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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 보낼 용기, 송지영 작가 북토크

by 지언 방혜린

동갑내기, 같은 학번, 딸과 아들의 엄마,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글쓰기를 좋아하며 아날로그를 사랑한다.

글 속 단면에서 엿본 그녀는 음악도, 미술도, 패션도, 유행도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을 만큼 모자라지 않게 관심이 많다. 이점까지 나와 비슷한 우린 삶의 수많은 씨실과 날실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어쩐지 비슷한 결의 사람으로 닮아 있었다.


예고 없이 시간의 틈을 비집고 나타난 그녀의 글은 제어할 수 없는 속도와 무게로 브런치 마을에 떨어진 유성(流星) 같았다.

작가의 글을 처음 만난 날, 나는 밤을 통째로 내어 단숨에 읽어버렸다. 그 긴 밤은 찰나처럼 지나갔고, 아프지만 따뜻했고, 슬프지만 건조했다. 몇 번이고 되읽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자주 들르는 그녀의 글밭은 내 일상 속 작은 숲처럼 자리 잡았고, 그렇게 조금씩 소통하면서 자연스레 ‘한 번쯤은 만나게 되겠지’라는 예감이 마음 한편에 자리했다.


바쁘게 흘러가는 동안, 매 순간은 깊고 진했지만, 모든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버려 도둑맞은 듯 사라진 나의 2025년. 겨울의 문턱에서 송지영 작가의 출간과 더불어 북토크를 한다는 소식이 우연히 내게 닿았다.


삶의 분주함 속에서 터득한 게 있다면 소소한 결정 앞에서 오래 망설이지 않는다. 직감에 의지하는 횟수가 늘었다. 50 평생 쌓아 올린 하찮은 이성보다 직감이 훨씬 더 정확하고 똑똑하다는 걸 이제야 선명히 안다. 단지 이 사실만으로도 삶의 많은 부분이 단순해지고 명료해졌다.


북토크 공지를 보자마자

‘아, 드디어 만나겠구나!’

직감이 시키는 대로 두 번 생각 없이 신청을 마쳤다.

그리고 당일 아침, 휴대폰 알람이 친절하게 일정을 알려주었다.


주말 오후의 일정이었기에 예배 후 바로 참여할 요량으로 아침부터 서둘렀다. 바빴지만 가장 좋아하는 네이비 색 꽃 자수 손수건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꺼내 쓸 일이 없기를 바라면서도, 종일 주머니 속에서 만지작거린 작은 안정제였다.

일요일 오후, 망원동 망원시장 앞은 늘 그렇듯 분주했고, 주차장은 어느 한 칸도 쉽게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몇 바퀴를 돌고 돌아 가까스로 주차한 뒤 도착한 ‘베리어 프리 동네서점 테일탱고’는 사람들로 빼곡히 차 있었다.


10분 정도 늦어 북토크가 이미 시작한 후였다.

맨 뒷 쪽에 조용히 앉아 담담히 이야기를 이어 나가는 송지영 작가를 힐끗 보았다.

그동안 또 오면서 내가 생각했었던 모습은 아니었다. 큰 키에 훨씬 더 매력적이고, 단단한 모습이기에 이유 모를 안도감이 들었다. 차분하고 단정한 목소리에서 안정감 마저 느껴졌다. 굳이 바라보려 하지 않고 눈을 감고 귀로만 들어 보기로 했다.


양극성 장애 진단을 받고 오래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난 딸.

그렇게 떠난 딸을 잃은 엄마의 이야기를 담아 브런치에 연재를 시작한 ‘널 보낼 용기’가 마침내 한 권의 책이 되어 세상에 나왔다. 어쩌면 이미 예정된 출간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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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CD 국가 중 20년째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누구 하나 용기 내어 목소리를 담아 세상에 외친 책은 단 한 권도 없다고 했다. 이 점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나 또한 공저로 참여한 '엄마의 유산'에서 '너, 살아있니?'라는 제목으로 생명의 소중함에 대한 글을 썼고, 12월 출간을 앞두고 있다.


모두가 아픔을 외면하고, 또는 상처를 치부하고, 덮어놓고 잊고 살아내기 바빴다. 필요는 하지만 그게 굳이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아픔을 감수하며 내가 되어야 한다고 감히 용기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나 역시 오래전 가족을 잃은 슬픔을 마음 깊숙한 상자 안에 넣어둔 채 꺼낼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 나에게 그녀의 선택은 건강했고, 살아내겠다는 의지이자 희망이었다.


딸의 마음을 되짚어 보며 이해해 가는 과정에서 그녀의 글에는 회복과 치유의 싹이 돋아나고 있었다.


“상처는 치부가 아니라 환부이다.”


그녀의 말처럼, 상처를 숨기고 가리면 곪을 뿐이다.


우울에도 밝음이 있고, 밝음에도 우울이 있다.

빛과 어둠은 하나다. 빛은 어둠을 품지만, 어둠은 빛을 품지 못한다.

송지영 작가와 ‘널 보낼 용기’에는

어둠과 같이 있지만 명확히 분리되고,

붙어 있으면서도 온전히 포함되고,

양립하지만 넉넉히 품어내는 빛이 있었다.

우울 속에서 피어난 밝음으로,

어둠 속에서 길어 올린 환한 빛으로,

이 책은 깊은 밤 숲 속을 홀로 걷는 누군가에게 반드시 닿을 것이다.


슬프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모든 슬픔이 꼭 축축하고 짙게 갈아 앉기만 한 건 아니다.

픔이 다른 형태의 사랑으로 변할 수 있음을 전하고자 하는 송지영 작가의 의도는 정확히 색을 발하고 있었다. 다만 감정의 분리는 꼭 필요하다. 사실을 인정하고 직시한 뒤, 빛으로 채워 희석시키는 것.

그것이 송지영 작가의 선택인 것이다.


그녀가 용기 내어 세상에 건넨 희망처럼, 나도 그녀에게 내가 사랑한 영화 ‘굿 윌 헌팅’ 속 로빈 윌리엄스의 대사를 건네고 싶다. 나 또한 많은 위로를 받은 대사이다. 이미 너무나도 잘하고 있는 사람이지만, 불현듯 어둠이 들이밀어 마음을 흔드는 순간 앞에서

“네 잘못이 아니야.

It’s not your fault.”

를 대뇌이면 좋겠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문득 내 주머니 속에 손수건이 있었다는 사실을 완전히 잊고 있었다는 걸 떠올렸다. 북토크 내내 꺼낼 일은 없었고, 나는 그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더 깊숙이 밀어 넣어 두었다.


그녀를 만나고 온 다음 날, 책이 2쇄에 들어간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 소식을 들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용기는 결국 누군가에게 전염된다.”

어쩌면 그녀가 건넨 용기의 불씨는 내게도 스며들어, 지금 이 글을 쓰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렇게 이어진 한 줄의 이야기들이 또 누군가에게 조용히 빛이 되기를, 나는 조심스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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