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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ngdaeone May 04. 2023

OUTFIT OF JAZZY DAY

(풋)아저씨의 패션 이야기 (6)

Levi's® Vintage Clothing의 지난 22F/W 컬렉션의 주제는 " Blue Daze"였다. 리바이스의 디자인 디렉터 Paul O'Neill이 탄생시킨 컬렉션은 50-60년대의 흑인 재즈 뮤지션들로부터 영감을 받아 전개됐다. 50-60년대 재즈는 황금기를 보냈다. 비밥의 등장으로 대중성을 더했고, 쿨 재즈로의 변주를 통해 여러 사람들의 입과 손을 거쳤다. 바야흐로 재즈가 하나의 장르이자 클래식으로 인정받게 된 시대였다. 컬렉션에는 재즈 아티스트들이 사랑했던 의상들이 담겼는데, 데님과 Sta-Prest®(다림질이 필요 없는 특수 가공된 원단으로 만든 팬츠), 버튼업 셔츠, 벌룬팬츠, 주트팬츠 까지 무대 의상과 일상복이 두루 다뤄졌다.

시대 예술에서 영감을 진행된 "Blue Daze"컬렉션. 파란색과 흙빛의 대조, 블루톤의 패턴들, 높은 밑위와 넓은 통의 칼같이 다려진 팬츠가 눈에 띈다.

룩북 제작 능력이 뛰어난 브랜드들은 현지인을 모델로 쓰는 경우가 있다. lvc의 BLUE DAZE도 뉴욕을 근거지로 활동하고 있는 흑인 재즈 아티스트들을 모델로 세워 촬영을 진행했다. 촬영 로케이션은 60-70년대부터 영업을 해왔던 재즈 바. 이렇게 촬영에 공을 들이는 경우 컬렉션의 테마가 더욱 두드러지게 마련인데, 스틸컷을 보면 이를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재즈라는 장르는 인류가 쌓아올린 모든 음악적 통념을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전통 클래식 음악의 패러다임을 따르지 않고 자유로운 화성과 리듬을 연주했으며, 잘 갖춰진 공연장이 아닌 밤무대나 뒷골목에서부터 연주되었다. 재즈가 미국의 시민운동과 맞물려 급진적인 문화운동의 눈이 되었던 이유도 맥락을 같이한다. 재즈는 태생이 아래로부터 시작된 문화였다.

 그리고 이러한 재즈의 "혁명적 속성"은 아티스트들의 패션에도 드러났다. (BLUE DAZE 컬렉션을 통해 소개된 것처럼) 당대 재즈 뮤지션들은 기하학적이고 강렬한 패턴의 의류를 사랑했다. 흑인 문화와 멕시코 이민자들의 문화를 받아들여 새로운 실루엣의 의복을 만들어 입기도 하였다. 이렇게 본 적 없는 패션을 자신들의 분위기와 체형에 어울리게 구사함으로써 의복사에 영향을 끼치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당대 인기를 구가했던 뮤지션들의 패션은 어땠을까. 오늘은 20C 중반, 재즈 신을 평정했던 재즈 뮤지션들의 패션을 살펴보자. 바로 아래 각 뮤지션들의 대표곡을 담은 유튜브 링크를 첨부해 두었으니 들으면서 보면 재미가 두 배가 될 것 같다.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gw7j2D7Eos_W5ZQEhvpT2nANE86iIdgd


[마일즈 데이비스]

 마일즈 데이비스는 1세대 재즈 뮤지션 루이암스트롱 뒤를 이어 1940년대에 전성기를 보낸 아티스트다. 60~70년대까지 활동하며 비밥→하드밥→쿨→퓨전으로 이어지는 재즈의 방향성과 장르를 구축해 나갔으니, 아티스트를 넘어서 문화재 정도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여담으로, 위에서 언급한 리바이스의 "BLUE DAZE"는 마일즈 데이비스의 앨범의 이름이다.)

 할아버지가 부농이자 회계사였고, 아버지가 치과 의사였기에 넉넉한 중산층 생활을 했던 마일즈 데이비스는 중산층으로서 품위가 있었다고 한다. 또, 어린 시절부터 아르바이트를 해 슈트나 구두, 넥타이를 샀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재즈 아티스트들 중에서도 특히나 패션에 대한 열정과 감각이 뛰어난 편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이유로 마일즈 데이비스는 다른 아티스트들에 비해 일상복을 착용한 사진이 많이 존재한다. 멋진 가죽 재킷과 스카프를 즐겨 착용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 마일즈 데이비스는 나무랄 데 없는 깔끔하고 젠틀한 의복생활을 즐겨했다.

 마일즈 데이비스의 1969년 베를린 라이브 당시의 패션. 슬라브 형태로 직조된 샴브레이 원단의 퍼커링 슈트가 참으로 멋지다. 다양한 스타일에 도전하고 또 이를 완벽하게 소화해 낼 줄 아는 멋쟁이 었기에, 재즈의 변화를 꾀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복싱을 즐겨했던 덕에 나이가 들어서도 꾸준한 몸매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냇 킹 콜]

 냇킹콜은 1950년대를 풍미했던 재즈 보컬리스트다. mona lisa, l-o-v-e, unforgettable, walkin', anything for you, 당장 생각나는 히트곡만 열거해도 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그는 많은 인기를 얻었다. 엘비스 프레슬리 등장 전후의 락큰롤마저도 냇 킹 콜의 재즈를 이기기 어려울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수많은 명성과 부를 얻었던 아티스트였다. 그리고 이는 그의 의복생활에서도 나타난다. 냇킹콜은 주트 슈트와 비슷한 형태의 슈트를 자주 착용했다. 라펠이 크고 재킷의 길이가 길며 풍성한 크기의 타이를 자주 착용했는데, 그의 커다란 풍채와 잘 어울려 남성적인 매력을 부각했다.

 가끔은 이런 유러피안 스타일에 가까운 의복도 착용하였는데, 모델이 좋아 이 역시 잘 어울렸다.

 일상복을 입고 스튜디오에서 촬영된 사진을 보면, 스트라이프 티셔츠나 오픈카라 형태의 캐주얼 pk티셔츠, 시어서커 원단의 오픈카라 셔츠를 착용하기도 하였다. 당대 재즈 아티스트들이 화려한 색상의 옷을 착용하였던 것은 어두운 피부색이 원색 계통의 색상과 잘 어울려서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쳇 베이커]

 쳇 베이커는 50년대를 대표하는 재즈 보컬리스트이자 트럼페터다. 쳇 베이커는 현재까지도 평가가 크게 엇갈리는 아티스트인데, 이는 그가 가진 가녀린 외모와 비극적인 삶이 그의 음악색과 유명세 양쪽 모두에 영향을 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물에 대해서 어떤 평가를 내리든, 그가 재즈 씬의 대중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의심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B급 영화이긴 했지만) 당대 할리웃 스타들을 제치고 영화의 주연이 됐을 만큼 쳇 베이커는 외모가 출중했다. 모성애를 자극할만한 외모는 그의 비극적이고 방탕했던 삶과 맞물려 커다란 아우라를 만들었다. 무대에 설 때면 그는 슈트를 입고 넥타이를 할 때가 많았다. 그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born to be blue"는 이러한 그의 무대의상을 잘 고증하였다. (개인적으로 에단호크 캐스팅은 정말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스튜디오 촬영 당시를 비롯해 평상시 쳇 베이커는 티셔츠와 니트를 자주 착용했는데, 자유롭고 어디에도 묶이지 않는 그의 이미지와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선택이었다. 이러한 쳇 베이커의 스타일링은 당대 미국에서 인기를 끌던 캐주얼 웨어이기도 했는데, 50-60년대 미국의 캐주얼을 복각해 내는 브랜드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심각한 마약과 알코올중독으로 인해 말년엔 초췌한 얼굴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생 그가 쌓아온 아우라는 쉬이 없어지지 않는 듯하다.



[루이 암스트롱]

 루이 암스트롱은 재즈 보컬리스트이자 트럼펫터다. 음악은 몰라도 그의 이름이라면 누구나 들어봤을 만큼, 암스트롱은 문화사와 재즈사에 기념비적 발자취를 남긴 전설적인 음악인이다.

 그는 재즈가 태동하던 20C초반부터 현대 모던 재즈 시대인 1970년대까지 인생의 전부를 재즈와 함께하며 전 세계에 뉴올리언스 재즈를 알렸다. 몇몇 후대 아티스트들은 루이 암스트롱을 "백인들에게 웃음을 팔았던 광대"라며 평가절하하기도 한다. 하지만, 시대에 대한 이해와 그의 영향력에서 촉발된 흑인 인권문제의 공론화를 생각해 본다면 단연코 그런 평가를 내릴 수는 없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스캣을 만든 장본인(사실 주호민)이기도 하다. 스캣의 기원에 대한 다양한 설이 있다. 연주 중 트럼펫을 떨어뜨려서 즉흥적으로 해냈다는 설도 있고, 가사를 잊어버려서 멜로디를 부른 것이 시초라는 설도 있다. 사실이 어찌 되었건 재즈를 보다 많은 사람이 즐길 수 있도록 해준 장본인인 것은 확실하다.

 루이 암스트롱은 음악적 업적만큼 멋진 패션스타일을 자랑했다. 공식석상에서도 단정한 슈트가 아닌 세퍼레잇을 입고 등장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나비넥타이를 트레이드마크처럼 착용했다.

익살스러운 표정과 안경, 다채로운 색조화가 멋스럽다. 루이 암스트롱은 입이 굉장히 컸는데, 그의 별명인 '사치모(Satchmo)' 역시 이러한 특성에서 비롯되었다.

 스튜디오 촬영을 할 때에는 오픈카라 형태의 셔츠나 가디건을 주로 착용했고, 간혹 셔츠를 풀어헤치고 프랜치 스타일로 옷을 입었다. 현대의 흑인 아티스트들 중에는 말콤X를 연출한 스파이크 리 감독과 비슷한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의 호쾌한 웃음과 잘 어울리는 자유롭고 개성 있는 스타일이 멋지다.

루이 암스트롱은 60년대에 내한공연을 했을 정도로 전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탔었다.


[빌 에반스]

 빌 에반스는 재즈에 서정성과 감미로움을 크게 부각한 전설적인 재즈 피아니스트다.  그는 쇼팽을 비롯한 낭만주의 피아니스트들의 클래식 보이싱(화성)을 재즈에 도입하여 낭만 재즈의 시대를 열었다. 최근에는 빌 에반스의 화성을 가져와 클래식 작곡을 하는 피아니스트가 있을 정도라고 하니 음악사적 영향력이 대단한 아티스드라고 평가할 수 있다.

 빌 에반스는 위에서 언급한 마일즈 데이비스와의 협연으로도 유명하다. 1959년, 모드에 기반한 선율 위주의 차분한 연주로 스타일을 바꿔가고 있던 마일스는 에반스를 자신의 밴드로 영입했다. 그렇게 마일스 데이비스의 역작인 Kind of blue라는 앨범이 탄생하게 된다. 인간관계가 좋지 않은 것으로 유명한 마일스도 빌 에반스의 평가에는 후했는데, 그만큼 재능이 뛰어났던 아티스트라고 할 수 있겠다.

 빌 에반스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패션은 잘 빗어 넘긴 슬릭백과 아넬 안경, 그리고 단정한 쓰리피스 슈트다. 그의 사진들을 보면 미국의 아티스트라는 사실이 무색할 만큼 정갈하고 단정한 신사미가 풍겨 나온다. 몸에 꼭 맞아떨어지는 슈트와 딤플 없이 목 아래에 정갈히 메어진 타이는 이러한 분위기 형성에 큰 몫을 한다.

 또, 상당한 애연가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그의 사진이나 영상을 찾아보면 담배를 물고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어릴 때는 이런 모습이 어찌나 멋있어 보이던지.. 한창 재즈 피아니스트를 동경하던 때에는(나는 클래식 피아노를 꽤나 오랫동안, 꽤나 잘 연주했다..) 호박만 한 금반지를 끼고 담배를 피우면서 피아노를 치는 내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찰리 파커]

 찰리파커는 비밥의 시대를 연 재즈 색소포니스트다. 비밥은 대중들이 좋아할 만한 (춤추기 좋은) 규칙적인 리듬과 감미로운 멜로디를 가미한 재즈의 장르이다. 2차 세계대전 후반기부터 소규모 세션들이 공식 그룹으로 활동 양태를 전환하며 대중들의 눈에 들기 위해 노력했는데, 여기서 파생된 장르가 바로 비밥이다.

 찰리 파커는 엄청난 속주와 뛰어난 기교로 유명했는데, 재즈의 역사를 새로 쓴 마일즈 데이비스가 찰리 파커의 공연을 보고 재즈계로 입문을 결심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1950년대에 들어 비밥이 크게 인기를 얻으며 찰리 파커는 거물로 추앙받았지만, 그는 이미 약물중독과 알코올 중독으로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결국 과도한 마약 복용으로 인한 장기파열과 내출혈로 인해 35살의 나이에 요절하고 만다.

 그의 남겨진 사진들을 보면 대부분 커다란 피크드 라펠의 화려한 스트라이프 더블슈트를 입고 있다. 타이 역시 화려한 패턴과 색상의 것들을 착용했는데, 전형적인 재즈 아티스트들의 무대 의상이었다.


[클리포드 브라운]

 일류작가 가네시로 가즈키의 Revolution No.3에서 좀비스가 찾은 재즈 바에서 사장님은 클리포드 브라운의 노래를 틀며 다음 대사를 읊는다. "클리포드 브라운은 스물다섯 살에 죽었지. 소울(soul)이 너무 강했던 거야. 소울이 강한 인간은 신의 레이더에 걸리기 쉽거든. 신은 소울이 강한 인간을 곁에 두고 싶어 하니까." 내가 레볼루션 no.3을 여러 번 읽던 2017년에 클리포드 브라운의 곡을 참으로 많이 들었다. 그 해에는 좋아하던 배우 김주혁이 사고로 유별을 달리했고, 샤이니의 종현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으며, 가깝게 지내던 친구의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등졌다.

 클리포드 브라운은 시기로 따지면 마일즈 데이비스의 전성기보다 먼저 히트를 친 아티스트이다. 서정적이면서도 기교와 완급조절에 두루 능했던 클리포드 브라운은 하드밥의 전성기를 함께했다. 해롤드 랜드와 협연한 스튜디오 앨범을 비롯해 오케스트라와 함께한 앨범, 클리포드 브라운 위드 스트링스(Clifford Brown with Strings)까지 정식 연주자로 데뷔한 이후 4년간 왕성한 작업을 해나가던 그는 교통사고로 25살의 나이에 세상을 등졌다.

 요절한 탓에 사진이 많진 않지만, 남겨진 몇 장의 사진들을 보면 그의 패션 센스를 엿볼 수 있다. 스튜디오 녹음을 할 때의 모습을 보면 타이트한 상의에 배꼽 위로 올려 입은 넓은 통의 트로피칼 울 바지를 올려 입은 모습인데, 40년대 유행했던 남성복 스타일을 찾을 수 있다.


사실, 재즈 아티스트들이 활동하던 그 시대를 직접 살아 봤던 것이 아니기에 그들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매스 미디어라는 것이 없을 때니, 짐작하자면 오늘날 랩스타들 하위 호환 정도의 영향력이었을까. 어쨌든, 당대 재즈 아티스트들은 음악사 외적으로 많은 부분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리고 이러한 영향력에는 '틀에 박힌 정형화나 규칙'을 거부하는 재즈 아티스트들의 DNA가 주요하게 작용했다. 그들의 음악과 라이프스타일은 기존의 존재하던 것이 아니었다. 재즈의 코드 진행처럼 일률적이지 않았으며, 재즈 협연처럼 즉흥적이고 저돌적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의 삶과도 닮아있다. 불완전하면서도, 이내 행복을 일궈내며 살아가는 우리의 삶과.


오늘은 재즈를 들으며 하루를 마무리해야겠다.


PLAYLIST - OUTFIT OF JAZZY DAY

delilah - clifford brown & max roach

jourdu - clifford brown & max roach

these foolish things - clifford brown & max roach

solar - bill evans

i'll see you again - bill evans

peace piece - bill evans

unforgettable - nat king cole

l-o-v-e - nat king cole

what is there to say - nat king cole

so what - miles davis

jeru - miles davis

summertime - miles davis

now's the time - charlie parker

bebop - charlie parker

all of me - charlie parker

my funny valentine - chet baker

i fall in love too easily - chet baker

almost blue - chet baker

autumn in new york - louis armstrong & ella fitzgerald

cheek to cheek - louis armstrong & ella fitzgerald

dream a little dream of me - louis armstrong & ella fitzgera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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