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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립국 Apr 23. 2021

오늘의 서술, #39 기부

#39 기부


 예전에는 가난하고 어렵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 장애도 치료해주거나 집을 고쳐주는 방송도 있었는데, 요새는 연예인들이 방송사 돈으로 국내외 여행 가고 먹고 마시거나 준재벌 3세의 수십억 대 아파트를 소개하거나 가난하지 않은 연예인들 집 정리를 도와주는 방송들이 나온다. 방송들이 낯설다.

 

 요즘 TV 방송에 대한 어떤 사람의 트윗이다. 잘했다 못했다로 끝맺음을 했으면 별로였을텐데 낯설다로 마무리해서 나름 균형적인 시각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구나 생각했다. 사랑의 리퀘스트나 러브하우스 등 트윗의 윗줄에 나오는 프로그램들은 없어진 지 오래다. 언제부턴가 연예인들의 관찰 예능이 우후죽순 늘어났다.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보는 것이 재밌나. 언제부턴가 TV는 욕망을 대신해서 풀어주는 곳이 되어버린 것 같다. 해외여행이나 으리으리한 집이나 여유 있는 육아 등 현실에서 못하거나 만족하지 못했던 부분을 대리 해소해주는 것으로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랑의 리퀘스트나 러브하우스가 좋았는가를 물어본다면 아니라고 답하고 싶다. 어렸을 때는 좋아했다. 한때 건축가를 꿈꾸기도 했어서 재미있게 봤고, 나도 커서 여유가 되면 해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민간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기부나 자선사업에 대해서 안 좋은 시선을 갖게 된지는 오래됐다.

 

 가난과 불평등이 지속되는 이유는 불공정한 거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건이든 노동이든 좋은 거래였다면 이처럼 양극화가 발생하지 않았을 테다. 누군가 과도하게 이득을 취하니 격차가 벌어지는 거다. 최근 카카오 대표가 이익공유의 일환으로 기부를 한다고 하더라. 최대 실적을 갱신하고 있는 대기업들이 성과급이나 임금인상에 대해 유연하게 반응하는 것도 보면 불공정한 거래를 인정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아무튼 이 경우는 자신들의 울타리 안에서 잘못된 거래를 조금이나마 풀려는 노력이기 때문에 민간의 영역이라도 좋은 징조라고 바라볼 수 있다.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노조는 자기 일이라 꽤나 적극적으로 대처할 거다. 불평등과 불공정을 향한 나름의 정치적 행동으로 볼 수 있겠다. 좋은 싸움이다.  


 하지만 자선사업은 조금 다르다. 굿 네이버스 같은 기부는 내 옆이 아니라 지구 반대편의 아무도 모르는 사람에게로 전해진다. 어딘지, 뭐가 변하는지 몰라도 좋은 일을 한다는 윤리의식만 남게 된다. 안 하는 것보다 낫지 그거라도 하는 게 어디야라고들 말한다. 근본적인 불평등과 불공정을 고치려는 노력이 없다면 말 그대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아닐까. 개인적으로 그런 위안을 얻기 위해 하는 거라면 할 말이 없지만, 결과적으로 민간의(사적인) 영역에서 나는 좋은 일을 한다는 것으로 다른 사안에 눈과 마음을 닫아버린다. 나는 기부를 하기 때문에 충분히 좋은 사람이니까. 시간을 내서 몸으로 봉사활동을 하는 건 그래도 나의 행위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이 확인되고 눈에 보인다. 마음과 마음이 만나고, 몸으로 그것을 배우고 이뤄내는 경험은 귀하다. 누군가를 도와주고 나면 기분이 좋지 않나. 그 느낌으로 이어나가는 거다. 하지만 기부는 돈으로 도덕적 우월감을 사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것도 이따금 거래내역을 볼 때, 후원사에서 편지가 올 때뿐이다. 교환가치를 통한 거래다. 불공정이나 불평등을 자극하고 드러내기는커녕 은폐하는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사적인 영역에서는 한계가 있다. 그뿐만 아니라 선한 행동을 공적인 영역으로 끄집어내는데 오히려 방해요인이 된다.

 

 복지에 대한 논의에서 수혜자의 수치심이나 모멸감은 중요한 주제다. 그래서 무상급식 같은 보편복지가 이야기되는 건데, 마찬가지라고 본다. 사랑의 리퀘스트나 러브하우스에서 도움을 받는 사람들은 으레 저자세다. 선심이라도 불편한 관계를 만들 수밖에 없다. 주는 사람에겐 우월감이 생기고, 받는 사람에겐 모멸감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하지만 더 있어서 없는 사람에게 주는 것보다 애초에 불공정한 거래를 줄인다면 그 누구도 불편한 마음이 없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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