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실내화

단추 달린 빨간 실내화

by 지방

내 나이보다 오래된 타운하우스에서 살다 신축 고층 콘도로 이사 왔다. 그리고 곧 겨울이 됐다.

아무래도 타운하우스에서의 겨울은 오래된 창호와 벽난로에서의 외풍 때문인지 집안에서 두꺼운 옷과 방한이 잘되는 실내화를 신어야만 했다. 콘도로 이사를 오고 나선 추운 겨울에도 집안에서 두꺼운 옷을 입을 필요가 없어졌는데 실내화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바닥 난방이 안 되어 한국처럼 맨발로 다닐 순 없으니 몇 년간 찾지 않았던 실내용 슬리퍼를 찾아야만 했다. 어렵사리 찾은 슬리퍼가 두 짝뿐이었는데 둘 다 빨간색이다. 아내와 나는 한동안 그 빨간 실내화를 신고 생활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의 것을 구분할 수가 없었다. 내 것이니 네 것이니 실랑이하기 일쑤였다.

어느 날 퇴근을 하고 집에 와 보니 현관 앞에 빨간 실내화에 단추가 달려 있었다. 내 책상 밑에 그대로 있는 단추가 달리지 않은 빨간 실내화가 보였다. 아내가 자신의 실내화에만 단추를 달아 서로의 것을 구분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현관 앞에 있던 단추 달린 빨간 실내화의 의미는 아내가 외출하고 집안에 없다는 것이다. 아내의 실내화에 달린 단추는 타운하우스에 살 때 겨울에 입었던 나의 두꺼운 옷에 달렸던 단추였다. 이렇게 단추 하나로 우리 부부의 언어가 한 가지 더 생긴 것 같다. 단추가 없는 실내화가 거실 화장실 앞에 있으면 아내는 안방 화장실을 이용했고, 단추가 달린 실내화가 소파 팔걸이에 올라가 있으면 아내가 로봇 청소기를 돌렸다는 의미가 되었다.

단추가 참 재미있는 의미들을 만들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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