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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글 Mar 23. 2024

충전기의 마음가짐

결국은 해피엔딩

목요일의 작업실, 청소를 너무 열심히 해서 놓고 온 충전기

나는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효율을 얻으려고 한다. 그렇지만 욕심만 많을 뿐 정신이 없다. 카드와 휴대폰과 차키를 동시에 들고 바삐 움직이다 모두 떨구기도 하고, 무언가 한 가지씩 빼먹어 그걸 찾기 위해 다시 제자리걸음을 한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고치려는 생각은 없고, 어쩔 수 없는 나의 기질이라고 본다. 이런 덜렁거림은 의외로 일을 빨리 진행시킬 때 큰 장점이 되었다. 참 알 수 없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나는 정신없는 목요일을 보냈다.


나는 지금 휴대폰 충전기를 작업실에 놓고 왔다. 왕복 26분만 투자하면 충전기를 가지고 올 수 있는데, 다시 일터로 가기 싫어서 멀리 주차한 차로 돌아와 무선 충전을 하며, 아이패드로 휴대폰 데이터를 테더링해 글을 쓴다. 충전기에도 사연이 있다. 어느 날 충전이 되지 않아 확인해 보니 충전기 단자 부분에 충전부품이 박혀 빠지질 않는 거다. 검색해 보니 나 같은 일이 꽤나 자주 있는 일이고 수리비는 5만 원 정도 하는 듯했다. 당장 고치기 귀찮은 마음이 커서 맥세이프 무선충전기를 구매했다. 작업실에 무선 충전기가 하나 더 있지만 느리고 인식이 예민해 손이 잘 안 간다. 그러다 보니 며칠 전부터 집에서 쓰던 충전기를 챙겨가 쓰고 있다.


충전기를 가져갔으면 충전을 성실하게 했어야 하는데 이것 또한 귀찮아서 결국 하루 종일 충전을 안 하고 집으로 왔다. 주차를 하고 집에 들어가기 전 뭔가 싸한 기분에 가방을 뒤적거렸다. 충전기가 없다. 아 설마... 집에 있겠지라고 생각한 건 나의 착각이다. 그 순간 배고픔도 잊고 누워 있다가 얼마 안 남은 30퍼센트 배터리의 휴대폰으로 유튜브를 켠 채 청소를 했다. 깔끔해진 상태에서 고민을 했다. 작업실에 갈 것인가. 차에서 충전할 것인가. 나는 차를 선택했다. 어차피 늦게 자니까 차에서 그림이나 글을 쓰거나 공부를 하면서 사간을 보내야겠다며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충전기가 없으니 초조한 기분이 든다. 배터리가 얼마 안 남았다는 건 통장에 얼마 안 되는 금액처럼 아찔하고 불안한 마음이 생긴다. 글을 쓰고 있지만 저전력모드로 바꾼 휴대폰이 얼마나 충전됐는지 계속 확인하게 된다. 완충된 배터리가 얼마나 위대한지 지금 깨달았다. 충전기가 있는 마음가짐은 배터리가 3%가 되어도 안심한다. 바로 충전기로 충전하면 되니까 어려울 게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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