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ang Juha Feb 06. 2021

불행을 버려두고 오기 좋은 곳

지난밤 꿈에 모두 버리고 올 걸 그랬네요.

악몽을 꾸고 깨어난 뒤 악몽의 서사를 모조리 잊어버린다 해도, 나는 섬뜩한 꿈의 잔상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채 하루를 살곤 한다. 최근 한 달여 사이에 꾼 몇 차례의 악몽은 무언가에 대한 나의 깊은 중압감을 무의식 중에 드러내곤 했는데, 주로 실패와 관련한 꿈이었다. 결혼을 앞두고 파혼하는 꿈을 두어 번, 아이를 가져서 얼떨떨하고도 기뻤는데 그만 유산하게 되는 꿈을 한 번, 주로 그런 꿈들을 꾸곤 했다.


어젯밤의 꿈에서 나는 또다시 실패를 경험하고 있었기에 누군가를 의지하고 싶어 그에게 내 속내를 털어놓으며 울었는데, 충분히 울지 못한 채 깨어난 까닭인지 기분이 썩 좋지 못했다. 차라리 꿈에서라도 누군가에게 내 솔직한 심경과 생각을 털어놓고 실컷 울고 충분히 위로받을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나는 지난밤 꿈에 나의 불행을 충분히 털어버리지 못한 채 이생의 아침을 맞이하고야 만 것이다.


꿈에서 나는 정확하게 "후회된다"라고 말하는 중이었다. 글을 쓰는 지금은 꿈에서 벗어난 지 10시간이 지났기에 정확히 무엇이 후회된다고 말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실은 아마도 내 인생 자체를 후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 아마도 이틀 전, 문득 잊고 살던 질문을 떠올렸기에 이런 꿈을 꾸는 것인가. 스스로에게 행복하냐고 묻지 않은지 오래되었는데, 아주 오랜만에 스스로에게 묻게 된 것이다.


"행복한가요?"


나는 누군가에게, 특히 호감이 가는 누군가에게 이런 질문을 곧잘 던지는 사람이었다. 이런 질문을 던지면 보통의 경우 "응", "아니" 중 하나의 답을 하지만 간혹 "나는 행복을 위해 사는 게 아닌데"라고 답하는 이도 있었다. 나는 세 번째 답을 했던 이에게 "어떻게 삶의 목적이 행복이 아닐 수 있어?"라고 물었던가. 아마도 그랬을 텐데, 지금은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나 또한 그렇게 대답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곤 했다. 나는 행복을 위해 사는 게 아니라고.


하지만 실은 요 며칠 새, 엄청나게 후회로 점철된 삶을 살아야만 했던 지난밤 꿈에서 뼈저리게 느껴야만 했듯, 나는 후회 대신 행복으로 점철된 삶을 살고 싶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꿈에서 그토록 불행해야만 했다면, 그러니깐 꿈에다가 그토록 불행을 잔뜩 풀어놓아야만 했다면, 내가 불행을 버리고 온 만큼 현실에선 행복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


어쩌면 꿈은 결코 불행을 버려두고 오기 좋은 곳이 아닌지도 모른다. 다시 잠에 들면 여전히 어떤 불행한 세계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은 두려움에 대해 생각한다. 최대한 불행을 먼 곳에다 버리고는 다시는 내게 찾아오지 못하도록 힘차게 도망치다 지친 사람. 불행을 완벽하게 버리고 오기 좋은 곳은 어디에 있을까. 지난밤 꿈에라도 모두 버리고 올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작가의 이전글 마흔 즈음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