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의 흔한 그림들 5.

안방 비너스

by 지방

지현 작가의 그동안의 작업들은 벌써 5년 전 한국에서 했던 작업들이 마지막이다. 지금 캐나다로 와서 미술대학 지망생들을 지도하면서 한동안 자신의 작업을 한 적이 없었다. 이번 어쩔 수 없는 장기간의 휴가에 미술학원의 휴업 상태라는 사실보다 마음껏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에 살짝 부푼 마음인 것 같다. 지현 작가는 작업실에 이런저런 캔버스를 사다 놓고 꽤 긴 시간을 허비했다. 오랫동안 붓을 들지 않은 상태라 막상 캔버스 앞에 서니 정작 어떤 주제로 그림을 그려야 할지 고심이 많은 것 같다. 그러다 그녀는 옛날 앨범을 뒤지기 시작했고 거기서 과거 가족들의 흑백사진들을 찾아냈다. 지현 작가는 여러 날을 그 흑백 사진들을 들여다보더니 드디어 붓을 들기 시작했다. 지현 작가가 캔버스에 스케치를 하고 물감을 바르기 시작했다. 그래도 나는 며칠 동안을 그 작업들을 지켜보았는데도 어떤 그림들을 그리는지 알 수 없었다. 사실 유화의 특성상 한 번에 그림을 완성할 수 없고 유화물감이 마르기를 기다리고, 덧칠하고 다시 마르기를 기다리는 작업들의 반복이어서 그림의 결과물이 섣불리 나오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화가들의 유화 작업은 여러 작품들을 동시에 진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시 여러 날이 지나자 몇몇 작품의 모습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중의 눈에 띄는 그림 하나가 “안방 비너스”이다. “안방 비너스”라는 제목은 지현 작가가 붙인 제목이 아니고 순전히 나의 느낌으로, 생각나는 데로 명명한 것이다. 아직 미완성 작품이기 때문에 그 작품이 완성되면 지현 작가가 온전한 제목을 붙이겠지.


나는 그 그림에서 매우 익숙한 어릴 적 안방의 모습을 찾았다. 옛날 안방은 가족들의 거실이자 아버지 어머니의 침실이었다. 온통 꽃으로 장식된 벽지가 사방면으로 있고, 뒤로 펼쳐진 아홉 자 자개농이(성산동 큰 집으로 이사 해선 열 두자 자개농이었다) 기본적으로 벽 하나를 차지했다. 맞은편에는 텔레비전이 엄중하게 자리 해 있다. 벽지보다 더 화려한 꽃문양으로 된 커튼이 펼쳐진 창문 밑에는 두꺼운 유리로 덮인 자개 문갑이 있고 그 위에는 카세트라디오와 갖은 장식품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아버지가 담배를 끊기 이전엔 안방에선 항상 담배 냄새가 낮고, 아버지가 담배를 끊으신 이후에는 항상 자개장 냄새가 났다. 안방에선 겨울에 유독 볕이 잘 들어 가족사진이 걸려있는 벽에 까지 창 모양의 볕이 직각으로 꺾여 올라갔다.


그런데 저 여인은 누구지? 어머니는 아니다. 누이도 아니다. “우르비노의 비너스”처럼 온전히 공간을 독차지하고 있다. 우르비노의 비너스처럼 요염하지는 않지만 장침에 기대어 비스듬히 누운 여자는 편안하다. 맞설지도 않다. 화려한 원피스를 봐서 집주인의 편한 옷차림은 아니다. 비어있는 목각 쟁반은 이미 풍성한 대접을 받았다는 뜻이다. 이 여인이 누구길래? 주변에 읽다만 책들이 이 여인은 여기에 계속 있을 것임을 뜻하는 것 같다.


“안방 비너스”라는 제목이 내 생각엔 딱 적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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