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중립국 Nov 14. 2022

오늘의 서술, #52 분노와 정의감 사이

분노와 정의감 사이

 얼마 전에 메일을 받았다. 발신인은 한글 이름 세글자, 제목은 "밀수신고 조사처분 결과"였다. 밀수신고센터이고 결과통지서를 보낸다는 굉장히 사무적이고 짧은 본문과 함께 공문서형식의 pdf파일이 첨부되어 있었다. 첨부파일을 열어봤다. 피신고자는 대략 2억원어치를 밀수입을 했고, 8천만원 가량의 부정수입을 얻는 등 관세법을 위반하였으므로 검찰에 송치되었다는 내용의 결과통지서였다. 문서 말미에는 서울세관장의 직인이 큼지막하고 빨갛게 찍혀있었다. 


 3달 전 일이다. 그보다 좀 더 전이려나? 최근 오디오에 관심이 생겨서 옥션 경매를 통해 일본산 골동품 오디오기기를 산 적이 있다. 얼마간 듣다가 다른 기기에 대한 호기심이 생겨 할아버지 오디오는 처분하고 디터 람스가 디자인을 했다던 브라운사의 오디오를 독일 이베이 경매를 통해 구입했다. 생김새도 마음에 들었고 소리도 마음에 들어서 아직까지 듣고 있긴 하지만 한참을 듣다보니 fm라디오가 먹통이 됐다. 처음엔 잘 됐는데 말이다. 수리를 하려면 15kg이나 되는 기계를 직접 가지고 가야할 뿐더러 가깝지도 않아서 엄두가 안났다. 모든 기능이 안되면 바로 움직이겠지만, 그렇지도 않은 상황이어서 가까운 곳에 수리점이 없나 좀 더 찾아봤더랬다. 그러다가 중고나라 사이트에서 어떤 사람을 발견했다. 내가 가진 모델도 판매하고 있었고, 대부분 독일에서 만들어진 오디오 기기를 판매하고 있었다. 판매글에는 전문가의 점검을 마친 물품이다라는 내용이 있어서 신뢰가 갔고, 특정 국적의 기기만 취급하기에 전문성이 있다고 생각해서 쪽지를 보냈다. 구매글이 아니어서 죄송하다. 선생님이 자주 판매하는 모델을 가지고 있는데, 고장이 나서 수리를 해야할 것 같다. 게시글에 전문가의 점검을 받는다는 내용이 있어서 여쭤본다. 거리도 가까운 것 같은데 수리 받는 곳을 알려주시면 감사하겠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답은 없었다. 쪽지는 읽긴 했더라. 혹시나 해서 기다렸지만 여전히 답은 없었다. 꾸준히 판매글은 올라왔다. 거래 완료된 게시글도 있었고, 그 사람의 판매글 본문엔 여전히 전문가의 점검을 마친 물품이다라는 내용이 있었다. 읽혔지만 씹힌 분노감이었을까. 아니면 점검을 받지 않았을거라는 추측으로 말미암은 거짓에 대한 응징이었을까. 인터넷으로 밀수에 대한 민원이나 신고 사례를 찾아봤다. 개인에게 싸게 사들여 웃돈을 받고 파는 업자들은 많았지만, 그 사람처럼 해외 특정 기기만 수급해서 파는 사람은 없었다. 해외에서 개인 사용 목적으로 싸게 사들여 국내에서 2~3배 웃돈을 받고 파는 것 같다며 세관에 신고를 했다. 


 그 결과가 메일로 온 것이다. 그 사람이 얼마 동안 밀수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8천만원의 부정수입을 얻었다. 적은 돈이 아니다. 누구에겐 2~3년치 연봉일텐데, 그 금액을 보니 한편으론 답답한 마음이 생겼다. 부정한 일이라고 하더라도 누군가의 생계 혹은 안위를 무너트린건 아닌가하는 찝찝함. 미안한 마음은 아니었다. 뒤끝이 구린 마음이라 해야겠지. 결과에 대한 감정이 이러한 것은 신고를 하게 된 이유가 복합적이기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오로지 중고 오디오 시장의 거래 투명성과 건전성을 위해 신고를 했다면 찝찝한 마음은 없었을거다. 하지만 내 질문이 묵살당해서 그래서 내가 무시당했다는 불쾌한 감정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면 검찰에 송치되고 그 동안 올린 수입도 다 토해내야하는 그의 상황은 과한 벌이 아닐까.


 결과통지서의 내용이 너무 짧고 단편적이어서, 잔인하리만치 사무적이어서 그 너머가 궁금하다. 그가 취미 수준으로 그 일을 했다면 좋을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오늘의 서술, #51 독서모임의 페미니스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