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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ngdaeone Apr 27. 2023

나의 패션 지존 형님들에게

(풋)아저씨의 패션 이야기 (5)

 업계 사람이 된 후로 가장 크게 바뀐 일상이 있다면 팔로잉하는 계정이 많이 늘었다는 사실이다. 전이야 내가 좋아하는 주제만 받아보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온갖가지 유행이 홍수처럼 밀려드는 백화점 유통업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트렌드 공부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급기야 받아 보는 계정이 2600개를 넘었다.

 그리고, 이러한 습관에 수반된 또 다른 변화가 있다. 바로 인플루언서들이 내 일상에 침투하게 되었다는 것. 새로운 브랜드를 공부하거나 참고할 때 도움이 되다 보니 유명해질 자질을 갖춘 사람이 피드에 뜬다 하면 일단 팔로우부터 하고 보는 습관이 생겼다. 그렇게 언젠가부터 나의 팔로잉 목록에 인플루언서들이 들어 차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사람들 가만 들여다보니 대단한 사람들이다. 기본적으로 감각이 좋다.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감도를 알고, 이를 통해 대중들의 마음을 살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또, 이렇게 설정한 콘텐츠의 온도를 유지할 줄 아는 평정심도 갖췄다. 꾸준히 자신의 일상을 공유할 줄 아는 부지런함과 성실함은 기본 소양이고, 하입한 콘텐츠라면 어디든 찾아건다는 의지 넘치는 마인드와 건강한 체력까지 갖췄다. 그리고 이렇게 얻은 명성과 유명세를 바탕으로 새로운 먹거리를 만들어낸다. 모델, 쇼핑몰, 디자이너, 유튜버, 직업도 참으로 각양각색인데 실로 육각형 능력치를 가진 사람들이다.


 사실, 인플루언서는 어느 시대에나 있었다. 매체와 속성과 추종자의 규모만 달라졌을 뿐, 자신들의 유명세를 이용하여 사회 전반에 영향을 행사하던 인물들은 언제나 존재했다. 기원전 그리스의 철학자들도, 중세시대의 귀족들도 그랬다. 시각매체 보급 이전의 라디오 스타들도, TV 매체 등장 이후의 락스타들과 랩스타들이 그랬다. 자고로 인간이란 모방의 동물인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인플루언서는 (풋)아저씨의 시대에도 있었다. 요즘의 유튜브, 인스타그램처럼 SNS를 기반으로 성장한 인플루언서들과 차이가 있다면 아이디나 채널명이 아니라, 별명과 본명으로 불렸다는 사실 정도랄까.


10대 시절부터 군대 가기 전까지 많이 보던 잡지들. 크래커 진짜 재밌었는데 절판될 때 많이 아쉬웠다.

 내가 누군가에게 영향을 받을 연령이었을 땐 지금처럼 바이럴 될 수 있는 수단이 많지 않았다. 멋진 사람을 찾는 방법이라고는 잡지나 패션위크에 찍힌 사진의 주인공을 찾는 방법 정도였다. 사진들은 대부분은 누가 찍은 것인지조차 불분명했다. 당연하게도 사진 속 인물이 어디서 무얼 하는 아무개인지 파악할 방법은 전무했다.


 그래서 이들이 누구인지를 여기저기 동냥하듯 묻고 다니는 게 일이었다. 인터넷 커뮤니티부터, 쇼핑몰의 QNA게시판, 각종 검색 엔진(그마저도 지금과 비교하면 볼품없는 성능을 자랑했다.) 서적, 브랜드 본사로의 전화, 싸이월드 파도타기, 심지어는 밀리오레에 상주하던 형님들에게까지 불치하문을 좌우명 삼아 때와 장소와 상대를 가리지 않고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애썼다. 그리고 나처럼 귀동냥하던 사람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 유명세를 누리던 사람들이 바로 세기 초의 인플루언서였다.


 나는 이렇게 찾아낸 형님들을 따라 하며 패션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들을 보며 옷에 대한 애정과 안목을 키웠다. 그들이 착용한 옷과 브랜드를 알아내 마음에 담아두었다가 구매를 하곤 했다. 가끔 주변 친구들이 내가 가진 옷을 물어오거나 패션에 대한 지식을 물을 때면 그렇게 으쓱할 수 없었다.


 오늘은 이렇게 (풋)아저씨가 동경했던 옛 인플루언서들 중 다섯 명을 뽑아볼까 한다. 힙스터보다 간지남이란 말이 잘 어울리던, 그때 그 시절 나의 마음을 파고들었던 패션 지존(ㅋ) 형님들을 소개한다. (류승범이나 故 김주혁 배우처럼 많이 알려진 스타들은 제외하겠다.)


 첫 번째는 배정남이다. 그야말로 빈티지의 끝판왕, 완성된 멋이었다. 찢어진 501과 컨버스, m65 피쉬테일, 로고 볼캡, 완벽한 믹스매치까지. 지금 봐도 촌스럽지 않은 배정남 형님의 패션은 시대를 풍미했다. 사실 지금까지도 좋아하는 아이템들의 대부분은 배정남 형님으로부터 영감 받은 것들이다. 여기에 더해 조각 같은 몸매에 잘생긴 얼굴까지.. 지금이야 방송인이 다 되어서 모르는 사람을 찾기 힘들 정도지만, 당대 배정남은 대단한 스타였다.

 10대 시절엔 매일같이 그의 사진을 찾아봤었다. 사진 속 티셔츠나 모자를 구하려고 온 빈티지 시장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무릎 부분을 똑같이 찢어 보고 싶어서 말짱한 리바이스 스무 벌은 버렸다. 싸이월드에는 배정남 폴더가 따로 있었다. 새로운 사진이 올라오면 하루 종일 기분이 좋을 정도로 그를 동경했다.

 내 기억이 맞으면 2007년 - 2010년 즈음에 레이건이라는 클래식 의류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기도 했었는데, 형님이 직접 찍은 사진을 구경하는 것도 큰 재미였다. 사이트가 문을 닫던 날에는 얼마나 아쉽던지.

 류승범 배우와 친분을 과시하는 사진들도 종종 싸이월드에 돌아다녔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렇게 시크한 형님이 그렇게나 귀엽고 방정맞은 캐릭터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후일담.


 두 번째는 쿨케이다. 05학번 is back에서 쿨제이라는 이름으로 작년 한 해 가장 뜨거운 밈이 되어버린 쿨케이 형님이지만, 그 역시 나의 아이돌 중 한 명이었다. 당대 빈티지를 좋아하는 사람치고 이 형님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단연코 없었다. 스틸컷 속의 쿨케이는 부츠컷을 자주 입고 등장했었는데, 그게 그렇게 매력적이었다. 나는 타고난 하체 발달형인데, 중학교땐 이 형 따라 부츠컷을 입어보고 싶어서 트루릴리전(요새 조금씩 다시 입는 분위기인 것 같던데)을 사서 들어가지도 않는 바지에 다리를 욱여넣고 다니기도 했다.

특히 손태영 누님과의 연애 시절 짤은 지금 봐도 너무 멋지고.. 예쁘고.. 사랑스럽고.. 잘 어울리고.. 뭐.. 그렇다. 공효진-류승범, 이정재-김민희를 잇는 최고의 한국 청춘 커플이지 않았을까 싶다. 이젠 다른 형님의 와이프가 되어버린 손태영 누님이지만.. 팬심은 팬심이니깐.

배정남 형님과 쿨케이 형님

 배정남 형님과 쿨케이 형님이 함께한 사진은 특히 귀했다. 가장 오른쪽에 있는 사람은 휘황이라는 모델인데, 당시에는 이렇게 떠돌던 짤로 이들의 친분 관계를 유추하거나 소문을 만들어내거나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덕분에 배정남이랑 손태영이랑 사귄다는 소문도 돌고 그랬다.

 배우, 영상 제작, 의상 디자인까지 뭐 이런저런 일들을 해왔지만, 쿨케이라는 사람을 세상에 널리 알린 가장 큰 계기는 로토코라는 쇼핑몰이었다. 로토코는 동대문 보세 옷을 취급하던 온라인 쇼핑몰이었다.

 로토코의 모델 중에는 당시 공중파에도 가끔 등장하던 디티라는 형님도 있었다. 홈페이지에는 두 사람의 일본과 동남아 휴양지 탐방을 기록하던 일종의 블로그가 올라왔다. 예쁜 누나들과 함께 매일매일 클럽에서 술을 먹으며 환락의 파티를 즐기던 쿨케이 형님의 삶은 당시 정말 충격적이었다... 사실 이렇게 멋있어지면 예쁜 누나들이랑 매일같이 놀 수 있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ㅋ (그래서 멋있어지고 싶었던걸 지도..?)


 세 번째는 진정한 보헤미안, 윤태원 형님. 위 두 인물보다는 일반적인 인지도야 떨어질 수도 있지만, 내공이라면 둘 중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 진정한 멋쟁이다. 이름보다도 "라베기"라는 별칭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요즘도 "labaggi"라는 별명을 빌려 인스타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슈퍼카로 가득한 그의 일상

 오랜 팬심으로 계정을 팔로우하고 있는데, 일상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멋지고 자유로운 라이프를 즐기시는 것 같다. 결혼도 하신 것 같고, 최근엔 올드카에 푹 빠지셨는지 멋진 슈퍼카들이 피드와 스토리에 종종 등장한다.

 사실 labaggi 형님은 로토코 창립멤버다. 꽤 오랫동안 쿨케이 형님과 로토코를 운영하다가, 각자의 신념을 이유로 갈라선 것으로 알려져 있다. 로토코 탈퇴 이후 떠난 유럽 여행에서 라베기 형님은 실버 주얼리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국내로 돌아와 실버 주얼리 브랜드인 "불레또"를 런칭했다. 현재 불레또의 공식 행사에는 항상 디렉터인 차광현 씨가 얼굴마담 역할을 하시는 것 같은데, 요즘도 라베기 형님이 직접 브랜드 디렉팅에 참여를 하는지까지는 모르겠다.

  네이버에 검색을 해보니 이렇게 자기 스타일을 소개하는 인터뷰도 하고 그렇게 여전히 즐겁게 사시는 것 같더라. 멋진 모습으로 가로수길과 청담 일대에서 발견이 된다는 목격담도 들린다.


 이 광고를 기억하는가. 각양각색의 청춘들이 나와 한마디로 각자의 스타일을 정의하던 중에 갑자기 등장한 한 청년. 그는 귀돌이 비니를 쓰고 헐렁한 v넥 티셔츠와 체크무늬 재킷을 착용한 자신의 스타일을 "민석룩"이라고 소개한다. "도대체 민석룩이 뭔데?" "내 이름~" 한 마디 대사로 스타덤에 오른 곽민석 형님이 네 번째 주인공이다.

 곽민석 형님은 그야말로 "홍대 문화"의 대표 주자였다. 그는 당시 스트릿을 좋아하던 모든 십 대들의 우상과도 같았다. 나 역시 한창 스트릿에 빠져있을 때 그의 사진과 일상을 열심히 찾아보곤 했다. 픽시 크루를 운영할 정도로 자전거를 좋아하는 것으로 소문이 나있었는데, 그 덕에 십 대들 사이에서는 픽시 열풍이 불기도 했다.

 그는 오랫동안 정기구독하던 잡지 "cracker"와 "룩티크"에 단골손님처럼 등장하곤 했다. 그때마다 단발머리와 푹 눌러쓴 후드가 기가 막히게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내가 장발을 하는데 큰 영향을 준 인물이기도 하다.

 사실 따지고 보면 현대 한국의 패션의 중요한 부분에는 곽민석이 있었다. 조만호 씨와 함께 한국 최대 온라인 커머스가 된 무신사를 공동설립했고, 한국 최초라고 할 수 있는 패션 웹메거진이자 커뮤니티인 쇼프를 운영했다. 이후 카시나의 나이키 SB와 stussy의 첫 국내 디스트리뷰터로, 1세대 도메스틱 브랜드인 누드본즈 디렉터로 브랜드를 운영했다. 앞서가는 것이 곧 경쟁력인 패션업계에서 언제나 최초란 수식어를 달고 다녔으니 인물은 인물이다.

 그렇게나 멋진 행보를 보여주던 사람이었는데, 요즘 통 소식을 모르고 지낸 것 같아 근황이 궁금해졌다. 하지만 아무리 검색해 봐도 요새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는 찾을 수 없었다. 누드 본즈도 더 이상 생산하지 않는 것 같고.. 풍운아 같던 그였으니 어디서 뭘 하든 하고는 있을 것 같지만.. 혹시나 근황이 어떻게 되는지 아시는 분이 있다면 댓글을 통해 알려주시면 크게 감사드리겠다.


 마지막은 쿠보즈카 요스케 형님이다. 요스케는 내게 일본 패션에 눈을 뜨는데 큰 영향을 준 인물 중 하나다. 요스케는 우리나라로 치면 류승범 정도 포지션의 배우인데 멋진 패션 센스만큼 필모그래피도 준수하다.

 이 배우는 발랑 까진 10대 연기라면 기가 막히게 해낸다. 특히 가네시로 가즈키 원작의 "GO"에서 연기한 제일교포 2세 수기하라 역은 정말 대단했다. 마치 쿠보즈카 요스케 본인의 이야기를 하는 듯했다. 적당히 반항적이면서 쿨하고, 심드렁하면서도 열정적인 그의 매력에 나는 푹 빠져들었다.

 얼마나 빠졌냐면 이 머리가 하고 싶어서 미용실에 가서 호일펌을 해달라고 하기도 했다.

 또, 요스케는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라는 드라마에서 g-boys의 대장 "king"을 연기했다. 그리고 이 드라마로 일약 스타가 된다. 느긋느긋 하면서도 엉뚱한 그의 일본 양아치 연기는 정말 일품이었다. 그리고 이때 이 형님의 패션은 내가 이 형님에게 빠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플란넬 셔츠를 걸치고 커다란 실버주얼리를 하거나, 트랙탑을 입고 포스를 신는 등 일본의 틴에이저의 트렌디한 패션을 가감 없이 보여주었다.

 슬라브 데님에 리바이스 쉘파, 조던을 신고 두건을 두른 그의 모습은 일본인임에도 흑인의 피가 흐르는 듯했다. 아메리칸 캐주얼과 스트릿웨어를 절묘하게 믹스매칭하는 그의 센스는 정말 탁월했고, 많은 십 대들의 우상이 되었다.

더블탭스 옷을 입은 요스케
마스터피스의 바시티재킷을 입은 쿠보즈카 요스케
사카이 룩북

 요스케는 일본 내수 브랜드의 옷을 자주 입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더블탭스, 프라그먼트, 와코마리아 핵틱, 슈프림, 마스터피스까지 일본 패션신에서 우라하라 패션과 스트릿웨어가 메인스트림이 되는데 톡톡한 역할을 했다. 요스케는 여전히 다양한 장르에서 활약 중이다. 연기, DJ, 패션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는데, 특히 일본 굴지의 브랜드들의 공식 계정에 깜짝 등장하곤 한다. 여전히 뭐 말할 것 없이 멋지다.

 위에 언급한 인물들 이외에도 일본의 후지와라 히로시, 니고, 이시즈카 케이지, 모리 아츠히코, 타카히로 키노시타, 류이치 사카모토, 대륙 건너 라포 엘칸, 스테파노 필라티, 알렉산더 스콰르치, 프랑코 미누치, 리베라노, 브루스 페스크, 션 스투시부터 허프 나이젤까지 이름만 알아도 왠지 멋쟁이가 된 듯 든든한 이들을 나는 동경했었다.


 뭐 멋있는 사람들을 동경했던 사람이 비단 나뿐이었겠는가. 당시에 함께 커뮤니티 활동을 했던 많은 멋쟁이들이 지금은 이름 대면 알만한 업계 종사자가 되어 한국의 패션시장을 이끌어나가고 있다.


 가끔 커뮤니티나 인스타 계정을 통해 내가 가진 아이템 정보를 묻는 분들이 있다. (사실 여전히 쑥스럽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하고 뭐 그렇다.)  나라고 처음부터 내 스타일이라는 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나를 비롯한 패션업계 종사자들도, 내 팔로잉 계정에 들어와 있는 인플루언서들도, 인생의 어느 한순간엔 멋진 형님들을 동경하던 때가 분명 있었을 것이다.


 물론,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멋쟁이가 되기 위해서는 이렇게 어깨너머로 키운 기본기를 바탕으로 자신의 취향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취향은 마트에서 장을 보듯이 일시불로 결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도전하고 실패하며 훈련하듯 연마하는 것이다. 다듬어진 취향 위에 자신만의 매력과 분위기를 덧입힐 수 있을 때 본인의 스타일에 대한 애정과 만족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긴 글이었다. 이번 포스팅은 나를 지금의 자리로 이끌어준 나의 패션 지존 형님들에게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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