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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립국 May 30. 2023

오늘의 서술, #55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작가는 분명 다윈주의자일거야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룰루 밀러


 이유가 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갑자기 아버지에게 이렇게 물었다. '인생의 의미가 뭐예요?' ... '의미는 없어. 신도 없어. 어떤 식으로든 너를 지켜보거나 보살펴주는 신적인 존재는 없어. 내세도, 운명도, 어떤 계획도 없어. 그리고 그런 게 있다고 말하느 사람은 그 누구도 믿지 마라. 그런 것들은 모두 사람들이 이 모든 게 아무 의미도 없고 자신도 의미가 없다는 무시무시한 감정에 맞서 자신을 달래기 위해 상상해낸 것일 뿐이니까. 진실은 이 모든 것도, 너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란다.' - p.54


 이 책은 동시대를 살진 않았지만 작가 룰루 밀러와 그의 탐구 대상인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전기이기도 하며, 에세이인 것 같으면서도, 스스로의 삶을 잘 편집해 그가 의도한 주제의식에 잘 녹여낸 소설같기도 하다. 인생은 의미가 없다는 아버지의 말로 부터 시작된 혼란, 그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 한 사람을 탐구하고, 그 끝에 찾은 나라는 존재와 삶의 의미에 대한 깨달음이 잘 정리되어 있다. 


 읽으면서 다윈이 계속 생각났다. 예전에 들었던 어떤 진화론에 대한 강의에서 강사가 이런 말을 했다. 진화론은 수직의 이론이 아니라, 수평 또는 평등의 이론이다. 하등생물에서 고등생물까지 위계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박테리아든 바퀴벌레든 인간이든 태초의 생명에서 어떤 갈래로 갈라졌을 뿐이고,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진화의 첨단에 서 있다는 내용이었다. 너무 맞는 말이다. 물고기는 자신의 환경, 즉 물에서 아주 잘 살 수 있게 적응한 생명이다. 인간은 당연하게도 육지에서 잘 살 수 있게 적응한 생명이고. 인간의 자기중심적 사고, 피식과 포식, 시각적 정보(크기나 외형)와 같은 직관적인 판단으로 우열을 정하는 경향이 있는데, 다윈의 말처럼 장엄함은 모든 생명에 깃들어 있다. 나는 이 개념을 다윈의 정수라고 생각한다. 이 책이 그러하지 않은가? 인간은 육지에 사는 물고기이고, 동성애자이지만 행복하고, 불임(우생학에 의한 폭력)이지만 서로를 아끼며 사랑하고 있고 등등...


 책을 읽으면 간혹 내용을 이미지화 하기도 한다. 조던의 연구열과 우생학에 대한 집착, 작가인 룰루 밀러의 공허함을 해결하려는 열띤 노력을 보면 인생의 거대학 목적이나 의미를 찾기 위해 나열하고 소거하고 배제하고 제거하는 수직의 이미지에서 후반부로 갈수록 많은 것이 와르르 무너지는, 그렇다고 모두 같아지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의 의미를 비교할 수 없는, 수평의 이미지로 그려졌다. 결말이 예상보다 말랑말랑하고 낭만적이어서 끝맛이 좀 달았지만 충분히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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