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가까운 거리에서 죽여라.
영화라 함은 1895년 프랑스, 파리의 한 카페에서 처음으로 상영한 뤼미에르 형제의 50초짜리 영화 ⟪열차의 도착(1895)⟫이 최초의 영화라고 한다. 여기서 “영화”는 관객들에게 돈을 받고 일정한 장소에서 영사기를 통
해 스크린에 상영이 된 일련의 절차까지 포함이 되어있는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한때 세계적인 영화제에서 NETFLIX 영화를 배제하느냐 포함해야 하느냐의 논쟁이 있었다) 관객들은 그동안 보아왔던 그림자 연극 같은 실루엣 영상과는 차원이 다른 실재와 같이 움직이는 열차가 카페의 방 안의 한쪽 벽에서 튀어나오는 광경에 환호했다. 하지만 그것에 익숙해진 관객들은 이내 영화적 장치보다, 빈약한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래서 영상 탐험가들은 필름을 잘라 길게 붙여보게 되었다. 그렇게 영화의 시간은 단어와 단어가 만나서 문장이 되고, 문장이 나열되어서 이야기되듯이 영화 시간에 이야기를 담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영화의 서사가 탄생이 되고 그 영화 서사에 첨부할 세련되고 재미있는 소재를 찾게 되었다. 마치 소설처럼. 이렇게 해서 재미를 위한 영화 서사에서 사람을 죽여야만 하는 소재가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그러한 현상들은 이미 초창기 영화에서부터 나타나기 시작한다. ⟪열차 강도(1903)⟫에서 총을 든 강도들은 총으로 역무원의 목숨을 위협하고 포박한다. 강도들은 마침내 열차 내에 잠입하여 금고를 턴다.
같은 해에 만들어진 ⟪미국 소방수의 생활(1903)⟫에서도 불이 난 건물에 갇혀 헤어나오지 못하고 목숨을 잃을뻔한 여성을 소방수들이 긴박하게 구출하는 장면이 교차 편집으로 보여지고 있다. 찰리 채플린은 예외적으로 평화주의적으로 영화를 만들었지만, 영화의 거장 히치콕 영화에서 모텔 샤워 부츠 안의 잔인한 살해 장면
⟪사이코(1960)⟫은 다들 기억할 것이다. 서부영화에서 말을 탄 기병대들이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죽이는 건 동물들을 사냥하는 것보다 예사로운 일이고, 세계대전 영화에서부터는 역사적 배경으로 삼는다지만 사람들을 대량으로 죽이기 시작한다. 사실 그 유명한 셰익스피어로 거슬러 올라가 보아도 ‘햄릿’이나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서사에도 어김없이 주요 인물을 죽여야만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렇게 영화 스토리텔링 안에서 죽음이란 소재는 재미를 위해 빠질 수 없는 필수 요소가 되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누가’ ‘누구를’ 죽이는가?
이것에 대한 질문에 대해선 물론 간단히 답을 하기 힘들다. 왜냐하면 이야기의 시대적 배경, 세계관, 캐릭터들의 특징에 따라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중 가장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악당을 죽이는 것이다. 특히 할리우드 영화에선 악당을 무찌르는 정의 인물 출현을 가장 많이 사용하고, 선호하는 스토리이다. 어쨌건 누구를 죽이느냐의 문제는 결국 나(주인공 캐릭터)와 관련이 있다. 나, 나의 배우자 또는 친구, 내 가족, 내가 속한 사회와 나라, 그보다 더 크게 자연 혹은 지구 등의 모든 피해 대상에 문제가 생기는 것을 말한다. 영화가 결말로 치닫게 될 즈음, 이야기 속에서 벌어지는 피해 대상들은 최초에 시작된 사건으로 생기게 된 난관들을 찾아내어 그 원인을 해결하려 한다. 그래서 ‘누구를 죽일 것인가’는 바로 그렇게 원인이 된 사건이 일어나게 된 이전으로 되돌리려는, 혹은 현 상황을 지키려는 것에 관련되어 있다. 여기에서 자연스럽게 나의 적 혹은 악당들을 ‘왜’ 죽여야 하는지 이유가 생성된다.
누구를 죽일 것인가의 ‘대상’ 또한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다. 그 유형들을 살펴보면 우선 사람이 있고, 영매(귀신), 좀비, 뱀파이어, 컴퓨터 프로그램 속의 상대와 같이 사람 모습을 한 사람처럼 생긴 대상이 보통 일방적이다. 그리고 그 외 동물, 외계인, 균(세균), 재해 등을 제거하는 것들이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 죽이려는 대상들을 ‘어떻게’ 죽일까?
이것 또한 이야기 맥락과 깊은 관련이 있는데 주로 상대와의 거리에 대한 것이다. 죽여야 하는 대상은 처음엔 멀리에 있다가 이야기의 클라이맥스를 향할수록 그 대상은 점점 가까이 다가온다. 이렇게 상대와의 거리는 이야기 맥락상 서로 가까운 것이 더 긴장감을 유발하는 필수적인 요소가 된다. 그래서 ‘죽임’에 항상 우선으로 사용하는 것이 원초적인 몸싸움이다. 몸싸움으로 죽이는 것은 대부분 육체적으로 우위에 있거나 운이 따라줘야 한다. 몸싸움은 거리도 가깝지만, 시간도 오래 걸리는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몸싸움은 대부분 클라이맥스에 위치하고, 거리로 살펴보자면 가장 가까이에서 서로 맞닥뜨리게 된다. 그런 이유로 매우 강한 긴장감을 유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영화에서 다른 많은 무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모두 소용이 없어지고 필연적으로 몸싸움으로 치닫는 경우가 많이 있는 것이다.
한번 사례를 찾아보자.
인디아나 존스 ⟪레이더스 (1981)⟫
이미 오래된 영화이긴 하지만 위 장면이 기억이 나서 사례를 들어본다. 인디아나 존슨 시리즈의 1편인 ⟪레이더스(1981)⟫에서 주인공의 추격신에서 추격을 방해하는 적의 일원이 나타난다. 그는 칼을 들고 주인공을 한껏 위협하여 마치 긴장감 넘치는 칼싸움이 벌어질 것 같은 상황이 연출된다. 하지만 주인공은 그와 대결 할 의지가 없이 쉽게 총을 꺼내어 허무하다 싶을 정도로 그를 제거한다.
이 장면은 상황이 코믹스럽게 묘사되어 재미 요소가 있었지만 여기서 적은 주요한 적이 아니었다. 만약 상대의 남자가 주요 적이라면 주인공에겐 총이 없거나, 대결 장면에서 총을 놓쳤을 것이고 결국 칼과 칼 또는 칼과 맨손 싸움에 응할 것이고 끝내 몸싸움으로 상대를 제압 했을 것이다.
스타워즈 시리즈 (1977~2019)
스타워즈 9편을 모두 보진 못했지만 큰 줄거리는 최첨단 무기로 장착한 서로의 대결 구도에서 우주를 배경으로 서로의 이권을 쫓는 스토리라인이다. 영화에서 우주 전쟁이 일어나면 서로 싸우는 우주선들이 분주하게 작전을 펼치며 싸운다. 하지만 이 전쟁에서 벌어지는 전투 과정이 아무리 치열하다 하더라도 주인공들과 적들은 각자의 우주선 안에 있다는 설정을 클로즈업으로 보여 줄 뿐이다. 그래서 상대의 우주선이 폭발한다고 해도 긴장감이 생기거나, 적을 제거했다는 안도감이 크게 생기지 않는 이유이다. 그래서 주인공과 주적은 결국 광선검을 사용하여 제한된 공간에서 재대결을 벌이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으로 한국의 우주 전쟁 영화 ⟪승리호(2021)⟫를 살펴보자. 영화 클라이맥스에서 보면 우주 공간에서 적과의 치열한 대결에서 밀리자 갑자기 로봇인 “업둥이”가 승리호 밖으로 나와 상대 우주선을 창으로 제압한다. 이것 역시 우주선의 무기들이 있지만, 상대를 제압하는 최종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하고, 클라이맥스를 위해 거리를 최대한 가까이 두어 직접 상대에게 다가가 창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에너미 앳 더 게이트 ⟪Enemy at the Gates (2001)⟫
저격수 영화의 진수인 ⟪에너미 앳 더 게이트(2001)⟫에선 먼 거리에 숨어서 적을 사살하는 저격수의 임무를 그린 영화이다. 하지만 상대가 서로 먼 거리에서 위장하여 목표를 제거하는 저격수의 임무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결말에서 상대와 몇십 미터 앞에 서로 마주 보고 선 채로 독일군 장교 코니그’를 주인공인 소련군 ‘바실리’가 장총으로 쏴서 죽이면서 결말을 맺는다.
이렇게 영화에서 누군가를 죽일 때는 사람이거나 사람 모습을 한 대상들이 대부분이다. 대부분 죽여도 될 사람들은 나쁜 놈 이어야 하고, 사람 모습을 한 인격이 없는 대상이면 더 많이 죽일 수 있어서 좋다. 그래서 영화를 위해 탄생한 여러 대상이 있는데 근래 대표적인 것이 좀비이다. 좀비에 대한 얘기는 뒤에서 자세히 다뤄보겠다. 죽여야 할 대상 외에 대상을 죽이기 위한 장소는 제한적일수록 좋고, 대상과 가장 가깝게 대결하는 몸싸움이 재미 요소를 주기 위해 가장 적합하다.
- 이쯤에서 꼭 짚고 넘어가지만, 영화에서 “죽음의 소재”를 사용하지 않고도 재미있고 훌륭한 영화들이 많이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여기선 “죽여도 괜찮아”라는 제목으로 이어나가는 내용이기 때문에 어쩌면 일부 한정적이지만 영화 스토리 상 대결 구도로 긴장감과 재미를 요구하는 영화들을 대상으로 삼는다. 어찌 되었든 영화 서사에서 “죽음의 소재”는 이미 많은 부분에서 다양하게 사용하고 있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그저 이글은 그런 영화들에 한하여 영화의 현상을 말하고자 하는 것임을 밝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