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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립국 Apr 23. 2021

오늘의 서술, #44 히어로 무비와 투표

#44 히어로 무비와 투표


 이틀 전 보궐선거가 있었다. 여차저차 기회가 닿아 투표소에서 도우미 역할을 하는 투표사무원을 하게 됐다. 보궐 선거 치고는 투표율이 꽤나 높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사람이 많이 들이치지는 않았다. 투표소가 초등학교였다. 학교 정문에서 투표소로 가려면 넓은 운동장을 끼고 들어가야 했다. 그 이유 때문인지 몰라도 박 터지는 정치판의 아웅다웅과는 별개로 한가로워 보였다. 다른 투표소의 풍경은 어땠을지 몰라도 그곳은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투표를 하고 온 엄마에게 나도 하고 싶다고 앙탈을 부리는 아이도 있었고, 강아지와 산책 겸 나온 사람들도 보였다. 각자의 마음속은 잘 모르겠지만, 정치권이나 언론에서 말하는 심판 같은 건 없어 보였다.

 

 고백하자면 이번 선거에서 투표를 하지 않았다. 3지대의 인물에게 투표를 하지도, 그렇다고 사표를 내지도 않았다. 아예 안 갔다. 뽑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모를까 굳이 차선 혹은 차악을 선택하는 것이 정치에 도움이 될까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이야기되는 선거가 한편으로는 시민의 정치적 역량과 활동을 제한하는 덫이 된다고 생각한 지 오래다. 이따금 치러지는 선거에서 한 표를 행사함으로 더 이상의 무엇을 하지 않게 된다. 국민 청원에 동참하고 시민 단체에 소속되어 정부 기구를 감시하거나 등등 투표 말고도 이런저런 활동을 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결코 다수는 아닐 테다. 물론 표를 받은 국회의원 같은 대의기관이 제 몫을 해야 하는 것이 정석이지만 세상이 그렇지 않다는 건 누구나 다 알고 있다. 몸에서 팔이 빠진 것처럼 대의가 탈구된 지 오래다. 빠지기만 하면 다행이지만 가끔 그 팔이 내 목을 조여오기도 한다. 적어도 그들이 나를 대표하지는 않는 것 같다.

 

 히어로 무비를 보면서 항상 느끼는 것이 있다. 함께 힘을 합치면 더 큰 힘이 될 텐데. 어떤 히어로는 절대 나서지 말라고 한다. 다크나이트에서 배트맨은 자경단을 나무란다. 괜히 나서다가 다치거나 죽으면 안타까운 일이긴 할 테다. 하지만 의미 있는 일 아닌가. 유관순이나 이순신 등 역사적 인물들은 자신의 출중함도 있겠지만 역사에 기록하기 위해 히어로처럼 우상화된 경우가 많다고 생각한다. 전태일이라는 이름의 뒷면에 기억되지 못한 수많은 노동운동가들이 있을 테다. 그 많은 사람들을 모두 기억하지 못해 전태일이라는 세글자로 응축했다고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투표도 그렇고 히어로 무비도 그렇고 보고 있으면 나약한 존재로 만들어버리는 것 같다. 정의는 내가 수호할게! 정치는 내가 할게! 영화 속이지만 히어로는 그래도 할 일은 한다. 정치인들의 세글자 이름 뒤엔 뭐가 있을지.  

 

 그렇다고 내가 대단히 정치적인 활동을 하는 건 아니다. 소소한 글로 소심하게나마 들리지도 않을 질문을 한다. 설국열차에서 머리 칸과 꼬리 칸이 뭐 빠지게 싸운다. 알고 보면 사실 그건 쇼였다. 그걸 알아챈 주인공은 옆 문을 열고 나온다. 김밥 옆구리 터트리듯 다른 것을 상상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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