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는 해방인가 섭리인가.
2022년 6월 4일 토요일 오후 1시 30분. 나는 4년 8개월의 여정을 끝으로 퇴사했다. 이십 대 때부터 몇 번의 퇴사를 경험하기는 했지만, 한국 나이를 기준으로 사십 대를 불과 1.5년 정도 앞두고 하는 퇴사는 그간의 퇴사와는 다른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누구나 더 좋은 회사로의 이직, 또는 스카우트로 인한 퇴사를 꿈꾸지만 나의 경우에는 첫 퇴사 때부터 그러질 못했다. 이번 퇴사의 과정에서는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일을 잘했는데, 왜 그만두냐"는 말을 많이 들었다는 점 정도랄까. 원래 이곳에 들어올 때는 더 좋은 곳으로 스카우트당하는 일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내 업, 내 사업을 시작하며 그만두기를 바랐는데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결국 사표를 냈다. 갑작스레, 아니 나만 모르게 점진적으로 악화되어온 건강 때문에 말이다.
야속하게도(?) 우리 대표님, 그니깐 L님께서는 이러한 나의 사정, 내가 건강 문제로 겪어야만 했던 어마 무시한 고통의 질량을 거의 모르시기에, 지나가면서 자꾸만 "퇴사한다니깐 너무 좋아하는 것 같다. 너무 행복해하지 마라."라고 뼈 있게 느껴지는 농담(? 일 것이다...)을 던지시곤 했다. 퇴사하는 오늘까지도 말이다. 남의 눈에 나의 퇴사가 어떻게 비치든 어차피 내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없는 타인에 불과하기에 크게 개의치 않는데, 그래도 나의 대표님은 (그럼에도 그의 신분이 목사님이시기에) 축복의 말을 해주시길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이후 다행스럽게도 퇴사하는 날 대표님께 전해드렸던 편지 덕분에, 어쩌면 그러한 말을 던지실 수 밖에 없게 만들었던 어떤 오해는 풀리게 되었고, 대표님께도 충분히 축복을 받을 수 있었다. 결코 단순히 힘들어서 그만두기로 한게 아니며, 이 곳에서 일하는 모든 과정에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가 있었음을 편지를 통해 전달할 수 있었다.)
아무튼, 나는 많은 이들의 축복과 격려 속에서 무사히 퇴사했다. 퇴사를 하며 아주 약소하지만 같이 일했던 분들께 선물도 돌렸다. (비대면 전달이었지만) 대표님께도 편지와 함께 선물을 드렸다.
4년 8개월을 일한 것 치고는 생각보다 내 짐이 거의 없었다는 점, 그리고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동료들과 정이 들었었단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다는 점. 이번 퇴사의 특이사항이라고 한다면 그 두 가지 정도였는지도 모르겠다. 송별 인사를 하는데 자꾸만 눈물이 나려고 해서 말을 이어나가기가 어려웠다. 아주 복잡 미묘한 감정이 담긴 눈물이었다.
만약 이곳에서 일하는 동안 하나님께서 내게 부업을 통한 부수입을 열어주시지 않았다면, 그러한 수입을 통해 십일조가 올라가게 해주시지 않으셨다면 나는 아마도 돈이 두렵고 무서워서 퇴사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작년 10월에 수술대에 올라갔다 내려온 뒤로 태어나서 처음 겪는 몸의 이상증세들을 견뎌야만 했던 지난 수개월 동안, 죽을 것만 같은 몸상태로 꾸역꾸역 출근을 하며 버티던 어느 날 더는 안 되겠단 생각이 들었을 때, 나는 퍼뜩 나에게 부수입을 물어다 주시던 하나님을 기억해 낸 것이다. 신기하게 아름아름 돈을 벌 수 있는 일들을 만들어 주시던 하나님. 그러한 하나님을 떠올리며 '나의 십일조는 끊어지지 않겠구나. 오히려 더 올라가겠구나.'하고 생각했다.
그러니 이보전진을 위한 일보후퇴 차원의 전략적 퇴사. 현실은 골골골일지라도 마음은 그렇게 정리가 되었기에 퇴사 의사를 밝히고 후임에게 인수인계를 잘할 수 있었다. 얼마나 치열했던 지난 2주였던가. 오지 않을 것만 같던 그날이 왔고, 나는 해방감보다는 사실 앞날을 홀로 헤쳐나가야 한다는 고독한 감정(임마누엘의 하나님이 계심에도 불구하고 감정은 그러했다.)과 5년 가까이 뿌리를 내리고 지내던 곳으로부터 뿌리를 뽑아낸 듯한 허전함, 매일 보던 이들과 더 이상 루틴 같던 농담을 주고받을 수 없다는 슬픔 같은 걸 느꼈다.
사실 이곳에서 일하는 동안 정말 감사한 순간들과 사건들, 그야말로 드라마틱한 일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끝'이 주는 복잡 미묘한 감정이 있구나 싶다. 그래서 그 감정을 등가 교환하기 위해 집에 와서 영화도 보고 글도 쓰고 그러는 중이다. 해방감은 느끼지 못하지만, 신기하게도 퇴사를 결심한 그 순간부터 나는 아픈 몸으로부터 조금씩 해방되기 시작했고, 마음에 문득 떠올랐던 이가 후임으로 결정되었단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나에게 몸의 아픔과 퇴사를 허락하신 이가 하나님이심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해방감 대신 내가 느끼고 인지하는 건 하나님의 섭리. 인생의 새로운 서사가 시작되려함을 직감적으로 느낀다. 바야흐로 나의 끝은 하나님의 시작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