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의 흔한 그림들 3.

회전목마

by 지방

내가 프랑스 파리에 살았을 때 에펠탑의 야간 조명 쇼를 보기 위해 한 여름밤에 몇 번 간 적이 있다. 저녁을 먹고 나른해진 몸은 밖으로 다시 나가기엔 너무 귀찮은 일이다. 내 백팩에 밤 추위를 대비해서 덮을 간단한 담요와 포도주 한 병 그리고 까망베르 치즈 한 통을 넣어 집을 나선다. 아파트 현관문을 나서자마자 길바닥에 펼쳐진 저녁 산책길에 애완견들이 싸질러 놓은 똥들을 피해 지하철 역으로 간다. 이미 역 주변에는 취객들이 한 두 명씩 보이고 그중에 반드시 동양인인 우리를 보고 시비를 걸 찌질이들이 있을 것을 대비하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포기하고 빠른 걸음으로 계단으로 향한다. 지하철을 타면 내부는 한적하다.


에펠탑에 도착하면 번잡한 관광객들을 피해 에펠탑 후미 잔디밭에 앉아 자리를 잡는다. 이미 해는 넘어가서 파란빛이 하늘 깊이 스며들었다. 흥분한 관광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소리 지르며, 벌써 취한 젊은 남녀는 남의눈을 의식하지 않고 잔디 위에서 애로 영화를 찍는다. 하늘이 잿빛으로 변하기 전, 에펠탑의 조명 쇼가 시작을 알린다. 탑의 반짝이 불들이 잠시 들어와 쇼 시작의 신호를 잠시 보내고 몇 분 뒤에 화려한 조명이 깜박이기 시작한다. 관광객들은 환호성을 지르고 우리는 포도주 한 병을 고소하고 짭조름한 치즈와 함께 순식간에 비운다. 쇼가 끝나면 자리에서 바로 일어나 집으로 귀가한다. 여름밤이라도 날씨가 차갑기 때문이기도 하고, 빨리 움직여야 지하철에서 앉아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귀갓길은 에펠탑 밑을 통과하여 센 강을 건너 기다란 분수대를 올라 건물 위로 올라가면 지하철 입구가 있다. 그런데 센강 다리를 지나다 보면 에펠탑과 마주하고 있는 항상 같은 자리에서 왠지 애처롭게 느껴지는 음악소리를 내며 하염없이 돌아가는 회전목마가 추억팔이를 하고 있다. 그것은 오래전부터 에펠탑과 세트인 것 같다.


에펠탑과는 다르게 타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 회전목마 운영자가 걱정이 될 정도다. 나도 회전목마를 몇 번 타 본 적이 있다. 에버랜드 자유 이용권을 사면 모든 놀이 기구를 탈 수 있기에 타 보았고, 아주 어려서도 동네에 수레에 끌고 다니는 허접한 회전목마도 타 본 것 같다.


사람들은 왜 회전목마에 자신들의 과거를 결부시켜 추억을 사려는 걸까? 말에 올라타,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 재미가 있었던가? 아니면 함께 탔던 과거의 사람들을 떠 올리며 잠시나마 추억하려는 걸까? 회전목마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때문에… 그것도 아니면 한 바퀴를 돌아 제자리로 올 때마다 만나 볼 수 있는, 나를 바라 봐주는 아빠 혹은 엄마 아니면 연인. 회전목마가 몇 번을 도는지 모르지만 목마에 올라타 앞에 나타난 나만 바라봐주는 사람을 맞이하고, 옆으로 지나치며 눈을 마주치고 서로 손을 흔들어 주며, 마주친 눈빛을 최대한 오래 간직하려 고개를 뒤로 돌려 다른 말들에 가려 안 보일 때까지 바라보는 행위. 그리고 이내 다시 고개를 돌려 그 혹은 그녀가 앞에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바로 그것이 그리운 걸까?


혜수 작가의 회전목마엔 목마가 없다. 색이 단조롭지만 강렬하다. 회전목마라고 하기엔 목마가 없어서 그렇지만 그 회전판은 시계방향으로 도는 걸까? 아니면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고 있는 걸까? 그림 속의 회전판이 돌고 있는 것 같기는 하다. 시계 방향으로 돈다면 나의 시선에선 좀 더 안정적 일 수 있겠다. 하지만 나만의 안전감일까? 시계 방향으로 돈다면 한 명 만이 돌아가는 방향이 앞으로 맞이하고, 네 명은 뒤로 다가오는 것들을 맞이 한다. 시계 방향으로 도는 것이 그들에겐 꽤 긴장감이 있겠다. 그들이 긴장한다면 나는 기분이 좋다. 재미도 있다.


반대로 회전판이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돈다면 그 자체가 벌써 나에게 익숙하지 않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회전판 위의 네 명은 보다 편안하게 춤을 출 수 있겠지. 그림에서 앞으로 동떨어져 불안 해하는 한 명을 나머지 네 명이 위로라도 해 줄까? 시계 방향으로 돌던 아니면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고 있든 간에 회전판 위에 있는 다섯 명의 사람들이 춤을 춘다. 무엇을 위해 춤추는지 모르겠지만 서로 춤의 합이 맞아 보인다. 그리고 꽃가루가 음악 대신 흥을 돋는다.

작가의 이전글우리 집의 흔한 그림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