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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ng Juha Jan 26. 2021

마흔 즈음에

나도 모르는 새에 바뀐 취향에 대해

근래에 눈에 띄게 입맛이 바뀌었다. 최근 지인에게 작년 7월부터 주기적으로 몸이 아프다는 이야기를 하자, 그는 내게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몸이 바뀌려고 그래." 그 말을 들었을 때 처음에는 "너도 늙는다"는 이야기를 우회적으로 듣는구나 싶어 기분이 영 별로였는데, 생각해보니 이십 대 후반에도 체력이 급격히 떨어져 1년 동안 요가로 몸을 단련하기 시작했던 일이 떠올랐다. 아니, 정확히는 최근에 좋아하는 음식 취향이 확연히 바뀌어 있는 걸 보고 비로소 내 몸이 바뀌고 있음을 깨달았달까.


서른일곱. 아직은 삼십 대 후반이라기보다는 삼십 대 중반이라고 우기고 싶은 나이가 되었다. 서른셋까지만 해도 내 청춘이 창창하게만 느껴졌고, 실패해도 괜찮을 나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뒤로는 글쎄, 점점 정치색도 보수적이 되어가고 재테크에 혈안이 되어 있으며 안정적이고 풍요로운 삶을 꿈꾸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그니깐 "아직은 삼십 대 중반이야"라고 말하기가 점점 어려워질 만큼 나는 옷 입는 취향도, 선호하는 책이나 사람도, 먹는 음식도 모조리 바뀌어가고 있었는데, 그만 나만 모르고 있었다. 이십 대의 내가 보면 정말 이해하기 어려울만한 인물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니깐 어쩌면 내가 작년 7월부터 시름시름 자꾸 체해서 죽 먹고 약 먹는 생활을 반복하게 된 까닭은 다 이런 변화 때문이었음을, 최근에 미친 듯이 김치와 고등어, 된장찌개나 청국장을 선호하게 된 스스로를 보며 깨닫는다.


김치. 나는 한국인이지만 자취 생활을 하면서 김치를 사 먹거나 누군가에게 김치를 얻어온 적이 거의 없을 만큼 김치 없이도 괜찮은 삶을 살아왔고, 고로 해외에 나가도 고추장이나 김치, 라면 따위를 그리워하지 않을 사람으로서 스스로를 생각하곤 했다. 정말로 혼자 사는 동안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사랑하는 '고추장, 김치, 라면'을 거의 먹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휴무를 맞아 집콕을 하는 동안, 묵은지 김치찜이 너무나도 먹고 싶었는데 혼자 배민으로 시켜먹기에는 단가가 세서 시켜먹지 못하고 대신 차돌 된장찌개로 아쉬움을 달래야만 했다. 어느 날인가부터 김치 맛을 심하게 알아버렸는데, 식당에서 배식을 받을 때도 김치를 듬뿍 담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달래라든지, 쑥으로 끓인 국이 나오면 어릴 적 향수를 떠올리는 사람처럼 굉장히 반가워하는 등 아무튼 음식 취향이 점차 향토적으로 변하고 있다. 어째서일까.


결정적으로는 소설 취향도 변하고 있다. 본래 한국문학을 좋아하긴 했지만 근래에는 아주 오래전 작품들(이태준, 오정희 등의 작품들)은 술술 읽히는 대신 한 때 지극히 좋아했던 김엄지, 정지돈의 신간을 읽으면서는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난독증에 걸린 건가 싶을 정도로 책 읽는 속도가 더디다. 아주 난감한 일이다. 이러한 독서 편향의 증상이 일시적인 문제이길 바라고 있지만, 이 모든 시시콜콜한 변화들-심지어 SNS의 '좋아요'라는 것에도 실증을 느끼는 변화들-이 느닷없이 내 삶의 안주인이 되고만 것은 아무래도 마흔 즈음이 되어가기 때문이 아닌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마흔 즈음에. 나도 모르는 나의 변화가 낯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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