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닭백정
시골집은 작은 식당이다. 토종닭으로 하는 백숙이 메인 메뉴이고 술과 안주를 판다. 닭은 따로 손질된 것을 쓰지 않고 영계를 사와 닭장에서 사료를 먹여 키운다. 주문이 들어오면 그날그날 바로 잡아서 손질한다. 시골에 잠시 가있을 때 그 일을 내가 도맡아 했다. 서빙과 함께. 손님이 와서 주문을 하면 엄마가 몇 마리인지 알려주신다. 그러면 닭장으로 가서 닭을 잡아 죽이고 기계로 털을 뽑아서 가져다주면 내장을 손질하고 요리에 들어간다. 그때 약 3년 동안 꽤 많은 닭을 잡았다.
닭을 어떻게 잡느냐?! “초록물고기”에서 닭 잡는 장면이 나온다. 칼로 목을 자르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다. 닭 모가지를 비튼다는 말도 있는데 그것도 아니다. 날개를 한 손으로 잡아 등이 보이도록 들어 올린다. 그리고는 등을 주먹이나 뭉툭한 둔기로 강하게 내려치면 죽는다. 처음엔 요령이 없어서 꽤 많이 내려쳤다. 그렇게 숨이 끊어지면 뜨거운 물에 폭 담갔다가 꺼내 털 뽑는 기계에 돌린다. 털이 다 뽑혀 속살을 드러낸 닭의 등을 보면 고통 없이 죽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한방으로 끝내지 못해 여러 번 친 경우 등에 검푸른 멍이 많다. 그걸 보면 마음이 좀 안 좋다. 사실 그걸 떠나서 닭을 죽이는 것 자체가 고된 일이었다. 차라리 밭을 갈라고 했으면 더 나았을 텐데 말이다.
닭백정을 어쩔 수 없이 한 일이지만 마냥 나쁘지는 않았다. 그전에는 백숙을 먹으면서 생각하지 못했다. 식탁에 올라오는 닭이 언제 어떻게 죽고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 과정을 몸으로 눈으로 확인하고 나니까 마음가짐이 조금 달라졌다. 나 때문에 죽었는데 남기지 말고 감사하게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살생에 대한 죄책감이 아닌 책임감이라고 해야 할까.
기술도 발전하고 분업화도 이뤄냈고 자연스레 자급자족의 시대를 넘어섰다. 뭔가 얻기 위해 돈만 지불하면 되는 시대다. 자연에 존재하는 무엇이 내 손 안으로 오기까지의 과정은 심하게 생략되고 분절될 수밖에 없다. 살생의 감각이 소비자에게까지 오지 않는다. 이윤추구라는 시대정신과도 연관이 있겠지만 이 감각을 많은 사람이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자연에 대한 끊임없는 착취가 일어나는 것 같다. 그러면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말인가? 아니다. 상상이라는 아주 좋은 도구가 있다. 크리스천이 식사 전 기도를 할 때 저게 뭐야라고 웃어넘긴 적이 많다. 주님께 감사한다고는 하지만 뭐 나를 위해 죽은 생명들에 감사한다는 마음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