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머리 앤은 어릴 때부터 나의 베스트 작품이다. 내가 기억하는 앤의 이미지는 일본 애니메이션 캐릭터였다. 사랑스러운 수다쟁이, 주근깨 소녀 앤.
넷플릭스에서 시대의 요구를 가득 담아 재탄생한 'Anne with an e'는 어린 시절에 좋아했던 앤의 세계를 몇 배는 확장시켜주었다. 앤을 다시 이해하게 되었고, 마릴라, 매튜, 다이애나 등도 새로운 관점에서 보게 되었다.
소설이든 애니메이션, 드라마에서든 앤과 다이애나의 빛나는 우정은 보는 것만으로 가슴 벅차다. 정말 부러웠다. 저런 친구 한 명만 있다면 세상 살아가는데 두려울게 무엇이랴. 한걸음에 달려가 친구와 포옹하며 격한 감정을 나누고, 슬플 때나 기쁠 때나 가장 먼저 찾아가 모든 것을 나눌 수 있는 사람. 인생의 가장 값진 보물을 얻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앤과 다이애나의 그림 같은 우정을 경탄하다가 금세 현실로 돌아왔다. 어린 시절의 친구란 존재는 한 때 아니던가. 내 초등 친구, 중등 친구는 흔적 없이 사라졌다. 고등학교 친구가 그나마 오래가지만 결혼 이후 이런저런 세월 속에 각자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거듭해가면서 관계는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나는 어릴 때 친구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당시 떠올려보면 나뿐만 아니라 또래 여자애들이 비슷했던 것 같다. 내 단짝이 남이랑 더 잘 어울려 노는 것 같으면 그날은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수많은 쪽지를 주고받고, 각종 이벤트를 만들어 우정을 확인하려고 했다. 그런 친구욕심이 중학교 사춘기에 극심해졌다가 고등학교를 들어가면서 해탈 지경에 이르렀다. 입시공부에 전념한다는 개인 목표가 생겨서인지 친구에 대한 애착이 이전 같지 않게 됐다. 그저 틈날 때 대화하는 정도로 족했다. 그래서 나를 단짝이라 여겼던 많은 친구들에게 배신감을 안긴 기억이 있다.
친구, 벗. 요즘은 베프, 절친.
누구나 갖고 싶지만 쉽지 않은 것이다. 아무리 인간관계가 좋아 보이는 사람도 들여다보면 진정한 친구가 없다는 말들을 한다.
나는 사실 직장 생활하고, 가족 돌보고, 내 앞가림하느라 친구라는 존재를 잊고 지내왔다.
동료는 있고, 아는 사람은 많지만 친구는 '글쎄...', 이런 상태였다.
그런데 코로나 블루의 영향이었을까. 옛 친구가 보고 싶었다.
갑자기 알고 지낸 지 30년 된 친구에게 연락을 했고, 친구는 한걸음에 나를 만나러 와 주었다.
우리는 1년에 두어 번 정도 만나는 사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 친구와는 결혼 전 워낙 친하게 지내 가끔 만나도 어색하지 않다. 그동안에는 시간에 쫓기듯 만나서 안부를 얘기하는 정도에 그쳤다.
그러나 이번 만남에서는 수십 년 만에 서로 속내를 하나둘씩 내보였다.
20대 때는 진로, 연애 문제 일상의 사소한 얘기가 주로 우리 대화를 차지했고, 그때도 꽤 속 얘기를 많이 나눴다.
그런데 30년이 지나 50대를 넘고 보니 그 무게가 또 남달랐다. 사회에서 만난 지인들에게는 쉽게 말하지 못하는 이런저런 사정들을 눈치 보지 않고 말하기 시작했다. 남들 보기엔 그저 그런 것들이다. 드라마틱한 내용은 없다.
자녀와의 갈등, 인생의 절반을 넘어 후반으로 접어든 시점에서 회의감, 타인과의 비교 등등.
제삼자가 보기엔 누구나 갖고 있는 문제지만, 그럼에도 각자한테는 어려운 일이다. 그걸 하나씩 꺼내놓으니 참 신기하게도 비슷하기도 했다.
" 아직도 이런 고민을 하다니, 내 새끼 좋은 얘기만 밖에다 하고 싶은데, 나만 뒤처진 것 같아, 그때 그럴 걸 그랬어"
그래, 우린 각자 잡동사니 걱정 바구니를 끌어안고 끙끙대며 살았는데 펴보니까 비슷하구나.
내 문제는 못 풀면서 친구한테는 나름 조언을 해주었다. 친구는 이전에 미처 나에게 직접 하지 못한 나의 변화된 모습에 서운했던 점도 말해주었다.
그저 좋았다. 고민이 비슷해서 좋았고, 편하게 말할 수 있어 좋았다.
친구와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에 진부하기 짝이 없는 명제가 떠올랐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
마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는 문장처럼 아무런 느낌이 일어나지 않는 글귀. 한 번도 깊게 생각해본 적 없는 이 말이 내 가슴으로 들어왔다.
기쁨, 즐거움이라는 것, 행복이라는 추상적인 단어. 이것들을 내 것이라고 느낄 수 있는 때는 누군가와 나눌 때였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하는 사람과 감정을 공유하고, 타인의 상황에 공감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지 않을까.
나는 그동안 혼자이고 싶었고, 혼자 하는 일을 추구했다. 타인이 필요하다고 여긴 적이 거의 없었다. 지금의 나는 분명 이전의 나와는 다른데, 이게 저물어가는 내 인생을 절감해 필요로 하는 인생의 정수인지, 아니면 일시적인 코로나 우울의 영향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이유는 따져 묻지 않기로 했다.
먼 훗날에도 기억 속에 강하게 남을 2020년을 두 달 남겨놓고, 나는 그동안 스쳐 지나쳐왔던 많은 사람들, 친구들, 가족들, 동료들에게 조금 더 다가가서 그들의 얘기를 들어보기로 마음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