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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립국 Apr 23. 2021

오늘의 서술, #41 부천손대장

#41 부천손대장


  코로나로 얻은 취미가 있다. 오디오다. 좋아하는 노래를 그럴듯한 시스템으로 들으니 맛이 더 좋다. 중학교 때나 들었던 FM 라디오 채널도 20년 만에 찾아서 듣고, 클래식 채널을 틀어놓고 고상하게 분위기도 잡는다. 이런 취미를 음악 감상이 아니라 오디오라고 말한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음악을 들어야 하는데, 듣다 보니 기기에도 눈이 가게 되더라. 다른 스피커로 들으면 어떨까. 오래된 기기로 들으면 구수한 맛이 난다더라. 이 스피커는 저 앰프와 궁합이 좋다더라 등등. 관심이 없던 분야였는데 눈을 뜨고 나서 찾아보니 한도 끝도 없다. 중고 거래도 믿기지 않을 만큼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서너 달 전만 해도 오디오 앰프와 스피커를 바꿈질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두 달 전에 독일 이베이에서 구매한 독일제 앰프와 덴마크산 스피커에 정착하고 나서는 당분간 숨을 고르고 있지만, 한동안 좋은 매물이 없나 하고 중고 거래 사이트를 분단위로 확인했었다. 그때 중고 나라에서 본 어떤 한 사람이 기억에 남는다. 국내에서 가장 큰 중고 거래 사이트다 보니 개인뿐만 아니라 업자들도 많다. 해서 도배도 많고, 비싸게 파는 경우도 많다. 그런 사람들 틈 사이에 “부천 손대장”이라는 사람은 파는 기기에 대한 설명과 더불어 매입한 가격과 정비 비용, 마진 등 거래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 물건을 팔았다.  그리고 가끔은 물건을 파는 글이 아니라 중고 나라 음향가전 카테고리가 예전 같지 않다며 상도덕을 지키며 살자는 아주 장문의 글도 두서없이 써서 올렸다. 본인이 올린 어떤 판매글의 댓글에다 아들과 애인의 사진을 올리기까지 했다. 아들은 그렇다 쳐도 아들의 애인에게 동의를 얻고 올리는 걸까라는 생각에 댓글을 달려다가 그만뒀던 일도 있었다.

 

 이상한 사람처럼 보이다가도 한편으론 안타까운 현실에 슬프기도 했다. 아무래도 오래된 기기들을 거래하다 보니 직거래로 직접 듣고 보고 산 물건이 집에 와서 갑자기 안되거나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매너가 좋은 사람들은 간혹 수리비까지 내주기도 한다는데 정말 손에 꼽을 경우고, 대부분은 나 몰라라 한다. 부천 손대장이라는 분은 이 틈바구니에서 그래도 신뢰를 얻고 싶어 했던 사람이지 않았을까. 아들과 그의 애인까지 팔아야 믿어주는 거짓의 세계.  


 한 때 유튜브 뒷광고 논란이 핫했다. 광고가 아닌 척 셀럽들이 자연스럽게 물건을 쓰지만 실제로 협찬이나 광고였다. 장점을 홍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속여야 파는 거다. 부천 손대장은 그런 면에서 순진한 사람이었다. 방법이 우아하진 못했지만. 혹시 모를 일이다. 콘셉트일지도. 오래간만에 가서 찾아보니 종적을 감췄다. 절이 싫은 중이 떠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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