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은 타투.
“손님. 손님께서 아까 봉숭아 물들인 것처럼 이색으로 해 달라고 하셨잖아요.”
어릴 적 아빠가 명절이면 입으셨던 한복 마고자에 달린 호박색의 단추 색과 똑같은 색의 매니큐어 솔을 들고 수지가 손님과 시비가 붙었다. 손님이 요구했던 네일 컬러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이제 와서 딴 소리를 하는 것이다.
“하~! 언니 그럼 제가 지금 딴소리를 한다는 얘기예요!”
손님이 당황한 표정으로 수지에게 도리어 화를 낸다.
수지가 매니큐어를 들어 보이면서.
“네~. 제가 아까 이 컬러 샘플까지 보여 드려서 오케이 하셨잖아요.”
자은 언니가 손님이 교체되는 사이 배가 고파 내실로 들어가 요기를 하고 나오면서 수지의 실랑이를 보고 얼른 다가와서 수지 앞으로 수지를 가로막고 손님을 진정시킨다.
“손님! 제가 지금 다음 손님께서 예약을 취소하셔서 마침 비는데 제가 다시 해 드릴게요.”
수지에게 고개를 돌려 인상을 찡그리고 억지 윙크를 두 번 하고 수지를 진정시킨다.
“야~. 이 손님 서비스차지는 내가 받는다. 손님 이쪽으로 오세요.”
손님을 진정시키기 위해 너스레를 떤다. 수지도 상황이 더 악화되는 것이 싫어서 뒤로 물러선다.
수지는 자기 자리를 정리하고 내실로 들어간다. 행거에 걸려있는 외투를 걸치고 휴대폰을 꺼내 들어 문자를 한다.
“자은 언니 고마워 ㅠㅠ. 전 퇴근할 테니 그 손님 차지는 진짜로 언니가 받아요 ^^ 화요일에 봐요 ㅎㅎㅎ”
수지가 샵을 나서면서 무선 이어폰을 귀에 꽂고 휴대폰으로 음악을 검색한다. 5시 20분이면 한 낮인데도 거리에 사람이 많다. 거리엔 벌써부터 캐럴이 흘러나오고 화장품 가게들은 크리스마스 장식을 한지 오래다. 수지는 음악에 열중하며 땅만 보고 걷는다. 땅바닥엔 가릴곳만 겨우 가린 야한 포즈의 여자들 사진이 크고 빨간 전화번호가 함께 적힌 전단지가 여기저기 널려 저 있다. 대로변에 다다르자 음식을 파는 리어카에서 맛있는 냄새가 요즘 다이어트를 위해 굶고 있는 수지의 식욕을 유혹한다. 수지는 큰길로 나와 횡단보도의 초록불을 기다리며 아주 작은 움직임으로 오디션에서 선보일 춤의 리듬을 맞춘다. 초록불이 켜지고 8차선 도로의 중앙 정류장에서 일산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린다. 수지가 고개를 들어 버스 배차 시간을 알리는 전광판에 “대화 3분”이라는 것을 확인을 한다. 귀에 들리는 음악에서 중요한 부분이었는지 수지의 몸동작이 커지고 코트까지 너풀거리면서 춤을 크게 춘다. 그때 옆에 서있던 남자들이 지들끼리 키득거리면서 수지에게 시비를 건다.
“오우! 씨발, 존나 미친년! 쪽 팔리지도 안은 가봐~”
남자들 중 한 명이 말을 내뱉으며 일행에게 동의를 구하듯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쭉 빼서 까딱 거리며 웃는다.
수지가 그 소리를 들었다. 귀에서 이어폰을 빼고 남자들에게 한 발작 다가가.
“뭐? 이 씨발아~ 신경 꺼~ 개새 꺄.”
수지가 강하게 나오자 남자들이 움질 하여 지들끼리 낄낄거리며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한다. 사실 수지가 키가 큰 데다가 오늘 입은 코트가 수지의 덩치가 크게 보여 여느 남자도 함부로 하긴 힘든 비주얼이었다. 수지는 다시 이어폰을 꽂고 도착한 일산행 버스에 올라탄다.
규모가 꽤 큰 프랜차이즈 카페에 더 이상 구석이라 할 수 없을 정도의 외진 자리 테이블에 수지와 묘한이 앉아있다. 수지는 아까부터 묘한에게 열변을 토한다. 가게에서 황당한 손님을 받았던 얘기, 길거리에서 지질한 남자들에게 이유 없이 욕을 들었던 얘기를 시시콜콜 나에게 일러바치듯 얘기한다.
“아~ 오늘 되는 게 없는 날이야!”
이렇게 장황한 모든 이야기가 다 끝나고, 그동안 수지의 이야기에 계속 맞장구를 쳐주던 묘한은 수지에게 속삭였다.
“수지야! 우리 타투하러 가자!”
수지가 짜증을 내며
“아~이 씨. 그럼 다시 홍대 앞으로 가자는 얘기네~”
수지는 홍대 앞에서 나를 만나러 방금 일산으로 왔는데, 만나자마자 나의 단골 타투샵이 있는 홍대 앞을 다시 가자니 짜증이 난 것이다. 그런 수지를 묘한이 더 약 올렸다.
“네가 그랬잖아. 너 오늘 되는 게 없는 날이라고…”
수지가 눈을 흘기며 나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난다.
“나쁜 계집애. 그럼 지가 홍대 앞으로 오지.”
“수지야. 오늘은 너도 같이하자.”
“안돼~ 안 하는 거 알잖아~”
수지는 댄서로서의 확실한 꿈이 있었기 때문에 문신은 하지 않겠다는 자신만의 약속 있었다. 댄서가 문신이 있으면 같이 작업할 가수들에게 누가 될 수도 있고, 프로 댄서가 되더라도 춤 동작 표현에 문신은 감상자에게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지는 존경하는 우크라이나 발레리노 ‘세르게이 폴루닌(Sergei Polunin)’의 행동거지에는 동의할 수 없었다.
“수지야 이건 안 보이는 타투야. 검지와 중지 사이의 중지, 아니면 중지와 약지 사이의 약지 속살에 흰색으로 하는 거야. 그러면 상대방에겐 보이지 않고, 또 네가 일부러 검지를 내리거나 중지를 내리지 않는 한, 보이지 안아. 그리고 흰색이라 타투 자체도 잘 보이지도 안아. 나는 타투가 주로 왼쪽에 많아서 늘 밸런스가 안 맞는다고 생각했거든. 그래서 어제 생각해 낸 거야~ 이건 너와 내가 같이 할 수 있는 유일한 타투이라고…”
묘한은 왼손 프레임 타투엔 이미 검지를 내린 오른손을 그려 놓았다. 그 칸 안의 그림에서 검지가 까딱까딱거린다.
흥분한 묘한을 바라보며 수지가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보이지 않은 타투를 한다고?…”
그 말에 묘한은 무척 자존심이 상했다. 사람들이 자신의 타투나 피어싱을 보고 신기 해 하거나, 놀리거나, 욕을 해도 항상 당당한 나였는데 묘한은 수지의 그 말에 시무룩하게 고개를 떨구었다.
“난 너랑 한 가지는 같이 타투하고 싶은 생각을 늘 했었어.”
수지는 자신의 말에 기죽어하는 묘한의 모습에 당황한다.
“그래 가자. 너 하는 거 보고 괜찮으면 나도 할게. 안 해도 뭐라고 하지 마.”
둘이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길에 어느 상가에서 또 캐럴이 흘러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