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드랑이 새앙쥐 - 3

서커스

by 지방

작은 사무실에서 긴 소파에 앉아 있는 노인 앞에서 지호가 하얀 민소매 속옷 차림으로 오른팔을 돌리고 있다. 겨드랑이에서 생쥐가 한두 마리가 나와 밑으로 떨어진다.

노인은 지호를 잠시 멈추게 한다.


“잠깐, 잠깐만.

학생. 참 재미있네. 하지만 우리하곤 컨셉이 맞지 않는 것 같아. 우리 서커스단은 기술로 보여주지, 특별한 능력으로 공연하는 곳은 아니거든. 학생이 굳이 원한다면 다른 방법을 알려줄게. 각 지방을 돌아다니며 소규모로 행사하는 팀들이 있는데 그런 델 한 번 가봐. 그런 데는 아마 학생을 받아 주지 않을까 싶네.”

지호가 동춘 서커스라고 적혀있는 간판 아래로 붉은 장막을 걷고 나온다.


지호는 그 이후로 동춘 서커스 단장 말대로 지방 축제 행사를 찾아다녔다. 지호가 행사장을 찾아다닌 지 얼마 되지 않아 쉽게 행사에 관련된 공연팀을 만날 수 있었다. 그 팀은 지방을 다니면서 지역행사에서 공연하는 소수의 인원으로 장비를 실은 트럭 한 대와 공연자들이 타는 승합차 한 대로 이동하고 있었다.

해가 너머가 어둑해질 저녁 무렵, 지호와 단장 단둘이 승합차 안에 마주 보고 앉아 있다. 차창 너머로 지호가 팔을 돌리는 모습이 보이고, 단장이 좋아서 차량이 들썩일 정도로 격하게 손뼉을 친다. 차 문이 열리고 단장이 빠른 걸음으로 단원들에게 달려 간다. 지호가 그 뒤를 따르고 잠시 뒤, 열린 승합차 문에서 몇 마리의 생쥐들이 차에서 내려와 사방으로 흩어진다.


지호가 속하게 된 행사팀의 이름은 “장수행사팀”이다. 암컷 강아지가 치마를 입고 재주부리는 “강아지 묘기 무대”와 발등에 놋그릇을 놓고 그릇에 손대지 않고 발로 올려서 머리로 받는 재주를 담당하는 정연 누나가 있다. 광대 옷을 입고 외발자전거를 타는 덕룡 아저씨가 저글링과 마술 공연도 한다. 그리고 단장은 덕룡아저씨와 외발자전거를 같이 타고, 우스꽝스러운 양복과 분홍색 가발을 쓰고 사회를 본다.


오늘은 충청남도 청양에서 열리는 고추 축제. 여름이 지나 더위는 가셨다. 해가 떨어지기도 전 밝은 대낮부터 축제가 열린다. 청양고추 축제 행사는 규모가 꽤 큰 편이라서 피날레로 유명한 가수들도 여럿 출연한다.

분위를 북돋기 위해 먼저 각설이들이 엿장수 가위로 흥을 내며 바람을 잡고 사람들을 모은다. 각설이들의 만담이 끝나고 이제 우리 차례. 귀여운 강아지들의 묘기로 사람들의 관심을 사고, 광대들의 외발자전거가 등장한다. 광대들은 서로 부딪혀 휘청거리며 사람들의 웃음을 유도한다. 그리고 덕룡아저씨가 저글링을 하고 마술로 이어간다. 다음은 다시 정연 누나, 누나는 발등에 그릇을 올려놓고 한 발로 중심을 잡는다. 발등에 올려진 그릇에 집중하는 모습에 긴장감이 돈다. 드디어 발을 차 놋그릇을 머리 위로받는다. 그렇게 다섯 개의 놋그릇을 차례로 머리 위에 얹는 묘기를 보인다.


자. 드디어 지호의 차례. 단장이 나와 지호를 소개한다. 지호가 앞으로 나선다. 민소매의 딱 달라붙는 상의는 혹여나 생쥐들이 옷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대비한 것이었다. 단장은 처음으로 소개하는 지호의 묘기에 흥분한 목소리 톤이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광경을 오늘 여러분께 보여드리겠습니다. 앞으로 보여드릴 묘기가 과연 눈속임일지 아니면 찐일지 잘 살펴보십시오. 자~ 준비되셨으면 박수로 환영해 주십시오. 박수 소리가 여기저기서 시원치 않게 들리는 것을 보아 별 호응이 없어 보인다.”

“자~ 그러면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한 마리~~~”

지호가 오른팔을 돌린다. 그러자 지호의 겨드랑이에서 한 마리의 쥐가 떨어진다.

“두 마리~” 단장이 마이크에 소리를 지르고 지호는 오른팔을 두 바퀴 돌린다. 돌릴 때마다 생쥐가 한 마리씩 떨어진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면서 호기심을 갖기 시작했고, 이에 단장은 신이 나서. “세 마리~”

지호는 팔을 세 번 휘돌린다. “자~ 다시 한 마리~” 지호가 다시 팔을 한 번 더 돌리자, 관객 앞쪽에 앉은 여성이 괴성을 지른다. 쥐들이 관객 쪽으로 뛰어 들어간 것이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쥐에 놀란 여자들이 소리를 지르고 앞쪽에 앉았던 관객석의 사람이 흩어진다. 대부분 사람이 행사장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점차 앞줄뿐만 아니라 그 상황을 지켜본 뒷줄까지 자리에서 일어나 성급히 행사장을 빠져나간다.

신이 났던 단장의 얼굴은 갑자기 잿빛으로 바뀌고, 뒤에 서 있던 지호를 바라본다.

지호는 얼굴을 들지 못하고 어깨를 최대한 움츠린 채 겁에 질려 벌벌 떨며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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