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처럼 동네 친한 언니와 늦은 저녁 산책하고 있는데 지나가는 반려견을 보며 불쑥 언니가 하는 말이다.
암요, 암요 완전 별로지요!!
예전 같으면 10000% 공감하고도 남을 말인데 내색하지 않았지만 내심 살짝 속이 상한다.
나는야 명실상부 반려묘 이브의 집사인 건 언니도 잘 아는 사실이다.
저녁이면 우리 집 앞 라베니체 수로에 반려동물과 함께 산책 나온 사람들이 많다. 물론 일부 몰상식한 주인들 때문에 처리 못한 용변이 나뒹구는 꼴도 보고, 반려동물이 갑자기 달려들어 놀라기도 한다. 이건 나도 정말 화가 난다. 반려인구 1500만 시대라는데 이쯤 되면 반려동물 키우려면 기본자격검증제 필수교육이수 같은 제도적인 장치가 필요해 보이긴 한다.
퍼질러 자는 이브
이브는 우리 집 고양이다. 흰색 페르시안이고 동물병원에 가면 미묘라며 주변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래요 맞아요 얘 주인이 나예요. 나 완전 부럽지요?'
괜히 내 어깨에 뽕이 쑥 올라갔다.나 예쁘다고 하는것보다 좋다. 하지만 외부자극 스트레스에 민감한 영역동물인 고양이 특성상 어릴 때 필수 예방접종과, 중성화 수술하러 몇 번의 외출을 제외하고는 우리 이브는 바깥구경을 베란다 창문에 매달려서만 한다. 그러니깐 이브 때문에 불편한 건 오로지 나뿐이다. 털도 내가 관리, 용변도 나만 치우고, 밥과 간식도 내가 준다. 밤이면 우다다다 후닥후닥 뛰어다니고 또 새벽 일찍 일어나 츄루 달라고 목청껏 나를 깨운다. 그리고는 종일 퍼질러 잔다. 식탁 위에 차려놓은 꽤나 비싼 나의 그릇들을 뒷발로 차서 다 떨어뜨려 깨뜨리고, 산지 얼마안된 반뚝접어지는 나의폰을 깨물어 액정이 깨져도 욱~ 버튼이 안 눌러진다. 울 애들이 그랬다면 목이 쉬어터지도록 잔소리를 고래고래 질렀을 것이다. 이유가 뭔지 잠깐 생각해 봤다. 이브한테는 바라는 게 없다. 그냥 건강히 내 옆에서 살아주면 땡큐인 것이다. 그게 다다. 코, 빵야, 돌아, 손, 앉아 기다려 등의 강아지는 잘만하는 그 흔한 개인기 하나 없다. 바라지도 않는다. 도도냥 이브가 지나가는 길에 이유 없이 또는 갑자기 피곤했는지 하늘 보고 배를 까며 벌렁 누우면 그게 그저 기특하고 예쁘다. 귀엽고 사랑스럽다.
분명 반려동물이 별거 아닌 동물일 뿐이지만 우리집 개 또는 우리집 고양이는 분명 별거가 맞다.아기고양이가 성묘가 되고, 할머니냥이 되어가는 동안 함께 할 것이다. 기쁘고, 슬프고, 놀라고, 화나고, 토라지고, 풀어지고 수많은 감정을 교류하는 특별한 별거이다. 그러니깐 반려동물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말아 주시길... 나같이 고양이 극혐하던 사람도 집사가 되었다면 누구라도 언제라도 집사나 견주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