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들과 생일을 축하하면서도 "생일 축하해. 그런데 어느새 이렇게 나이가 많다니.." 하고 씁쓸한 인사를 건넨다.
그래. 어쩌다 50이라는 숫자를 넘어 차곡차곡 많이도 나이를 먹었단 말인가.
나는 아직도 1990년 겨울이 또렷이 생각나는데 말이다.
1990년 나는 대학교 인근에서 하숙을 하고 있었고, 하숙방에는 지금 노트북 모니터만 한 브라운관의 TV가 있었다. 그해 겨울에 나는 최진실이 주연으로 나오는 무슨 단막극을 보고 있었다. 따뜻한 온돌방에 담요를 덮고, 종이로 된 라면박스 위에 올려놓은 TV를 보면서 즐거워했다. 나름의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었다.
대단한 열풍을 불러일으켰던 영화 '사랑과 영혼' 당시 개봉관에서 보지 못했는데, 사실 아직까지 이 영화를 보지 않았다 ㅎㅎ . 너무 많이 얘기들어서일까.
또 크리스마스이브인가? 장안의 화제였던 '사랑과 영혼' 영화를 보러 종로에 나갔다가 모든 표가 매진돼서 '아비정전'을 보러 갔고, 그저 홍콩 액션 영화인 줄 알았으나 지루하기 짝이 없는 영화여서 10분쯤 보고 나온 기억도 선명하다. '아비정전'으로 아마 '저주받은 걸작'이란 말이 생겨났었나? 그건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30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아무것도 변한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거울을 보기 전까지는.
그러나 거울을 보면 내가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낯선 중년의 여인이 있다. 1990년 당시 나의 두세 번째 고민이었던 통통함은 다 사라져 버렸고, 볼살이 푹 들어간 여인이 서 있다.
이번 겨울, 코로나바이러스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30년의 지나간 세월과 앞으로의 시간을 생각하게 되는 일이 더 많아졌다.
이심전심인가. 고등학교 동창이 카카오톡으로 툭 던진다. "해놓은 것도, 쌓아놓은 것도 없이 나이만 먹었네"
지난 30년 꽤나 열심히 살아온 것 같은데, 고군분투했던 것 같은데..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까?
1990년은 대학교 4학년이었고, 지금 생각하면 너무 어렸지만 혼자 독립해 살아가면서 닥쳐올 사회생활을 위한 계획을 세웠다. 엄청난 희망이 있진 않았지만, 사회인으로서 나는 어떻게 살아갈까, 사회를 위해선 어떤 역할을 할까, 결혼생활은 어떨까 라는 갖가지 그림들을 갖고 있었다. 젊었고 앞날이 훨씬 더 긴 것에 대해 기대 반 두려움 반이었다.
2020년.
30년 전 흠모하며 봤던 배우 최진실은 세상에서 사라진 존재가 됐고, 사랑과 영혼의 데미 무어는 파란만장의 시간을 거쳤던 것 같은데 현재는 잘 모르겠다.
나는 1991년 떨리는 마음으로 어느 직장에 들어가 지금까지 몇 번의 휴지기를 거치면서 직장생활을 해오고 있다. 결혼도 했고 자녀도 낳아 이제는 성인이 됐다. 사회를 위해서는 어떤 역할을 했을까. 20대 시절 바랐던, 의미 있는 역할을 했을까.
인생에서 쌓아 올리는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한 개인으로서 조금씩 영역을 넓혀왔다고는 자부한다. 내 자리에서 종종걸음 하면서도 어느새 꽤 먼 자리를 확보했으며,그 자체만으로 '대견하다'고 토닥여주고 싶다.
돌아보면 긴 길을 걸어왔다. 그러나 너무 빨리 걸어와서 , 뛰어와서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앞으로는 천천히 길 가의 풍경들을 음미하며 가고 싶다. 넘어진 사람에겐 손도 내밀고, 누가 쉬어 가자고 유혹하면 같이 쉬기도 하면서.
그래서 길의 마지막에 다다랐을 때, 편안한 미소를 짓고 싶다.
그때 나는 2020년 겨울을 또 선명하게 기억할 것이다.
"코로나라는 바이러스로 사람들과 거리를 두며 혼자 많은 시간을 보냈다. 집에 머물러야 하는 아이들과 넷플릭스에서 '더 크라운'을 감동적으로 함께 봤었지. 아침에 일어나 내가 내리는 커피 한잔과 맛있는 빵 한 조각의 시간을 고대했고, 주말에 운동을 열심히 한 뒤 뜨거운 물에 샤워하고 나오는 순간 '아 좋다'를 내뱉었다. 그때 나름 좋았네..."
더 크라운 시즌 4. 중학생 때 여학생 잡지마다 등장했던 다이애너 왕세자비와 똑같은 옷을 입은 배우를 보니 감개무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