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케인 시즌 2
시즌 1의 주제는 시즌 2에서 더욱 큰 스케일로 확장된다.
아케인이 본질적으로 다루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양면성, 즉 야누스적인 속성이다. 선과 악, 갈등과 화합, 좋은 것과 나쁜 것처럼 서로 대립하는 요소들이 인간사를 역동적으로 만들어간다. 이는 "어둠이 있어야 빛이 존재한다"는 고전적인 삶의 정수와 맞닿아 있다. 예를 들면, 인사이드 아웃에서 슬픔이 있어야 기쁨을 더 강렬히 느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시즌 1은 이런 양면성을 캐릭터와 관계 속에서 심도 있게 탐구했다. 예컨대, 징크스(파우더)의 이야기는 단순히 한 인물이 '흑화'해 폭력적으로 변모하는 서사가 아니다. 파우더와 징크스라는 이름으로 상징되는 한 인물의 내적 갈등, 즉 양면성에서 비롯된 선택의 고민이 핵심이었다고 본다.
아케인의 주요 캐릭터들이 짝을 이루고 있다는 점도 이 주제를 뒷받침한다. 밴더와 실코, 바이와 징크스, 암바사와 멜, 제이스와 빅터 등 이 관계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긴장이 드라마의 중심축을 형성했다. 그중에서도 징크스는 한 인물 안에서 두 가지 역할을 수행하며 시즌 1의 주인공으로 자리매김했다.
시즌 1에서 시즌 2로의 변화
시즌 1은 두 도시의 대립을 큰 축으로 삼고, 그 대립 속에 얽힌 인물들의 복잡한 관계를 통해 드라마의 절정을 그렸다. 제이스와 빅터가 다루던 마법공학이나 멜의 정치적 서사는 멀리 있는 배경으로만 작용했으며, 중심 갈등은 주로 폭력적이고 즉각적인 충돌에서 비롯되었다. 예를 들면, 길거리 싸움처럼 직접적이고 거친 방식으로 말이다. 이런 거칠고 투박한 충돌은 오히려 감정적으로 강한 여운을 남겼다.
반면, 시즌 2에서는 갈등의 양상이 달라졌다. 신지드와 빅터의 '매드 사이언스'처럼 차갑고 정교하며 철저히 계획된 갈등이 중심이 된다. 암바사의 권력 의지와 정치적 행보 역시 치밀하고 계산된 움직임으로 그려진다. 이는 시즌 1에서 드라마를 이끌었던 인물들이 사실상 신지드, 암바사, 필트오버의 과학자들 같은 이들의 계획에 의해 장기말처럼 활용된 결과라는 점을 부각시킨다.
예컨대, 신지드는 실코를 시머 실험의 도구로 이용했고, 밴더의 분노를 활용했다. 암바사는 케이틀린의 복수심과 딸의 가능성을 시험하며 이를 자신의 정치적 무기로 삼으려 했다. 이렇게 뒤에서 움직이던 이들이 시즌 2에서는 전면에 나서며, 시즌 1에서 주요했던 인물들은 마치 소모품처럼 여겨진다.
시즌 2가 제시하는 새로운 시각
시즌 1의 마지막에서 보여주었던 징크스와 밴더(워윅), 바이의 싸움은 감정적으로 절제된 방식으로 담백하게 그려졌다. 이는 어쩌면 옳은 방향이었다고 본다. 시즌 1에서는 그들이 사랑과 분노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에 감정적으로 깊이 몰입했겠지만, 시즌 2에서는 그들이 더 이상 독립적인 주체라기보다 거대한 흐름에 휘말린 장기말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시즌 2의 진정한 메시지는 캐릭터 간의 단순한 갈등을 넘어 세계와 나의 관계, 그리고 이를 둘러싼 권력, 정치, 과학의 영향력을 탐구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시즌 1의 핵심이 '나와 너의 관계'였다면, 시즌 2는 '세계와 나의 관계'로 확장되었다. 이는 우리가 단순히 눈앞의 갈등에 휘말려서는 안 되며, 그 갈등을 조장하고 이용하는 더 큰 힘에 주목해야 함을 일깨운다.
마치 현실 정치처럼, 우리가 당장 눈앞의 문제에 몰입하는 사이 진짜 중요한 적은 시야에서 사라지곤 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의 분노와 감정을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취하는 이들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결론적으로
시즌 2는 인간의 갈등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반복적인 폭력의 고리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아버지 세대의 갈등을 그대로 답습하고 반복하는 것이 인간성의 아름다움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시즌1의 캐릭터들이 고스란히 등장하지만 캐릭터성이 전작보다 빛을 발하지 못한 이유는 당장의 이익에 복무했던 전작과는 달리 과학이나 정치처럼 간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거시적 요소들로부터 미시적 개인과의 연관성을 탐구하려고 했기때문이다, 이러한 확장은 '정치적 인간'과 '사유하는 인간'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는 싸우더라도 ‘누구’와 싸울것인가를 생각하게 만든다.