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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오페라하우스

보는 것과 아는 것 사이

by 지언 방혜린

몇 해 전, 청담동 뒷골목에서 유명 가수를 마주친 적이 있다. 비 오는 날, 좁은 골목을 지나던 중 그와 정면으로 마주쳤고, 반가운 마음에 무심코 큰 소리로 인사를 해버렸다.

“어머, ○○씨! 반가워요.”

마치 개인적으로 오래 알고 지낸 사람처럼, 익숙한 이름이 무의식적으로 입 밖으로 튀어나온 것이다.

그는 TV에서 보이던 활발한 이미지와는 달리 내성적인 성격이었고,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해 고개를 푹 숙인 채 서둘러 나에게 인사를 하고 급히 자리를 피했다. 그에게 괜스레 미안했다.


자주 봐온 얼굴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를 잘 안다고 착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착각은 내 행동으로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 일을 통해 깨달았다. 자주 본다는 것이 잘 안다는 뜻은 아니다. 익숙하다고 느끼는 감정과, 실제로 마주했을 때 다가오는 감정 사이엔 큰 괴리가 있다. 화면 속 초상은 납작했고, 눈앞의 사람은 생생했다.

감정은 거리감을 제대로 계산하지 못하고, 착각은 현실 앞에서 크게 터져버렸다.


내 생에 처음 가보는 호주여행이었다. 호주 하면 시그니처처럼 떠오르는 오페라하우스를 직접 본 적도 없으면서 나는 왜 잘 안다고 생각한 걸까? 무엇을 알고 있었던 걸까?

오페라하우스를 본다면 ‘보던 데로 멋지네! 많이 봐왔어 내 가 잘 알지 암.’하고 생각하게 될 줄 알았다.

오래전 길에서 처음 본 가수를 아는 체 했던 그 순간이 떠올랐다.

오페라하우스를 가려던 것도 아니었다. 지나가다 먼발치에서 오페라하우스를 처음 본 느낌은 사진에서 봐오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건물이 숨을 쉬는 듯 한 느낌이랄까! 크기가 큰 것도, 외관이 웅장한 건도 장식이 화려하거나 색상이 눈에 띄는 것도 아니었다. 크기나 화려함만으로는 얼마나 멋진 건물들이 많은가? 오페라하루스를 처음 봤을 때 그런 것들과는 다른 압도당하는 듯 벅차오르는 감동이 있었다.

마치 우리나라 순백의 백자를 본 느낌이었다. 순백이기에 불순물하나 첨가되지 않은 듯 정갈해 보이기도 하고, 무엇이든 채색될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 한겨울 얼어붙은 강가의 고집스러운 견고함이 주는 느낌과 반대로 그 위에 내려 덮은 함박눈처럼 은은함과 포근함이 내가 백자를 볼 때 드는 감정과 비슷했다. 머릿속 그림만으로 충분한 줄 알았는데, 실제는 그 모든 상상을 뛰어넘었다. 평면이었던 오페라하우스가 내 눈앞의 입체로 다가왔다.


역시 직접 보고 느끼는 것만큼 정확한 건 없다. 이런 예상하지 못한 발견이야말로 여행이 주는 묘미이고 떠나올 충분한 이유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나에겐 10시간 이상 비행기를 타고 와서 오페라하우스를 볼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결론이다. 미리 알아보고 시간을 잘 맞춰 방문하면 한국인이 설명하는 도슨트를 들을 수 있다. 잘 안다고 생각해 왔던 이 건물을 더 잘 알 수 있는 기회였다. 호주 오페라하우스를 갈 계획이라면 꼭 이용하길 추천한다.


다음날 다시 방문하여 가까이서 마주한 오페라하우스는 첫 느낌보다 훨씬 더 멋진 모습이었다.

200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오페라하우스는 호주 시드니의 현대성을 상징하는 대표 건축물이다. 3개 건물 내에는 총 6개의 공연장이 있고, 6개 공연장에서 1년에 약 2000회 정도 공연이 활발하게 이루어진다고 한다. 오페라하우스가 위치하는 곳은 수천 년간 호주 원주민들의 만남의 장소로 사용되었다.

그 전통은 지금도 여전히 이어져 있어 1973년 개관이래 많은 세계적인 예술가들의 공연이 열렸고,

국내외 중요하고 다양한 행사들을 위한 만남의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는 1957년, 국제 디자인 공모전에서 당선된 덴마크 건축가 ‘요른 우트존’의 작품이다. 그는 오렌지 껍질을 벗겨놓은 듯한 이미지에 영감을 얻어 아이디어 스케치를 제출했고, 당시 그 디자인은 구현가능 여부를 엔지니어에게 기술적 검토조차 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타의 출품작과는 전혀 다른 독창성으로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로 1등에 선정되었다. 이는 결과적으로 독특한 발상과 상상력이 얼마나 새로운 디자인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또 그 가능성이 얼마나 위대한 결과를 낳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였다고 생각이 든다. 디자이너의 진짜 의도까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아무리 무모할지라도 모든 도전이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1959년 착공된 오페라 하우스는 14년 뒤인 1973년에 완공되어 같은 해 개관했다.

원래 4년 내 완공을 목표로 했던 이 프로젝트는 여러 기술적, 정치적 난관에 부딪히며 14년간 이어졌고,

예산도 최초 예상치였던 700만 달러에서 1억 200만 달러로 열네 배나 증가했다. 가장 큰 어려움은 지붕 구조물의 건축이었다. 자유로운 곡선을 실현하는 것이 매우 어려웠기 때문이다. 결국 우트존은 ‘구’의 단면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해결책을 찾아냈고, 이는 지금의 오페라 하우스 지붕 구조의 핵심이 되었다.

건축은 세 단계로 이루어졌다. 1단계는 기초바닥공사, 2단계는 지붕 구조물 설치, 마지막 3단계는 내부 공연장 공사였다. 지붕은 외부의 독립된 구조로서 내부와 맞닿아 있지 않으며, 기둥 하나 없이 떠 있는 형태다. 이로 인해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는 세계에서 가장 큰 무기둥 건축물로 손꼽힌다.


내부 공연장 역시 외부 못지않게 섬세한 설계가 돋보인다. 소리의 흡수와 반사를 고려해 벽과 바닥, 의자에 각각 다른 나무를 사용했고, 관람자의 편의를 위해 좌석 시트는 양모로 제작되었다. 당시에는 공연을 보지 못했지만, 언젠가 다시 호주를 찾는다면 꼭 공연을 관람해보고 싶다.


건축이 본격화되면서 정치적 환경 변화와 예산 문제 등으로 우트존은 주정부와 큰 갈등을 겪었고, 끝내 1966년 오페라 하우스 완공 7년을 남기고 프로젝트를 떠나 호주를 영영 떠났다. 그는 자신의 작품이 완공되는 모습을 끝내 직접 보지 못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후, 오페라 하우스 측과 우트존은 극적으로 화해했고, 당시 80세였던 우트존은 건강상의 이유로 직접 다시 호주를 방문하지 못하였다. 그는 건축가였던 아들을 통해 설계에 마지막까지 참여하게 되었다. 이후 오페라 하우스는 시대의 유행에 구애받지 않는 영원한 미학적 아름다움을 갖춘 건축물로 인정받게 되었다.

외벽의 특징

오페라 하우스의 또 하나의 특징은 외벽이 콘크리트나 벽돌이 아닌 유리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지금 건축물에는 유리벽이 흔한 방식이지만, 반세기 전 유리를 외벽에 사용한 것은 대담한 시도였다. 프랑스산 이중 유리는 외부 소음과 비바람을 차단하며, 사선으로 설계된 각도 덕분에 내부의 불빛이 반사되지 않아 아무런 장애물이 없이 오페라하우스 내부에서 바깥 야경을 감상하기에 적합하다.

세라믹 타일 지붕

지붕을 덮고 있는 약 100만 장의 세라믹 타일은 3년에 걸쳐 스웨덴에서 특별 제작된 것이다. 우트존은 호주의 푸른 바다와 하늘을 배경으로 한 흰 지붕이 마치 하나의 조각 작품처럼 보이길 원했다. 하루 중에 태양의 움직임과 구름의 움직임을 계산하여 반사되는 빛의 값을 시시각각 조절하는 것들 조차 다 참고하여 타일을 얹은 지붕디자인을 하였으니 지붕이 흰색이지만 총천연색을 담고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타일은 오염에 강하고 빗물만으로도 세척이 가능하다. 하여 따로 타일청소를 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타일 점검은 정기적으로 하고 있는데 타일이 깨져서 떨어지게 되면 사람이 다칠 수 있는 이유에서였다. 이전에는 값비싼 기기를 이용하거나 드론을 사용해서 타일 점검을 했지만 사람의 손이 가장 정확하다는 결론 하에 현재는 5년에 한 번씩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 올라가서 200만 개의 타일을 직접 손으로 만지고 두드려 점검하고 있다.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는 단순한 공연장이 아니었다. 건축가의 상상력, 창의력, 수많은 시행착오와 충돌, 그리고 오랜 시간에 걸친 인내와 화해가 융합되어 완성된 하나의 예술작품이었다.

오페라하우스 건축과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에 내가 마치 취재기자가 된 듯 열심히 보고, 듣고 적어온 것들을 글로 옮겼는데 쓰고 보니 역시 그 감동과 느낌까지 전달하기에는 아직 역부족인 듯하다. 그래도 이 글이 오페라하우스를 아직 보지 못한 분들과 곧 보게 될 분들 보고 왔지만 비하인드스토리를 듣지 못한 분들에게 오페라하우스를 '이해'하게 되고 '느끼게' 되는데 조금의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실패와 성공, 떠남과 돌아옴, 기술과 감성 사이를 넘나들며 결국 '화해와 가능성'이라는 이름으로 완성시킨 위대한 결과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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