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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ngdaeone Apr 06. 2023

청바지는 세탁을 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풋)아저씨의 패션 이야기 2 : 데님은 세탁해도 될까?

동생에게 몇 년간 양도했던 나의 소중한 501이 새하얗게 질려 돌아왔다. 적잖이 당황해 어쩌다 이리된 것인지 영문을 물으니 동생은 고개부터 젓는다. 필시 엄마의 소행이 분명했다.


엄마와 빈티지에 얽힌 에피소드는 예로부터 오랜 기간 다양하게 존재해 왔다. 부모님이 백화점에서 사다 주시던 세 팩에 만 원짜리 폴햄 티셔츠를 졸업한 이후로부터 나는 지금까지도 빈티지를 사랑해 왔다. 이러한 아들의 취향은, "모름지기 의복은 정갈해야 한다."는 철학을 가진 엄마의 심기를 종종 건드렸다.


사랑하는 엄마는 나의 유별난 빈티지 사랑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다. 어렵게 구한 m43을 입고 나가던 날엔 전쟁 나가 죽은 사람이 입었을 거라며 타박을 했었다. 빈티지 가공이 되어 나온 캐피탈 셔츠를 보고 어디서 헌 옷을 사 왔냐며 구박을 하기도 했다. 힘들게 구한 데드스탁 티셔츠를 바로 세탁기에 돌려버리기도 했었고, 한정판 반스의 패키징 박스에 명찰을 붙여 운동기구를 정리하는 수납박스로 사용하기도 했으니 정말 웃픈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아무리 뒤져봐도 중학교 때 사서 신던 오니츠카타이거 사진을 찾을 수 없어서 구글링 해왔다. 멕시코 66 올 화이트 스티치마킹의 바디 전체에 데미지 가공이 들어간 빈티지 버전이었다. 이걸 사던 날에도 엄마는 비싼 돈 주고 새 신발을 사지 왜 헌 걸 사 왔냐고 타박을 하셨다. 다행인 건 엄마의 구박과 타박에도 나는 여전히 빈티지를 사랑하는 어른이 됐다. (뿌듯) 그나저나 중학생 방대원 멋있었네.. 어디서 이런 신기한 신발을 보고 찾아 사서 신고 다녔던 걸까..

나야 대학에 진학하며 고향을 쭉 떠나 있었기에 엄마의 이러한 관심(?)을 광주에 찾아가는 날에만 가끔씩 집중하여 받으면 그만이었다. 때로는 이것이 애정과 사랑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님과 생활을 함께 이어 나갔던 내 동생은 그러지 못했다. 한 지붕 아래 다른 취향의 구성원이 함께하는 것이야 어느 집구석에나 일어나는 법이니 서로 이해하고 살아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었는데, 워싱이 제법 난 청바지를 든 채 반쯤 초점이 나가버린 동생 눈을 바라보고 있으니 내가 아주 속 편한 소리를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생에게 내어준 나의 청바지는 몇 년간 아껴 입던 90501이었다. 살이 찌는 바람에 군침을 흘리던 동생에게 건너갔던 것이다. 바지는 엄마의 무자비한 드럼 세탁으로 인해 전쟁터에서 살아남은 상이용사 삼촌처럼 초췌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못 빨게 했어야지!"라고 동생에게 놀리듯 면박을 줬으나, 잠시 집을 비우고 돌아왔을 때 이미 건조대에 걸려있었다는 대답만 돌아올 뿐이었다. 비단 사랑하는 나의 동생뿐이겠는가. 원치 않는 청바지 세탁으로 인해 가슴에 상처 몇 얻은 사람들은 수두룩할 것이다.

90501은 여타 501에 비해서 헤어리한 원단으로 만들어지기에 세탁 후 더욱 드라마틱한 변화가 있었다.

"청바지를 세탁해도 되는가!?"에 대한 이야기는 데님 좀 좋아한다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단군의 고조선 건국 이래 최고의 난제 중 하나다. 위생상 좋지 않으니 세탁은 필수라는 쪽과, 청바지를 세탁하는 것은 근본 없는 일이라는 쪽으로 나뉘어 부먹이냐 찍먹이냐에 버금가는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청바지를 세탁하는 행동에 대해 이렇게 여러 의견이 있는 이유는, 데님 원단이 가지고 있는 두 가지 특성 때문이다.


첫 번째는 수축이라는 특성이다. 모든 면직물은 수축을 한다. 특히, 직물이 물을 만나거나 고온에 노출될 경우 강한 수축을 하며, 원단과 원단을 직조하는 실이 두꺼운수록 상대적으로 크게 수축한다.

가공되기 전 쌓아진 목화 더미

우리는 실을 구분할 때 "몇 수 몇 합"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여기서 말하는 "수"란 1파운드의 목화 원료로 뽑아낼 수 있는 실의 길이를 야드로 나타낸 용어다. 예를 들어 1수라고 하면 1파운드 원료에서 뽑아낸 1 yard의 실, 10수라고 하면 1파운드 원료에서 뽑아낸 10 yard의 실을 뜻한다. (수학 좀 하는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높은 "수"를 가진 실일수록 원사의 두께는 훨씬 얇다. 60수 실의 두께 : 30수 실의 두께 = 1 : 2) 또, "합"이라고 하는 것은 원사를 몇 가닥 꼬아 만든 실인지를 뜻하는 단어이다. 2합이라 하면 두 개의 원사를, 3합이라 하면 세 개의 원사를 꼬아 만든 것이다.


제품에 따라서 차이야 있지만 우리가 입는 티셔츠가 보통 60수 2합 ~ 30수 2합으로 만들어진다. 일반적인 데님이 20수 3합이나 20수 4합 원사를 사용하여 직조되니, 티셔츠보다 두 배에서 크게는 열 두 배까지 두껍다고 생각하면 생각하면 된다. (청바지가 본래 작업복으로 사용되었던 이유도 이렇듯 튼튼하고 두꺼운 직조에 있다.) 당연하게도, 타 직물들에 비해 두께감이 월등한 데님은 그 수축률 역시 눈에 띄게 크다.


sanforizing 공법. 쉽게 말해 원단을 기계에 집어 넣어 잡아당기는 힘을 이용해 수축을 방지하는 공법이다.

이러한 수축을 이유로 면직물은 수축을 방지할 수 있는 가공을 진행한다. 만들어진 원단에 예상되는 수축의 반대방향으로 장력을 가하는 Sanforizing 공법이나, 수축률까지 계산된 패턴으로 바지를 만든 뒤 세탁하여 수축을 진행하는 pre-shrinking 공법이 그것이다.

샌포라이징을 거친 이후 원단안에 직조되어 있는 능직의 배열은 이렇게 변화한다.

하지만, 이러한 공정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이유로 수축 방지 공법을 사용하지 않고 청바지를 만드는 경우가 있다. 좋은 인디고 색상을 간직한 청바지를 그대로 전시하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복각을 위해 옛 봉제방식을 그대로 재현하기 위해 그럴 수도 있고, 공정의 간소화를 도모하기 위해서나, 비용절감을 원해서일 수도 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경우, 청바지를 세탁하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다. 청바지의 무게에 따라서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인 12oz 데님의 경우 단면 기준으로 보통 1.5 - 2인치 수축을 한다. 수치를 보면 알겠지만, 이 정도 수축이면 청바지를 세탁하는 행위는 "나는 더 이상 이 바지를 현재의 형태로 입지 않겠다."는 선언과도 같다.


두 번째 특성은 "색상 탈락"이다. 모든 데님은 세탁하게 되면 물빠짐이 발생한다. 흔히들 "워싱"이라고 이야기하는 색상 탈락은 청바지를 염색하는 염료인 “합성 인디고"의 속성과 관련이 크다.

한국에서는 이미 너무나 유명한 레졸루트의 하야시 상. 입고있는 바지는 모두 레졸루트 710인데 갱년변화에 따른 워싱이 이루어져 모두 제각각 다른 청바지처럼 보인다.

청바지의 푸른색은 주로 합성 인디고를 통해 만들어진다. "합성염료 청바지"라고 하면 "양식 전복"이나 "양식 광어"처럼 저품질의 무엇 같은 기분이 들 수 있으나, 사실 99.9%의 청바지는 합성염료로 만들어진다. 합성 인디고는 인디고페라라는 식물을 사용하여 만들어진 "천연 인디고"를 화학적으로 재현한 염료이다. 천연 인디고에 비해 가격이 훨씬 저렴한 데다가 발색이 고르고 좋으며, 환경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도 훨씬 적기 때문에 대량생산에 적합한 염료라고 할 수 있다. (마치 천연 조미료와 MSG와의 관계와도 같다.) 여담으로, 최초의 청바지가 1860년대 제작되었고, 합성 인디고가 1880년대 제작되었으니, 청바지의 역사는 합성 인디고와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합성 인디고는 분자 구조가 커서 마찰이 일어나면 직물로부터 쉽게 떨어져 나간다. (이러한 특성은 천연 인디고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견고하게 염색된 청바지라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때문에 마찰을 통해 원단에 묻은 때를 제거하는 행위인 세탁은 데님의 색상 변화에 치명적이다.

왼쪽부터 천연 인디고를 만들 수 있는 인디고페라와 화학 인디고, 한국의 인디고로 불리우는 쪽. 역시나 푸른색은 청량하고 개방된 느낌을 준다.

게다가 인디고의 까다로운 염색공정은 색상 탈락이 쉽게 일어나는 또다른 이유다. 합성 인디고 염료는 수용성이 아니다. 화학촉매제를 첨가해야만 수용성 물질로 변화하여 염색이 가능한데, 염색 이후 산화하며 푸른색으로 변화한다. 이때, 염료는 원사의 바깥쪽부터 부착된다. (이를 보고 염색이 고리 모양으로 진행된다고 하여 “ring dyeing effect”라고 한다.)

세탁을 하게 되면 원사의 바깥쪽에서부터 염료의 탈락이 진행된다. 반복적인 염색공정을 거치지 않아 내부까지 제대로 염색되지 않은 경우 세탁시 하얀 심지가 드러날 수 있다. 극단적으로 싸구려 원단은 한 번의 세탁에도 완전히 하얀 색상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

원사의 중심부까지 염료를 잘 스며들게 하기 위해서는 고른 수준의 염색을 반복적으로 진행해야만 한다. 하지만, 여러 차례 염색을 하더라도 내부까지 완벽하게 푸른색을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당연하게도 우수한 원사를 만드는 데엔 큰 비용이 투입된다. 결국, 청바지를 세탁할 때에 일어나는 물빠짐은 필연적인 것이다.

청바지 원사의 단면을 확인하면 이렇게 RING DYEING EFFECT를 눈으로 확인을 할 수 있다. 염색이 여러번에 걸쳐 잘 이뤄진 원사는 내부 심지까지도 인디고로 염색된다.

그렇다면 도대체 청바지는 세탁을 해야 하는 걸까 말아야 하는 걸까. 나름 청바지에 대한 내공이 있어 보이는 이 (풋)아저씨는 어떤 대답을 내놓으려고 이리도 구구절절하게 청바지의 특징을 설명했는지 슬슬 궁금할 테다.

"청바지를 세탁해도 되는가."라는 주제에 대한 나의 답은 "데님 원단이 가지고 있는 두 가지 특성만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면, 사람에 따라 취향에 따라 상황에 따라 뭐든 괜찮다!"라는 조건문으로 하겠다.


위 설명을 기반으로 데님은 대략 이렇게 분류할 수 있다. (나는 체계를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나의 경우, 리지드 데님의 경우 세탁을 하지 않고, 린스드 데님이나 샌포라이즈드 데님은 질릴 때쯤 세탁을 하는 편이다.

금번 발매한 lvc의 1901501과 풀카운트 1101. lvc의 1901501은 굉장히 비싼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구입을 했는데(..) 조만간 리뷰하는 것으로 하겠다.

데님의 원조인 LVC나 오사카 5 등 데님 복각 브랜드의 리지드 데님의 경우 오리지널 모델의 디자인을 그대로 살려 만든다. 이러한 리지드 데님을 구입하는 동기는 당연하게도 제품이 가지고 있는 형태적인 아름다움과 인디고 특유의 진한 푸른색이다. 때문에 리지드 데님만큼은 제품을 온전히 보존하고 싶은 욕구가 커서 세탁을 하는 것이 꺼려진다.


린스드 데님은 이와 다르다. 워싱 과정을 거친 데님의 경우 원본에 대한 정확한 재현보다는 브랜드 내부의 시선이 주가 되는 경우가 많다. LVC의 경우, NEVADA처럼 발굴된 모습 그대로의 데님을 워싱과 컷팅을 통해 재현해내기도 하는데, 이러한 제품을 더욱 즐기기 위한 방법으로 나는 갱년변화를 선택한다.

동생에게 건네준 lvc 90501 리지드와 15501. 너무 잘 입고 다니는 바지들이라 여러벌씩 구비한다. 15501은 갱년변화가 눈에 띈다.

때에 따라서 리지드 데님도 세탁을 하는 경우가 있긴 하다. 바로 같은 바지를 사이즈별로 구비한 경우다. 같은 바지를 여러 개 사는 것은 가장 안전하고 다채롭게 데님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이다. 그날의 주머니 사정에 따라서 다르긴 하지만, 사실 나는 마음에 드는 데님은 두 벌씩 구입하는 편이다. 특히 리지드 진의 경우 구입 할 때 다른 사이즈의 데님을 두 벌 구입하는 경우가 잦다. 34 사이즈와 32 사이즈를 구입하여 각각 다른 무드로 착용하다가 질릴 때쯤 큰 사이즈의 바지를 세탁하는데, 이 역시 데님을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이다. 애초에 동생에게 물려준 데님도 다른 사이즈의 같은 제품이 있었던 모델이었는데, 둘 중에 하나는 언젠가 세탁기로 들어갈 운명이었다.


비록 상이용사가 되어 돌아온 푸른빛의 콘밀 데님을 바라보며 비통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다른 매력을 찾은 내 바지를 보며 약간은 뿌듯했다. 속상한 마음이 들었다면 단지 준비 과정이 없었던 탓이랄까.. 세탁으로 인해 100번도 넘게 착용하며 자연스럽게 잡힌 생활 주름엔 멋스러운 페이딩이 이뤄졌다. 무릎 뒷부분과 포켓 부분을 비롯해 주름이 지는 곳곳에 물이 빠졌고 섹시한 분위기를 냈다.

데님을 세탁하는 것은 영영 돌아오질 못한 강을 건너는 것처럼 보일 테지만, 갱년변화는 청바지를 즐기는 여러 가지 방법 중 하나일 뿐이다. 그저 자신의 취향에 따라 세탁하거나 세탁하지 않거나 하면 된다.


얼마 전, 오랫동안 활동해 왔던 네이버 패션 커뮤니티에서 한 브랜드를 두고 격렬한 논쟁이 일어나고 있는 현장을 목격했다. 자유민주주의에서 다양한 의견이 생겨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지만, 그것은 민주주의보다는 폭압에 가까워 보였다. 현장의 사람들은 자신의 입장에 따라 편을 갈라 서로를 비난하기 바빴다.


아주 오랫동안 옷을 좋아하고 사랑했던 (풋)아저씨의 눈에는 브랜드의 귀천을 가르고, 입는 방식을 따지고, 장르를 구분 지으며, 타인의 멋을 흉내내는 요즘의 패션신이 조금은 어색하고 불편하다. 옷은 그야말로 문화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애초에 옷이라는 장르로 누군가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지만)에서는 무엇이든 개인의 취향과 안목이 가장 중요하다. 적어도 패션에 관해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자신의 삶의 양식에 어울리는 스타일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또, 나와 다른 상대를 만났을 때 인정할 수 있는 자세와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삶과 도덕과 법치에는 분명히 옳고 그름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나지만, 문화와 즐거움에까지 그러한 잣대를 들이댄다면 삶은 필시 삭막해질 것이다. 스타일에 대한 가부를 따지기 이전에 자신의 취향을 깊게 파악하고, 자신의 것만큼 중요한 타인의 멋을 존중할 수 있다면 청바지를 빨아 입던 빨아 입지 않던, A 브랜드를 좋아하든 B 브랜드를 좋아하든, 우리는 그저 사랑하는 패션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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