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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나 작가를 만나 어른의 자리를 배우다

빈곤과 청소년, 10년의 기록

by 지언 방혜린

“나는 성장하고 싶은 어린 생명이 가난이란 굴레와 가족으로 인해 어떤 영향을 받고 굴절되고 다시 일어서는지 그들의 목소리로 기록하고 싶었다. 그 안에는 세상에서 흔히 통용되는 가난에 대한 인식이나 이미지와 다른, 삶에 대한 통찰과 지혜가 있었다. 나는 청소년들이 삶에서 얻어낸 그 통찰과 지혜를 학문적으로 담아내려고 했다.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본문 중에서-

고백하자면, 나는 청소년, 그것도 나와 직접 상관없는 아이들의 가난에 대해 크게 관심이 없었다. 내 삶이 바쁘고, 내 아이들을 키우는 일에만 온 신경이 쏠려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돕는다면, 우리 아이들이 성인이 된 후에 생각해 보겠다고 마음 한편에 넣어 두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절대빈곤 속에서 살아가는 아프리카 아이들의 영상을 볼 때면 마음이 미어지게 아프다. 당장이라도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 그 아이와 가족에게 무언가 해주고 싶은 충동이 들곤 한다. 그래서인지 나는 10년째 아프리카 한 소녀를 후원하고 있다.


그 시작은 초등학교 1학년이던 아들이 학교에서 한 후원기관의 영상을 보고 “나도 도와주고 싶다”라고 말한 것이 계기였다. 우연히도 인연이 닿은 그 소녀는 아들과 같은 2009년 1월 1일생이었다. 우리 가족은 ‘운명 같다’며 신기해하던 기억이 난다. 처음 보내온 사진 속 어색하고 경직된 미소가 10년의 세월 속에서 점점 환한 빛으로 피어나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우리 가족에게 큰 기쁨을 선물해 주었다.

매달 자동이체로 빠져나가는 적은 금액, 그리고 가끔 서로의 꿈과 안부를 나누던 편지 한 통이 과연 그 아이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었을까?라는 생각으로 부질없다 치부하던 세월도 있었지만 아이의 변화하는 표정을 보는 경험은 특별했다. 작은 흑진주 같은 아이가 조혼이라는 이름 아래 인권이 유린되는 그 나라에서, 결혼이라는 미명 아래 인신매매의 희생양이 되게 두지는 않았다는 건 시작할 때는 몰랐던 사실이다. 아프리카의 나의 가족 ‘운드 아디세’는 아직 학교를 잘 다니며 의사의 꿈을 키워가고 있는 듯하다.

나는 ‘이 정도면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인류에 대한 책임과 연민의 몫을 조금은 하지 않았을까’ 하는 자기 합리화로 마음의 불편함을 덜곤 했다. 그리고 ‘언젠가 국내의 어려운 아이들을 돕는다면 단순한 금전적 후원이 아니라, 몸과 마음을 직접 보태는 적극적인 형태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막연히 키워왔다.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생각에만 머물러 있고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중이다.

올해 5월 우리 동네 인근에 예쁜 ‘모담도서관’이 개관했다. 자연과 조화를 이룬 건물 외관과 따뜻한 인테리어 덕분에, 이미 다녀온 지인들은 ‘책 읽을 맛이 난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집에서 엎드리면 코 닿을 거리에 도서관이 있는 도세권에 살고 있는 나는 특별한 계기가 없다면 쉽게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기지 못할 것 같았다. 일부로 들을 만한 강좌를 찾아보다가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의 저자, 강지나 작가의 강연이 눈에 들어왔다.

강연의 주제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고군분투하는 청소년들을 위해 우리 사회가 해야 할 일’이었다. 나의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결코 넉넉하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가난’이라는 단어를 본능적으로 외면하고 싶을 때가 많았다. 그런데 강연 안내문에서 내 마음을 붙잡은 문장이 있었다. 바로 ‘가난한 청소년을 위한 어른의 역할’이라는 구절이었다.

가난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불편하지만, 그 아이들을 위해 한 번쯤은 들어봐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성숙한 어른의 자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가난이 아이들의 선택은 아니지만, 마음까지 가난하게 살아가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물론 부자라고 해서 마음까지 부자인 것은 아니지만, 가난 속에서 빈곤의 대물림을 벗어나지 못한 채 암울한 현실에 갇혀 사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적어도 들어볼 수는 있지 않을까 싶었다.

강연은 평일 저녁이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차를 몰고 나서기에는 다소 귀찮은 시간이었지만, 나는 모담 도서관으로 향했다. 청소년 관련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왠지 따뜻하고 푸근한 인상일 것이라는 나만의 선입견이 있었나보다. 내가 만난 강지나 작가님은 내 예상과 달랐다. 작고 마른 체구에 다소 날카로운 인상이었다. 아마도 수업을 마치고 곧장 강연장으로 온 듯, 피곤함이 묻어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만은 매우 또렷했고, 교사로서의 단단함이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고등학교 영어 교사인 강지나 작가는 학교에서 만난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이해하고 돕고 싶은 마음으로 학교사회복지 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녀는 빈곤 청소년 8명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하고, 그들이 청년이 되어가는 과정을 10년 동안 추적하며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책 속에는 청소년이었던 아이들이 성인이 된 후 어떻게 변화했는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우울을 견디며 살아가는 소희, 바르고 성실한 모범생 영성, 언제나 긍정의 에너지를 잃지 않는 지현, 깊은 우울의 그늘에 가려진 연우, 그리고 벗어나기 힘든 빈곤의 굴레에 갇힌 수정. 그 외에도 현석과 우빈 등, 각기 다른 환경에서 제각각의 삶을 살아가는 8명의 아이들이 있었다. 작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꾸밈없이 기록하며, 그저 ‘관찰자’가 아닌 ‘동행자’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강연을 듣는 내내 ‘빈곤의 대물림’이라는 말이 뼈아프게 다가왔다. 우리 사회의 구조는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결코 빈곤에서 벗어날 수 없도록 설계되어 있다. 열심히 공부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어떻게든 살아보려 애쓰는 이들이지만, 앞을 가로막는 것은 언제나 보이지 않는 사회의 벽이라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강지나 작가 역시 교사이자 학교사회복지사로서 아이들을 직접 만나며 도우려 했지만, 제도의 한계와 형평성의 문제, 냉담한 행정의 벽에 수없이 부딪혔다고 한다. 그녀는 그 과정에서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 “소외된 사람들을 만날 때는 데이터를 믿으면 안 된다. 그들의 삶과 맥락을 보아야 한다.” 숫자로는 결코 담을 수 없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질적 연구, 즉 사람의 마음과 경험을 읽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이었다.


“2000년 초반, 학교사회복지법안이 통과될 것 같았는데 결국 무산됐어요. 경기도에서는 채용과 고용 문제로 갈등이 심했고, 교육청은 교복사업을 복지사가 아닌 교사가 맡게 하면서 학교사회복지사인원이 점점 줄었죠.”

교복사업과 빈곤 청소년 지원이 무슨 상관이 있을까.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현실 앞에서 나는 한동안 말을 잃었다. 이 책이 왜 세상에 나와야 했는지 이유가 분명해졌다. 강지나 작가는 개인의 힘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걸 깨닫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이 책을 썼던 것이다. 교사로서의 일을 마친 뒤, 고단한 몸으로 평일 저녁 강연을 하며 사람들에게 빈곤 청소년의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작고 단단한 체구로, 누구보다 큰 울림으로 사회의 변화를 꿈꾸는 사람. 그녀는 누군가에게는 교사였고, 또 누군가에게는 세상의 희망이었다. 강연을 들으면서 나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들어주는 것밖에 할 수 없는 나,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결국 그것은 ‘관심’이었다. 관심이 시작이 되어야 변화가 생긴다.


강지나 작가가 보여준 건 단순히 ‘도움’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사회의 책임이었다.

빈곤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며, 노력으로만 해결되지 않는다. 희망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아이들에게 손을 내밀어야 하는 건 어른들이고, 그 어른들의 연대가 사회를 바꾼다. 보편적인 제도 개선과 불평등의 해소 없이는 빈곤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 교육과 돌봄, 안정된 주거를 기본권으로 보장하려는 헌법 개정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그 움직임이 바로 희망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강지나 작가는 막연히 “가난한 아이들을 돕자”라고 말하지 않는다. 학교 사회복지의 근본적인 문제, 문제인식을 자각하게 하려는 시작, 사회가 빈곤가정의 아이들을 돕기 위한 준비와 노력이 우리의 미래를 얼마나 바꿀 것인 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학교에서 하루를 마치고 강연을 준비하고 있을 강지나 작가를 떠올린다.

그녀의 작지만 단단한 걸음이 우리 사회에 긴 울림을 남기길 바라고 무한 응원을 보내며, 나 또한 내 자리에서 그 울림에 응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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