겐 새로웠나 보다. 이런저런 중요하지도 안은 질문에 대답하고 그곳에서 일하기로 정해졌다.
퇴근 시간이라 이것저것 사려는 손님들이 많아 슈퍼 이모와 긴 얘기는 못하고 자전거를 찾아 집으로 향했다. 나의 집, 창고 입구는 평지에서 약간 오르막 길인데 자전거를 타고 바로 올라 오기엔 조금 버거운 오르막이다. 오늘은 자전거에서 내려 자전거를 끌고 창고로 올라왔다. 창고 입구에 다다르면 큰 개집이 있다. 개집 치고는 꽤나 큰 편인데 거기엔 두 마리의 골든 리틀리버가 살고 있다. 순심이와 똑딱이가 나를 반겨준다. 엄마 순심이는 엎드린 채로 나를 보고 꼬리를 흔들며 인사하고 어린 똑딱이는 과하게 엉덩이가 흔들릴 정도로 꼬리를 흔들며 짖는다. 똑딱이는 순심의 딸인데 엄마랑 똑같이 생겼다고 해서 “똑딱”이다.
“똑딱이 이 쉬키, 조용히 안 해!”
나는 똑딱이가 우리 ‘표양’ 이를 못살게 굴어서 감정이 좋지 않다.
그렇게 순심이와 똑딱이에게 인사하고 나의 창고로 향하려는데, 열려있는 창고 입구 안에 주인아저씨가 기둥에 기대어 포도주잔에 와인을 들고 서서 잔을 든 손을 머리 위로 들어 말없이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오! 묘한. 잘 지냈어. 창고 춥지 안아?”
“네 괜찮아요!”
“불 안 나게 항상 조심해. 창고는 샌드위치 패널로 지어서 한 번 불나면 끝장이야. 알지!”
“네, 항상 조심하고 있어요!”
느끼한 이 사람이 나의 집주인이다. 자칭 도예가이며, 내가 살고 있는 집(창고)과 마주 보고 있는 똑같은 규모의 또 다른 창고에서 집으로 개조하여 작업실 겸으로 살고 있다. 내 기억으론 나이가 57세라고 했었고, 그의 아내는 네 살 차이 나는 53세라고 알고 있다. 도예가는 낮에는 항상 작업실에서 꽤 열심히 작업한다. 그는 술을 매우 좋아하여 매일 술을 마시고, 특히 주말이면 사람들을 초대하여 작은 술파티를 벌인다. 주로 시간강사로 나가고 있는 대학의 학생들을 초대한다. 그리고 항상 같이 술을 마시는 다른 멤버가 있는데 나는 그 사람들을 너무 싫어해서 피한다. 집주인은 평상시엔 젠틀한 편이지만 술에 취하면 매우 횡설수설 말이 길어지고 그때부턴 꼰대가 된다. 예술에 대해 문외한이지만 내가 보기엔 작품이 그리 나쁜 것 같진 않다. 하지만 작품으로 돈을 벌고 있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고, 그 나이 되도록 부모님께 생활비를 타서 쓴다. 사실 프랑스 유학 후 한국으로 돌아와 부모님이 마련 해 주신 일산 시내에 어엿한 아파트 한 채가 있었으나 벌이가 없어 야금야금 까먹다가 원래 작업실로만 사용했던, 역시 부모에게 넘겨받은 창고 건물로 이주해온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벌이라곤 3개월짜리 시간강사의 월급 밖엔 없는 실정이다.
아내 또한 도예가라고 들었지만 예술 작업하는 것을 본 적은 없고 자그마한 화분들을 만들어 들꽃을 심어 돈벌이를 한다고 들었다. 하지만 그 역시 여의치 않아 보인다. 그리곤 그들의 수입은 내가 내는 관리비가 고작이다. 그의 아내는 사람들을 불러 요리를 대접하는 것을 좋아하고 요리에 대해 칭송받는 것이 목적이다. 사람들은 그것을 알고 항상 요리 칭찬에 정신이 없다. 거의 매일 밤 술자리가 되는 그런 생활에도 도예가 부부는 다음날 아침이면 멀리 일산 시내로 운동을 열심히 다닌다. 그 나이에도 육체는 튼튼해 보인다. 나는 솔직히 그 사람들이 조금 별로다. 그 도예가 부부들은 허세가 몸에 붙어서 나와는 좀 성격에 맞지 않는다. 가끔 초대받아 식사 자리에 가면 음식 또한 맞지 않아 차라리 내 집에 가서 라면이 먹고 싶을 정도이다. 음식을 잘하는 것은 인정하지만 절대 내 스타일은 아니다. 그리고. 그들의 하나뿐인 대학생 딸은 집에 올 때마다 나를 겁나 무시한다.
“묘한아! 이번 주말에 네 또래 학생들이 오는데 와서 같이 밥 먹을래?”
“대학생들 이잖아요!”
“뭐 어때~ 남자 애들도 한 세 명 정도 올 거 같은데 와서 밥 먹고, 싫으면 그냥 가면 되잖아~”
그는 나에게 또래 남자로 나를 유혹하지만 사실 그들에겐 나는 파티의 이벤트로 훌륭한 게스트다.
내가 사람들에게 많이 듣는 얘기론 영화 “레옹”의 ‘마틸다’를 닮았다는 말은 귀에 딱지가 박힐 정도고, 양쪽 귀의 많은 피어싱과 보이는 문신과 보이지 않은 문신들은 한국에선 누구나 관심이 있고 재미있어하는 가십거리이기 때문이다.
“토요일 선약이 있는데 일찍 들어오면 갈게요! 하지만 참석인에 저를 포함시키진 마세요. 못 갈 수도 있으니까요.
저 올라갈게요.”
“그래 알았어. 올라가 봐.”
나는 창고 문을 열고 창고로 들어서면서.
“표야~~ㅇ~아~.”
고양이 소리처럼 표양 이를 불러 본다. 어디선가에서 이내 날렵한 고양이 한 마리가 내게로 와서 내가 손을 뻗자 품으로 들어온다.
“잘 있었쩌? 어디 밥 많이 먹었나 보자.”
나는 표양을 안은 체 화장실 입구 옆, 지금은 저녁이라 어둡지만 낮에는 햇볕이 잘 드는 창문 아래에 표양이의 보금자리를 마련해 줬다. 이 창고는 고양이가 살기엔 너무 좋은 환경이다. 창고에 쌓아둔 짐들은 잘 포장이 돼있어 고양이가 이리저리 뛰어 놀기엔 안성맞춤이다. 가끔 표양이가 안 보이면 도저히 찾기 힘들 정도다. 나는 표양을 내려놓고 사료 봉지에서 사료를 꺼내 밥통에 채워주고 화장실에 가서 물도 채워서 밥통 옆에 가지런히 놓아준다. 그리고 거름망으로 표양이의 화장실도 비워주고, 나도 화장실에 온 김에 소변을 본다. 샤워 부스가 함께 있는 화장실은 창고 1층의 입구 반대편에 있기 때문에 내 거처에서 거리가 꽤 된다. 그래서 근처에 온 김에 볼일을 본 것이다.
나는 다시 표양을 안고 2층 거처로 올라간다. 거실에 들어오자 표양을 내려놓고 바로 무쇠 난로의 밑구멍을 열어 불쏘시개를 넣고 신문을 여러 장 찢어서 그 위에 다시 넣는다. 철사가 길게 매달려 있는 난로의 둥그런 윗 뚜껑을 열고, 2층으로 올라오는 입구, 비닐막 옆 구석에 있는 큰 양철통에 수북이 담겨 저 있는 조계탄을 작은 양철통에 옮겨 담아 난로 뚜껑으로 부어 넣는다. 뚜껑을 닫고 선반에 있는 토치를 가져와 불쏘시개에 불을 붙이고 공기구멍을 활짝 열고, 여기저기 눌어붙은 험악한 손 선풍기를 제일 세게 해서 바람구멍에 한참을 대고 있다. 잠시 후 난로 속을 볼 수 있게 한 조그만 투명 유리판에 불길이 솟는 것이 보인다. 손선풍기를 끄고, 싱크 테이블 밑에서 큰 주전자를 꺼내 물을 채우고 난로 위에 올려놓는다. 그리고 방으로 향하면서 주머니에 휴지로 잘 쌓아둔 말갈기 한 가닥을 꺼내 4단 선반 위에 긴털들이 한 움큼 있는 뭉치에 더해서 다시 묶는다. 휴지는 선반 옆의 쓰레기통에 버리고 방으로 들어와 운동복으로 갈아 입고 그 위에 조금 커 보이는 깔깔이(군인들이 즐겨 입는 방한복)를 입으며 다시 거실로 나온다. 책상 위에 있는 나무 재질로 된 스피커를 켜고 휴대폰으로 음악을 튼다. 서서히 거실이 훈훈해지고 표양이는 벌써 난로 옆에 앞다리를 꼬고 길게 누워서 꼬리를 까딱거리고 있다.
나는 싱크 테이블 끝에 있는 미니 냉장고 냉동칸에서 조그만 플라스틱 통에 얼려 놓은 밥을 꺼내 전자렌즈에 돌린다. 냉장칸에서 며칠 전 쉬어 터진 김치를 참기름과 함께 볶아서 넣어 두었던 유리 통과 계란 하나를 꺼내고 후라 펜에 계란을 터뜨려 프라이를 한다. 프라이된 계란을 밥 위에 얹고 볶은 김치, 김, 마늘 줄기 장아찌와 국을 대신해서 자주 먹는 오차즈케 차로 식사를 한다. 조용히 음악을 들으며 천천히 식사를 한다. 난로 뒤에서 꼬리만 보이는 표양이의 살랑이는 꼬리를 보면서… 식사를 마친 나는 그 사이 따뜻해진 난로 위의 주전자 물을 머그잔에 따라 마시며 책상 위의 노트북을 열며 나무의자에 앉는다. 이메일을 확인하고 자주 방문하는 타투 블로그에 들어가 스크롤하며 구경하고 있는데 휴대폰 음악이 끊기고 휴대폰이 진동한다.
“아빠!”
전화를 받고 바로 벽에 서있는 괘종시계를 본다. 7시 35분을 가리키고 있다.
“식사했어요? 난, 방금…
아빠도 잘 챙겨 드세요.
좀 시끄럽네! 아~ 회식,
와! 그 큰 배를 벌써 다 만들었어!
제광이 아저씨 엄청 좋아하시겠다.
네, 좋은 거 많이 드세요. 술은 너무 많이 마시지 마~.
엄마 제사 때 올 수 있을지 아직 몰라요?
으~응 안되면 납골당에 내가 가 볼게, 적정하지 마~. 아직 멀었으니까. 그때 또 상황 보지 뭐~.
이제 날씨가 점점 더 추워지는데 힘들지 안아?
난 난로 때면 따뜻해 ~.
응, 알았어요. 으~응.”
아빠의 주변이 회식자리라서 어수선해서 다른 때 보다 전화를 일찍 끊었다. 나는 전화를 끊고 문득 무슨 생각이 나서 컴퓨터의 달력을 열어 1월 달력을 본다. 1월 8일 칸에 빨간 표식이 있고 칸 밑에 “엄마 제사”라고 적혀 있었다. 컴퓨터 화면의 커서가 사진첩 파일로 향하고 엄마, 아빠와 같이 찍었던 옛 사진을 본다. 겨우 두세 장의 사진을 보고 난 이내 사진 파일을 받아버린다. 그리곤 인터넷 창을 열어 코미디 프로를 검색하여 볼륨을 높인다. 책상 바로 오른쪽 가까운 곳에 또 하나의 미니 냉장고가 있지만 팔이 닿질 안아 의자에서 일어나야만 한다. 냉장고를 열어 막걸리와 사이다를 꺼내 식탁에 놓고 노트북을 식탁으로 가져와 TV를 보면서 머그잔에 사이다와 섞은 막걸리를 따라 마신다. 난로 위 주전자 물이 힘차게 끓으면서 수증기가 천장까지 올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