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리스트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짬이 나면 카페에 앉아 리스트를 끄적거린다.
쇼핑리스트, 여행 리스트, 올해 하고 싶은 일 리스트, 맛집 리스트.....
'시크릿'같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기록이 굉장히 큰 의미를 갖는다고 말한다.
막연히 하고 싶어 하던 것을 기록으로 남기면 언젠가 실천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럴듯하다.
기록하고 또 가끔씩 들여다보는 게 반복되면, 행동으로 이어질 때가 있다. 늘 머리 한편에 그 생각을 한 결과 이리라.
마침 '다시 쓰는 내 인생의 리스트'란 책을 읽게 됐다.
이 책의 저자는 인생의 모든 것을 리스트로 다룬다.
일상을 단순하게 만드는 리스트, 나를 더 잘 알기 위한 리스트, 나를 돌보기 위한 리스트.
작가는 리스트가 많은 인생이 풍요롭다고 주장한다. 지쳐가는 일상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 싶다면 리스트를 한번 작성해보라고 한다.
평소 생각지도 못한 종류의 리스트가 많아 나도 실험해봤다. 이를테면 '내 마음을 차지하는 다섯 가지 즐거움 리스트' 같은 것이다.
이 책에는 리스트가 수백 개 이상 나오는 것 같은데 랜덤으로 아무거나 골라잡아서 시도해 봤다. 그랬더니 의외로 생각이 많아졌다. 평소 막연하게 생각하거나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던 주제와 맞닥뜨렸기 때문이다.
1. '내 시간의 도둑 리스트'
요즘 나는 아무것도 생각하기 싫을 때나 그냥 피곤할 때 자동으로 유튜브에 들어간다. 구독 리스트에서 박막례 할머니나 관종 언니, 명상, 수영 동영상을 켜놓는다. 시청이나 감상이라 부르기도 뭣하다. 그냥 배경으로 틀어놓는다. 어제 본거랑 비슷해도 잘 모른다. 내 생활의 BGM이 된 것 같다. 습관처럼 틀어놓은 영상을 거듭 보다 보면 시간이 또 훌쩍 간다.
이전처럼 인터넷 커뮤니티나 SNS 보는 건 흥미가 떨어졌다. 읽기도 귀찮아졌나. 그저 멍하니 보고 듣는다.
현재 내 시간을 가장 빼앗는 것은 유튜브!!
2. '내가 더 이상 마음 가지 않는 활동 리스트'
참 재미난 리스트도 있지. 이런 주제는 생각해보지도 못했다.
이 질문에 답하면서 최근의 생활들을 들여다보았다. 위에 언급한 것처럼 더 이상 인터넷 카페 활동 같은 건 하지 않는다. 10년 전쯤 중독일 정도로 몇 개 이 카페나 커뮤니티에 매여 살았다. 눈만 뜨면 접속해서 글을 읽고 댓글을 쓰고, 웃고 화냈다. 그러다가 어떤 이유로 홧김에 모두 탈퇴했다. 이후에 금단현상 같은 게 생겨나 다시 가입하려 했으나 되지 않았다. 사이버 세계의 관계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게 된 사건이었다.
그런 중독이 지금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이젠 잊혔다.
또 한동안 나를 괴롭히다가 사라진 게 이전 직장에 관한 것이다. 회사를 나오고 몇 달을 전 직장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내가 미웠다. 다시 가고 싶지도 않고, 미련이 있던 것도 아닌데 인간관계가 이전 직장 동료와 얽혀있다 보니 그랬다. 괴로웠다. 그 회사가 잘되면 잘된 대로, 못되면 못된 대로... 그래서 의도적으로 멀리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역시 시간이 지나고 내가 새 일을 하다 보니 존재가 사라졌다. 시간만큼 좋은 처방은 없는 것 같다.
요즘은 쇼핑도 그중 하나다. 쇼핑을 아주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틈나면 쇼핑 후기도 찾아보고, 갖고 싶은 것 리스트를 짜보았다. 그런데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일까. 지금은 물건에 흥미가 안 간다. 매장을 찾아가는 쇼핑은 거의 하지 않고, 필요한 게 있을 때마다 온라인 쇼핑을 주로 한다. TV홈쇼핑도 끊었다.
3.'내 마음을 차지하는 다섯 가지 즐거움 리스트'
요즘 생각만 해도 입가가 슬쩍 올라가는 게 뭘까, 그런 게 있기나 할까 하다가 몇 가지가 떠올랐다.
바깥에서 막 얘기하긴 그렇지만 파워풀한 여성 보면 힘이 난다. 관심이 간다. 더군다나 그 사람이 50대 이상이라면 더하다. 가끔 그런 사람의 뉴스가 나오면 저장한다. 나도 그럴 기회가 있으면 바라기도 한다. 자격이 있냐 없냐를 따지기보다는 판타지처럼 상상해본다.
또 연장선상일 수 있는데 운동대회 나간 나를 상상한다. 아마추어 수영대회, 그리고 풀코스 마라톤대회 나가서 메달을 딴 나를 떠올리면 바로 행복해진다. 이건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을 것 같다. 비록 메달을 딴다거나 좋은 실적을 기록할 순 없더라도 대회 참가는 노려볼만하다.
그리고 늘 꿈꾸는 장면이 하나 있다. 그리고 머릿속에 그림만 그려보아도 즐겁다. 숲 속 나무집, 단출한 살림살이, 뜨거운 커피.. 이런 로맨틱한 그림이다. 언젠가 숲 속 작은집을 내 집으로 하고 싶다. 너무 몽상가일까. 누구나 하고 싶은 거겠지?
거기서 자연과 함께 늙어가고 싶다. 그러다가 생을 다할 때 내가 가진 모든 소유물과 에너지도 다 쓰고 육신 하나만 남기고 싶다.
리스트를 많이 가지는 것 만으로 부자가 된 느낌이다.
리스트를 작성하는 것뿐 아니라 하나하나 실천하고 이를 지워나간다면 내 인생은 진짜 풍성해질 것 같다.
사소하고 다양한 리스트를 잔뜩 만들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