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생
지호의 방, 지호는 책상 앞 의자에 한껏 뒤로 기대어 앉아 한쪽 다리를 심하게 떨고 있다. 오늘 학교에서 있었던 반장 선거 때의 끔찍했던 해프닝이 자꾸 생각나서 몹시 화가 나고 분노에 찬 상태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생쥐가 지호의 겨드랑이에서 나온 것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이다.
“지호야. 밥 먹어.”
지호의 엄마가 거실에서 소리친다. 지호는 그 소리가 더 거슬려 짜증을 내며 머리카락이 찰랑일 정도로 다리를 더 크게 흔들어 댄다. 지호는 앞으로도 이런 일들이 계속 일어날 수 있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지호는 자신의 신체적 비밀을… 아니, 자신의 겨드랑이에서 쥐가 나오는 것을 막던가, 아니면 그 쥐들이 더 이상 나오지 못하게 모두 뽑아내 소멸시켜 버려야겠다고 생각한다.
며칠 후, 지호는 엄마와 함께 TV 드라마를 보다가 수영장에서 아주머니들이 줄지어 수영하며 레슨을 받는 장면을 보게 된다. 그때 지호는 내가 저렇게 수영하면 오른팔을 휘저을 때마다 겨드랑이에서 계속 생쥐들이 나오겠구나 하고 자신에 빗대 생각한다.
바로 그때 지호의 머리로 섬광과 같은 생각이 떠오른다.
“어! 바로 그거야.”
지호는 수영을 해서 겨드랑이에서 쥐들을 모두 뽑아내야겠다고 생각한다.
- 아무도 없는 먼바다로 나가 수영을 해서 쥐들을 물에 빠뜨리자. 그러면 보는 사람도 없고 얼마든지 많은 쥐를 바닷물에 빠트려 없앨 수 있을 거야. 더 이상 내 몸에서 쥐가 나오지 않을 때까지. -
마침 다음 날이 주말이라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된다. 날씨는 아직 쌀쌀했지만, 굳은 결의 갖고 동해로 가기로 결심했다. 지호는 도리어 쌀쌀한 바다여서 바닷가에 사람이 없을 거로 예상한다.
지호는 가장 저렴한 구명조끼와 물안경을 장만한다. 왜냐하면 이후에 다시는 사용할 것 같지 않아서이다.
동해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탔다. 동해로 가는 버스 안에서 지호는 귀에 이어폰을 꽂고 경쾌한 음악을 들으며 이제 오른팔을 번쩍 들어도 더 이상 자신의 겨드랑이에서 생쥐들이 나오지 않을 상상을 하며, 남들처럼 다양한 정상적인 미래의 날들을 상상한다.
며칠 전 반장 선거가 있던 날로 되돌아가, 지호의 오른쪽 겨드랑이에서 쥐가 나올 염려 없이 오른팔을 자신 있게 번쩍 드는 모습을 보고 선생님께서 흐뭇해하시는 모습을 떠올린다.
그리고 친구들과 어울려 농구도 하고, 사람들이 많은 수영장에서 수영하는 상상도 해 본다.
바닷가 가까운 곳에서 지호가 버스에서 하차한다. 날씨는 아직 추운 감이 있지만 수영복으로 갈아입기 위해 근처 탈의실로 향한다. 탈의실에서 나온 지호는 오렌지색과 파란색 그리고 하얀색으로 장식된 반바지형 수영복 위에 구명조끼를 입고 물안경을 착용하고 바닷가로 향한다. 주말이라 사람들이 많았는데 지호를 바라보고 수군덕거리는 사람이 여기저기서 보였다. 아직 긴소매 옷을 입어야 할 날씨에 바다에서 수영하는 것은 기이한 일이기 때문이다.
지호는 창피함을 물안경으로 가리고 파도가 부서지는 바닷가에 선다. 손바닥에 바닷물의 온도를 체크해 본다. 차가웠지만 할 수 없다. 지호는 상체에 바닷물을 조금 묻히고 바다로 몸을 던진다.
깊은 곳까지 도달할 때까지 지호는 팔을 젓지 않고 발로 물장구만 쳐서 한참을 수영해 간다. 아직 사람들이 가까이에 있어 오른팔을 들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의외로 바람은 잦아 물결은 잔잔했다. 한참을 수영하던 지호가 판단하기에 바닷가에서 멀어져 잘 보이지 않겠다 싶을 즈음에 고개를 뭍으로 돌려 자신이 온 거리를 확인했다. 지호는 굳은 결심을 하고 다시 뒤돌아 더 먼바다로 서서히 팔을 저어 자유형으로 수영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오른팔을 들어 머리 앞으로 뻗자, 생쥐가 겨드랑이에서 한 마리씩 나오기 시작했다. 왼팔을 올릴 땐 아무런 일이 벌어지지 않고 오른팔을 들어 올릴 때마다 생쥐가 한 마리씩 나온다. 물에서 허우적거리는 생쥐가 찍찍 소리를 냈지만. 수영하는 지호는 귀에 바닷물이 부딪히는 소리가 더 커서 쥐가 내는 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열심히 수영하는 지호의 오른쪽으로 일정한 간격으로 생쥐들이 빠져 죽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모습으로 줄을 지어 바닷물 위에 떠 있다. 그 생쥐들은 같은 간격으로 계속 나열되어 있다가 지호에게 멀어진 생쥐들은 하나둘씩 바다 수면 밑으로 빠져 자취를 일어 간다.
그렇게 한참을 헐떡거리며 수영하던 지호가 우연히 자신이 수영해오던 방향으로 수영하게 되었다. 오른팔을 힘주어 내미는 것에 너무 의식해서 왼쪽으로 크게 돌아, 왔던 곳으로 되돌아와 버린 것이다. 그러자 지호의 눈앞에서 물 위에서 빠져 죽지 않으려 허우적대는 생쥐들의 모습을 보게 된다.
지호는 잠시 수영을 멈추고 자신이 수영해 온 바다 위를 바라본다. 일정한 간격으로 떠 있던 생쥐들이 멀리서부터 한 마리씩 사라지는 것을 바라본다.
지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 물안경 속으로 고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