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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ngdaeone Apr 14. 2023

반스는 어떻게 젊음의 상징이 되었을까?

(풋) 아저씨의 패션이야기 (3) : 브랫 팩과 숀 펜, 그리고 체커보드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 하루 중 내가 가장 좋아하던 시간은 하원 후 논스톱 4를 보는 순간이었다. 방송을 하는 날이면 시간에 맞춰 저녁을 먹으며 엄마와 함께 프로그램을 시청했다. 행여나 외부 일정이 있는 날이면 녹화를 해 다시 볼 정도였으니 꽤나 시청에 열심이었다.

정말 쟁쟁한 라인업이다. 당대를 너머 현재까지도 쟁쟁한 하이틴 스타들이 대거 등장했다.

논스톱 4는 대학교의 밴드부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뤘던 시트콤이었다. 개별 캐릭터부터 러브라인까지 지금 생각해 봐도 무엇 하나 부족하지 않는 프로그램이었다. 아직도 기억나는 에피소드들이 많은 걸 보면 초등학생의 머릿속엔 젊음을 담은 시트콤의 이팩트가 꽤나 강렬했던 것 같다.

특히 현빈과 한예슬의 러브라인이 아주 짜릿했는데, 나도 공부 열심히 해서 대학가면 당연히 저렇게 예쁜 여자친구가 생길줄 알았다. 근데 현실은..
검색해보니 YES24에 미개봉 새상품이 하나 올라와있다. 이젠 귀한 DVD나 테이프기 있어도 재생할 수 있는 매체가 없어 별 수 없다.

시리즈 막바지엔 OST 모음집도 출시됐다. 10년 인생 평생에 걸쳐 장난감 한 번 사달라고 떼 써 본 적 없던 내가 엄마를 졸라 테이프를 구입했던 기억이 난다. (사달라고 할 심산으로 마음을 굳게 먹고 이마트에 장 보는 부모님을 따라가던 때 얼마나 떨리던지ㅋㅋㅋㅋㅋ)

옛날엔 테이프 케이스를 열어보면 내부에 커버지가 들어있었다. 논스톱 4 OST 앨범의 커버지를 펼치면 10쪽짜리 포스터가 됐었다. 여기에 멤버들의 얼굴과 각 트랙의 가사가 써져 있었는데, 그걸 다 찢어질 때까지 들고 다니면서 가사를 외웠다. 당연히 테이프는 다 늘어져 소리가 안 나올 때까지 들었다.

남자셋 여자셋. 송승헌에게도 밀리지 않는 동엽형의 미모가 돋보인다.

한국의 세기말은 하이틴 스타들이 등장하는 시트콤의 황금기였다. “남자 셋, 여자 셋"부터 "세 친구", "논스톱", "하이킥 시리즈", "반올림", "드림하이"에 이르기까지, 10년여간 한국 방송사의 청춘물은 성공가도를 달렸다.

그리고 약 20년 전인 80년대에 하이틴 무비는 영미권 문화에서도 신드롬을 일으켰다. “BRAT PACK"으로 알려진 영미의 하이틴 스타들은 바로 그 주인공이다.

BRAT PACK

브랫 팩은 미국 할리우드를 평정했던 60년대생 청춘스타들을 칭하는 별명이다. 1985년도 뉴욕매거진의 특집 기사에서 처음 다뤄졌던 "Brat Pack"은 직역하자면 "애새끼들" 정도의 뜻이다. 브랫팩은 1980년대 초중반 하이틴 무비, 그중에서도 특히 <세인트 엘모의 열정>(St. Elmo's fire, 1985)과 조찬 클럽(The Breakfast Club,1985), 아웃사이더(Outsiders, 1983)에 등장했던 배우들을 지칭하는 별칭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톰 크루즈와 아이언맨 로버트다우니 주니어, 데미무어도 여기에 포함된다.

조찬클럽 스틸컷

이들 브랫팩이 등장하는 영화는 베이비부머의 라이프를 그대로 보여준다. 미국의 베이비부머는 1946~1964년에 태어난 세대를 칭한다. 대중문화사에 베이비부머는 큰 영향을 미쳤다. 이들은 오디오에서 TV로 대중문화의 패권이 넘어가던 시기에 청년기를 보냈고, 급격한 경제성장에 기인한 여유로움과 문화적 풍요로움을 모두 누렸다. 브랫팩은 베이비 부머 세대의 가장 마지막 타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영화들에서 브랫 팩은 이들 세대의  특성을 여실히 보여주었고,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게 된다.

베이비부머 세대들의 문화의 기폭제가 되었던 mtv. 우리나라로 치면 mnet과 같은 tv채널이었다. 라디오에서 tv로 대중매체의 페러다임이 넘어가게 된 가장 큰 계기가 되었다.

브랫팩이 등장한 틴에이저 무비는 수많은 청춘의 이정표가 되었다. 다수의 십 대들은 등장인물들을 따라 했고, 영상의 모든 주제는 신드롬을 일으켰다. 브랫팩은 음악과 패션, 언어, 라이프스타일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의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이러한 미국 하이틴 무비와 탑스타를 뮤즈 삼아 급격하게 성장한 브랜드가 있으니, 바로 DOGTOWN ERA의 상징, 반스다.

영화 리치몬드 연애소동의 스틸컷. 가운데가 바로 숀 펜이다.
너무나 잘 생긴 젊은 시절의 숀 펜. 영화를 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렇게 멋지게 나올 장면이 전혀 아니다.

"숀 펜(sean penn)"은 영화 "리치몬드 연애소동"에서 미치광이 "제프 스피콜리" 역으로 등장한다. 영화 속 제프는 괴짜다. 아무 데서나 옷을 벗는 것은 기본이다. 빵을 먹느라 수업을 빼먹거나 수업시간에 피자를 시켜 먹거나, 마약을 하고 교실에 등장하는 기행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프는 매력적인 캐릭터이다. 극 중의 모든 캐릭터는 사랑과 연애, 그리고 섹스에 미쳐있다. 제프는 유일하게 이러한 주제를 언급조차 하지 않는 인물이다. 그에게는 오로지 서핑과 먹을 것만이 관심사다. 이러한 캐릭터의 특별함에 미 전역의 십 대들은 빠져들었다. 리치몬드 연애소동 숀 펜이 묘사했던 "서퍼 보이" 이미지는 이후의 영화사에서 클리셰처럼 사용될 정도로 영향력이 대단했다.역을 통해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숀 펜은 브랫팩 명단에 당당히 자신의 이름을 올린다.

전형적인 서퍼맨의 이미지가 된 숀 펜의 제프 스피콜리. 긴 장발과 코에만 바른 선크림, 옆구리에 낀 스케이트보드와 아무렇게나 프린팅 된 티셔츠를 입은 서퍼맨의 이미지는 모두 그로부터 만들어졌다. 대중매체에서 등장하는 서퍼맨 클리셰는 숀 펜에게서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최 종잡을 수 없는 제프 스피콜리에게도 단 하나 일관된 속성이 있다. 러닝타임 내내 들고 나오는 체커보드 슬립온이다. 제프는 체커보드를 신기도 하고, 손에 들기도 하고, 심지어는 대마초를 하고 high해진 기분에 자신의 머리를 내리치는 도구로 사용하기도 한다.

숀 펜과 함께 등장하는 체커보드 모음. 이 장면 외에도 시종일관 반스를 착용하고 등장한다.
얼마나 시종일관 착용을 하고 나오냐면 DVD커버지의 제프 스피콜리도 체커보드를 신고 있다.

이러한 제프의 체커보드 사랑은 순전히 숀 펜의 취향으로부터 왔다. 신발을 씬 스틸러로써 사용하자는 의견을 냈던 것은 감독이었던 에이미 헥커링도, 시나리오작가인 카메론 크로우도 아닌 숀 펜 본인이었다.

캘리포니아 산타모니카 출신이었던 숀 펜은 에이미 헥커링에게 직접 반스의 체커보드 슬립온을 신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반스가 1966년 캘리포니아 애너하임에서 시작됐음을 생각해 보면 썩 이상하지도 않다. 부산 출신 배우가 발란사 모자를 쓰고 출연하는 것과 비슷하달까..)

당시의 반스는 레전드 스케이터보더인 토니알바와 스테이시페랄타에게 일종의 협찬을 해주며 인기를 끌어올리고 있었다. 이러한 캠페인의 연장선으로 숀펜과 리치몬드 연애소동에 자신들의 신발을 등장시킨 것인데, 이러한 선택은 탁월했다. <리치몬드 연애 소동>의 성공에 힘입어, 작은 회사였던 반스는 급격히 성장했다.

그리고 또 하나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난다. 반스가 세계적인 기업이 되는데 크게 일조한 “리치몬드 연애소동 - 페스트타임”의 영화 시사회에서 반스의 창립 2세대인 스티브 반 도렌은 아웃솔에 ”FAST TIME”을 새긴 체커보드를 무료 배포한다. 반 도렌의 아들이 하얀 슬립온에 그렸던 바둑판 모양의 신발은 그렇게 세기를 뛰어넘는 마스터피스가 되었다. 반스의 시대를 열어젖힌 이 신발의 오리지널 ver은 상품에 동봉된 스티커조차 상상할 수 없는 가격에 거래될 정도로 반스 역사의 상징이 되었다.

그리고 2020년, 반스는 이 페스트타임 체커보드를 복각하기에 이른다. 아웃솔과 인솔, 10oz의 헤비웨이트 컨버스, 스티치, 사이드월의 fast times 프린팅까지 당시의 반스를 완벽하게 재현했다. 애너하임 라인으로 출시가 되어 편안한 착용감까지 자랑했다. 리이슈 ver은 한정 수량으로 반스 공식 홈페이지와 전 세계 공식 디스트리뷰터들에게만 제공됐다. 유수의 반스 마니아들은 역사성과 희소성을 잡은 재발매에 열광했다. 바야흐로 시대를 관통하는 마스터피스의 등장이었다.

look ma cool vans~

누군가 내게 어쩌다 반스를 좋아하게 되었냐고 물은 적이 있다. 깨복쟁이 친구들 중에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형이 있는 친구가 있다. 형이 있는 친구들 보통이 그렇듯, 그 친구도 형을 통해 새로운 문물을 누구보다 빠르게 접하는 편이었다. 어느날 친구가 학원에 빨간 체커보드 슬립온을 신고 왔다. 형이 사줬다고 했다. 우상같던 친구의 형이 사다준 새로운 신발은 패션을 전혀 모르던 그 때에도 멋져 보였다. 그렇게 지금까지도 반스에 홀랑 마음을 빼앗겨 살고 있다.

젊음을 주제로 삼는 브랜드는 이렇듯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져 왔다. 반스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반스는 자신들의 근본을 잊지 않는 브랜드다. 30년 전의 하이틴 스타도, 2023년의 하이틴 스타도 반스를 신는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영화에 등장한 체커보드는 현재 나의 신발장에 들어있다. 젊음을 대표하는 브랜드의 정체성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고, 청춘이 존재하는 한 반스의 역사는 계속될 것이다. 물론, 나의 반스 사랑 또한 앞으로도 쭉 이어질 예정이다. (풋)아저씨가 아저씨가 되는 날까지, 아저씨가 할아버지가 되는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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